Ep6. 5단계 퇴사 욕구 이론
대기업을 다니다 퇴사해 퇴사학교를 만든 <사직서에는 아무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에 따르면 사람들마다 퇴사하는 진짜 이유는 모두 다르다. 기업, 직장 규모, 개인의 성향, 환경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공무원이나 공기업은 안정성에서 오는 권태로움이나 수직적 분위기였고 대기업에서는 내가 평생 추구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였고, 중소기업에서는 연봉이나 처우, 근무시간으로 인한 퇴사가 많았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처럼 불행한 이유에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지만 매슬로우의 욕구 이론을 통해 퇴사의 사유를 큰 틀에서 5단계로 분류해 볼 수 있다.
1. 생리적 욕구 : 인간의 기본 생존권과 관련된 1차원적 욕구. 먹고사니즘.
2. 안전의 욕구 : 고용 안정성, 워라밸
3. 애정, 소속감의 욕구 : 집단의 소속감, 동료들과의 유대감, 조직문화
4. 존경의 욕구 : 직장의 타이틀과 네임밸류
5. 자아실현의 욕구 : 내가 하고 싶은 일, 내 적성에 맞는 일, 성장한다는 느낌.
1단계에서부터 욕구가 하나씩 해결될수록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이전 단계를 클리어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퇴사 고민이 시작된다. 예를 들어, 주기적인 월급으로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해졌을 때 워라밸을 생각하게 된다거나 6시 정각 퇴근은 좋은데 매일 봐야 하는 오피스 빌런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거나 하는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1~3단계를 넘어서 5단계에 도달한 것 같다. (4단계는 애초에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 일을 평생 추구하며 살 수 있을까. 20년 후의 이 자리에서(이 업종에서) 경쟁력 있는 사람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시장 플레이어들이 인정하는 준 전문가이자 일잘러 상사로 남을 수 있을까. 생각했을 때 계속 생각나는 대답은 NO였다.
2년간 다른 직무를 경험해보면서 내가 생각하는 나는 내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스로를 과대평가했던 것이다. 머리로 생각했던 것과 실제의 결과는 많이 달랐다. 적극적으로 외부 사람들을 만나 협업하며 주어진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업이 요구하는 수준은 훨씬 높은 수준이었고 내가 따라가기에는 벅찼다. 비유하자면 안 맞는 옷을 입고 춤을 추다가 가랑이가 찢어지는 느낌이었다. 처음으로 안 되는 거는 안 되는 거다 라는 말의 뜻을 체감했다.
먹고사니즘의 문제로 입사하여 기본, 안정, 소속감의 욕구는 해결했지만 마지막 5단계에서 큰 난관을 맞닥뜨렸다. 퇴사하게 되면 다시 1단계의 문제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보니 쉽게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 숨만 쉬어도 초당 돈이 나가는 이 도시에서 다음 스텝을 내딛기가 망설여진다.
알베르 까뮈는 "노동을 하지 않으면 삶은 부패한다. 그러나 영혼 없는 노동을 하면 삶은 질식되어 죽어간다." 고 했다. 질식되어 가기 전에 넥스트 스텝을 내딛어야 할 텐데. 최적의 시기와 퇴사 플랜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고민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