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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씨 Feb 24. 2022

한 사람  

"엄마, 같이 먹자."


한 손에 빨간 딸기가 담긴 그릇을 든 아이가 뒤뚱거리며 다가온다.  

그릇에서 딸기가 쏟아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발걸음을 재촉하는 아이를 보며 소파에 앉아 커피 한 모금에 목을 축이던 나는 풋, 하고 웃고 말았다.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 중에서 엄마의 유일한 쉬는 시간. 아니, 엄마가 유일하게 숨을 내쉬는 찰나는 아이가 간식을 먹는 시간이다. 쏟아지는 질문에 대답을 하고,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역할극에 몰입하다 보면 잠시도 쉴 틈이 없다. 조금 힘들다, 싶을 때면 아이에게 배 안 고파? 간식 먹을래? 하며 달콤한 과자나 과일, 우유가 담긴 그릇을 내어준다. 먹을 때만큼은 조용한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커피 한 잔에 목마름을 해소하는 시간은 하루 중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부터 아이가 간식을 먹는 시간에도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작은 손으로 들기에 버거운 간식 그릇을 조심조심 겨우겨우 들고 엄마 옆에 다가와 앉는다. 아삭아삭 간식 먹는 소리와 쫑알쫑알 엄마에게 말하는 소리가 뒤섞인다. 그렇게 엄마가 유일하게 숨을 내쉬고, 목을 축이는 찰나 마저 아이의 것이 된다. 하지만, 자꾸 웃음이 난다.  하루 작은 순간에도 나와 함께 있고 싶어 하고, 다가와 주는 '한 사람'의 존재가 내 아이라는 사실이 당연한 줄 알면서도 참 고맙다.


나는 홀로 있던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갔던 '한 사람'이었을까?


내 인생에는 항상 내 아이처럼 다가와준 '한 사람'들이 있었다.  

작가로서 미숙했던 시절에는 부족함을 채워주고자 때론 질책을 때론 조언을 해주는 선배가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선배의 싫은 소리가 듣기 싫어서 날 괴롭히려고, 나에게 화를 풀려고 하는 소리처럼 들렸다. 선배가 되어 막중한 책임에 한숨을 쉴 때면 언니, 하고 불러주는 후배가 있었다. 후배의 위치에서 힘겨워하는 나를 어떻게 도와야 할지 방법을 몰랐던 것뿐인데, 나는 늘 나의 상황과 심정을 알아주고 성숙하게 행동해주길 바라는 부끄러운 선배였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나 자신에게 다시 작가로 불릴 수 있을까, 에 대해 꽤 여러 번 질문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자신이 없어졌을 때 나를 다시 작가로 불러준 '한 사람'이 있었다. 어떤 글이든 자신 있다고 호언장담하며 일을 시작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아이를 재우고 밤부터 새벽까지 원고를 쓰면서 예전보다 이해도, 속도도 느려진 나를 보며 한참을 탄식했다. 나를 믿어주고 기회를 준 '한 사람'을 볼 낯이 없었다. 미안했고 속상했다. 하지만, 그 '한 사람'은 끝까지 나를 믿어주었고 끝마칠 수 있게 해 주었다.


돌이켜보니 내가, 온전히 나만의 힘으로 이룬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엄마의 몫이라고  생각했던 육아도 친정엄마의 헌신과 남편의 배려, 그리고 아이 역시 나를 도와주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결코 나 혼자 외로이 묵묵히 감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외롭고 버거웠던 순간마다 나를 둘러싼 '한 사람'들이 내 인생에 있었기에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살아간다는 것은 나의 부족함을 촘촘하게 채워주는 이들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나도 누군가의 인생에서, 아팠던 순간에 손을 내밀어 준 '한 사람'들 중 '한 사람'이 되고 싶다.


믿어주고, 격려해주고, 괜찮다고 말해주는 한 사람. 홀로 있는 이에게 다가가 일으켜주는 한 사람.  

마음을 나누고 생각을 나누며 앞으로 한 걸더 나아갈 수 있게 해 주는 한 사람.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관계가 아니더라도, 늘 소통할 수는 없어도 문자 하나, 통화 한 번 만으로도 삶의 무거운 순간에 작은 힘은 주는 한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그리고 훗날 내 아이에게 내가 누군가의 '한 사람'이 되었던 순간을 이야기해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

엄마처럼 너도 누군가의 '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고 말해주고 싶다.


네가 엄마에게 다가와, 옆에 앉아주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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