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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샷뜨아 May 23. 2023

취중고백

커피와 음악에 취해 내.로.남.불

집 근처 아파트 단지에 작은 카페가 생겼다. 아이들 등교시킨 후에 잠시 들러 수다 떨 수 있는 아지트가 되었으면 좋겠다. 미국 드라마 <프렌즈>처럼, <섹스 앤드 시티>처럼 화려한 브런치 카페보다는 언제든지 편하게 들를 수 있는 동네 다방이 되기를 바란다. 가게가 오래 남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구석구석 눈길이 가고 어느 순간 탐색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시원해 보이는 투블럭 커트에 윗머리를 단정하게 묶은 카페 사장님이 있다.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남자는 왠지 단정하고 세련되어 보인다. 동그란 안경 덕분에 갸름한 얼굴면이 넉넉하게 채워지고 웃는 눈 모양이 돋보인다. 외꺼풀의 웃는 눈은 귀여워서 매력적인 끌림이 있다. 그는 슬림한 외모와는 다르게 굵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졌다. 비로소 카페 사장님의 이미지가 각인되는 순간이다.   

가게를 정식 오픈하기 하루 전날이지만 모르고 들른 손님들에게 오픈 기념 음료를 무료로 주셨다. 고소 쌉싸름한 커피 맛을 음미하며 한 번 더 맛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사장님의 넉넉한 인심에 자주 들를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재즈 음악 또한 내 마음에 스며들어와 잔상을 남겼다.  

사진작가 storyset 출처 Freepik

 몇 번째 방문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귓바퀴에 도는 재즈소리가 편안하지만은 않다. 자꾸만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잔잔한 템포의 재즈가 아닌 트럼펫 소리가 흥겨운 빅밴드 재즈였다. 빅밴드는 가만히 듣고 앉아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적어도 박자대로 발을 구르며 박수를 치면서 들어야 제맛이지. 혹시 사장님도 '그것'을 아는 분인가? '그것' 때문에 가슴이 뛰었다. 한동안 '그것'을 잊고 살았다. 모르는 사람과도 눈만 마주치면 즐겁게 웃으면서 할 수 있는 '그것', 사장님도 '그것'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커피를 가져다주시는 틈을 타서 질문을 하게 되었다. 

사장님.. 혹시 스윙댄스 추셨어요? 

그는 잠시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며 느닷없는 질문에 의아해했다. 하긴 춤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질색할지도 모른다. 그게 사교댄스라면 더더욱 그렇다. 한국에서 사교댄스라고 하면 지루박과 콜라텍을 연결시킨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사교댄스는 세상 사람들에게 오해를 많이 받는다. 그럼에도 나의 호기 어린 질문은 그의 음악 취향으로 비롯된 것이었으니 너무 놀라지 않게 질문의 의도를 설명했다. 

다른 게 아니라 빅밴드 재즈 음악을 자주 트시길래, 혹시 스윙을 아시는지 궁금했어요.
제가 빅밴드 음악을 좋아하거든요. 혹시 불편하세요?  
아니요 아니요. 저도 너무 좋아해요. 제가 스윙댄스를 좀 췄었거든요.

나의 취미를 고백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고백해 버리고 말았다. 춤을 추지 않는 사람에게 취미를 고백했을 때 신기해하거나 선입견을 갖거나 하기 때문에 관계가 어색해져 버리고 만다. 그러나 사장님의 잇따른 고백에 걱정은 한낱 먼지가 되어 날아갔다.   

아, 그러시군요. 저는 탭댄스와 재즈를 조금 췄습니다. 

같은 춤은 아니지만 춤을 추는 사람이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20대 후반부터 30대 중반까지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은 정확하게 두 종류로 나뉘었다. 춤을 추는 자와 춤을 추지 않는 자. 평생 동반자가 될 사람은 당연히 춤을 추는 자여야 했다. 결국 춤을 추는 사람과 결혼을 하였지만 결혼을 하고 나서 함께 춤을 춘 경우는 다섯 번도 되지 않는다. 결혼 생활은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기에 춤에 대한 열정상자는 마음 깊숙한 곳에 넣어 두고 언젠가 다시 열 수 있을 그날이 오기를 바라며 문을 잠가두었다. 

나는 소셜 댄스를 추는 댄서이다. 사교댄스와 차별점을 두기 위해서 댄스 분류 명칭을 영어 그대로 두기로 한다. 안타깝게도 춤을 춘다는 과거형이 되었고 체형도 예전 같지 않아 가볍지 않다. 그렇다 보니 내가 춤을 추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천만다행으로 나에게는 "책"으로 남아 있었다.  

저자 깜악귀 님이 지은 [서른 살에 처음 시작하는 스윙 살사 탱고]라는 책이 있다. 동호회 닉네임으로 저자 활동을 하고 있던 그는 나처럼 소셜댄스의 매력에 푹 빠져 있었고, 같은 취미를 두고 있는 사람들과 나눈 춤에 대한 이야기를 책에 실었다. 드물게 스윙댄스와 살사댄스를 동시에 즐기고 있었던 나는 인터뷰 대상자가 되어 두 가지 댄스의 문화와 매력점을 비교하며 설명할 수 있었다. 춤을 출 때의 나는 평소와는 다른 미소를 보인다. 몸의 모든 근육이 깨어나서 누가 봐도 행복해 보이는 얼굴이 된다. 그 순간의 사진들이 책에 실려 있어 추억을 회상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꺼내어 보고, 인터뷰 내용을 읽으며 그 시절 순수했던 열정을 느낄 수 있다. 

책에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스윙과 살사, 두 가지 춤 모두를 포기할 수가 없어요. 
스윙을 '스윙답게' 추기 위해서 노력을 했어요


춤을 추는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건강한 것 같아요. 
모든 사람들이 춤을 한 가지씩은 배웠으면 좋겠어요


소셜댄서의 증거

우리는 슬플 때, 기쁠 때, 심심할 때 음악을 듣는다. 같은 음악이라도 개개인의 기분과 정서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두 사람이 연결이 되어 하나의 스텝으로 음악을 즐길 때 슬픔은 위로가 되고 기쁨은 배가 된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벅찬 공감대가 형성된다. 그래서 소셜댄스를 출 때는 외롭지 않고 삶이 아름다워 보인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마음 깊은 곳에 넣어둔 상자를 진심으로 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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