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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May 07. 2022

내가 무엇을 쓸 수 있을까-2

회사는 역시나 적응하기 쉽지 않은 곳이었다.

다수의 사람들과 조직이라는 체계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있던 나는, 회사라는 공간에서, 그리고 그 밖에서도 먹고 자고 숨쉬는 기본적인 '생존'하기 위해 있는 힘을 다했다. 10시간은 기본, 많게는 18시간까지 근무 시간을 남들과 비슷하게 지키려 노력했고, 사자의 먹잇감이 되지 않기 위해 바위 뒤에 숨죽이고 있는 고라니처럼 있는 듯 없는 듯, 그러면서 언제 어디서든 응급 상황에 출동하는 구조대원처럼 스스로를 최대한 긴장시키고 하달되는 업무와 요청에 최선을 다해 대응했다.


'회사 사람'들과는 어떤 관계와 거리를 유지해야할지 몰랐으나 결국 내겐 회사 내 인간관계도 '회사'에 해당되는 영역 중 하나였다. 내가 실수할까 두려웠고 나의 부족함과 나약함, 흔들리는 멘탈이 탄로날까 무서웠다. 최대한 모든 이들을 멀리하고 가까이 다가오려는 이들 경계했다. 그 와중에도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본성은 온전히 숨길 수 없어서, 소수의 이들에게는 먼저 손을 내밀기도 했지만 어디까지 안심해도 좋을지 알 수 없었다. 퇴근하고 집에 오는 길은 삶의 에너지가 남아있질 않았고, 하루가 멀다하고 다음날 눈을 뜨고 싶지 않 밤들이 찾아왔다.


우울하고 무기력해지고 지치고를 얼마나 반복해야 남들이 소위 말하는 '적응'을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회사에서 내가 해야하는 업무를 하기 위해 억지로 욱여넣은 지식들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 같았고, 쌓여가는 경력과 연차에 비례하여 내공과 경험이 축적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주변의 동료, 선배들과 얘기해봐도 내가 겪는 이 끝없는 굴레를 겪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다들 힘들어하면서도 어떤 부분은 재미가 있거나 싫지는 않다고 했다. 나처럼 일과 회식이 죽을만큼 싫고, 삶의 모든 에너지가 회사라는 공간에 투입되어 하루하루 마음이 가난해져 집에 돌아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는 이는 없었다. 나는 내 상태가 소위 일반적이거나 평범한 게 아니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두려웠다. 회사에 이런 나의 상태가 알려질까봐.


살고 싶지만 살고 싶지 않던 날들이 지속되던 어느 날, 친구가 내게 상담을 권유했다.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던 나를 걱정한 친구는 기어이 약속을 잡아 첫 상담에 같이 참석해주었고, 이후 꼬박 2년동안 상담에 시간과 비용을 투자했다. 상담은 출구 없는 생각으로 괴로워하던 내게 상황을 바라보는 다른 관점도 있음을 알게 해주었고, 매일 짙은 안개가 시야를 가리고 있는 느낌이던 내게 가끔은 명징하고 맑은 풍경을 선사하기도 했다.


상담에서는 늘, 오늘은 어떤 얘기가 하고 싶은가요, 하는 질문에 답을 했어야 했는데, 이제는 무엇을 말해야할지 모르겠어서 스트레스를 받는 날들이 생겨났다. 상담사는 상담 종료를 권유하진 않았지만 스스로 할말이 없고 이제 그만해도 되겠다 싶어 자의적으로 상담을 종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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