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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인의 청춘 Oct 25. 2021

주관적이면서 객관적인 헬스장 빌런  Top10 리스트

물론 이게 다는 아니다.

센터에서 운동을 하다 보면 '아, 이걸... 진짜 참을까 말까'하는 광경을 자주 목격하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지극한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다. 물론, 뭐 그들의 입으로 자칭 '헬린이'라 몰라서 그럴 수도 있겠으나 - 본인만 모르고- 대체 왜 그러는 건지 알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부터, '니가 무슨 상관인데?'라는 태도로 일관하는  빌런들.

이럴 때 나는 종종 '억울함'을 느낀다.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고, 마음 편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왜 이렇게 애쓰고 살까... 가 억울함의 배경이란 것도 알고, 억울함을 갖는다는 게 그렇게 예쁜 모양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말하기도 귀찮은 억울함이 순간순간 치미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상당히 주관적인 나의 빌런 Top 10 리스트를 보고, '뭐 그런 걸 가지고 그러냐'라고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센터를 일주일에 다섯 번 이상 찾는 사람으로서, 나의 매우 주관적인 리스트가, 고개를 주억거리게 만드는 객관적인 빌런 Top 10 리스트가 되는데, 그다지 모자람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


1. 흡사 폼페이의 유적인가 싶은 사람들.

물 위에 떨어뜨린 기름처럼 늘어지고 쩍쩍 달라붙은 모양새의 땀자국을 자기 체형 그대로 남기고 떠나는 사람들. 더럽고 찝찝하다. 본인이 기구를 쓰기 전에 그런 땀자국이 있다면, 본인은 과연 무슨 느낌일까? 그저 내가 닦고 쓰면 그만이라고 여길까? 내가 닦고 가면 다른 사람도 편히 쓸 수 있고, 모두가 한 번씩만 닦으면 매번 청결한 기구를 쓸 수 있는데. 흔적을 남기고 떠나야 할 건, 지구뿐만이 아니다. 기구에도 제발 본인의 흔적 좀 남기지 말았으면. 수건을 두장 주는 이유는, 하나로 땀도 좀 닦고, 나머지로는 샤워하라고 하는 거다.


2. 정리정돈이 전혀 안 되는 사람들.

덤벨이든 케틀벨이든 운동기구를 쓰면, 제발 제자리에 좀 가져다 놓자. 당신의 소유물이거나, 레고 블록이라면 할 말이 없지만, 당신이 잠깐 쓰고 난 뒤 다른 사람이 사용해야 할, 공유 물품이잖나. 뭐, 너그럽게 생각해서 바나 기구에 끼워둔 건 뭐 그렇다 치고, 애초에 본인이 쓴걸 조금만 정리해도 누구나 편리하게 쓸 수 있을 텐데. 집에서 집사라도 써서, 모든 걸 다 대신 정리해 주나? 에티켓 좀 탑재하자.


3. 혹시 성인영화 배우세요?

너무 심하게 끙끙거리지 좀 말자. 적당한 호흡과 자연스러운 숨쉬기로도 운동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렇게 당장 요단강 건널 것처럼 끙끙거리는 건, 본인의 한계를 넘었거나, 숨을 잘못 쉬고 있을 가능성이 훨씬 높은 거다. 게다가 끄, 응! 흥! 흐! 소리 같은 걸 입으로 크게 낸다는 건, 목을 긁으면서 호흡을 한다는 거라, 별로 좋지도 않다. 그리고 그냥 너무 시끄럽다.


4. 오호라, 집에서 와이파이가 안 되는군요.

요금제를 무제한으로 좀 쓰시지. 인스타그램 5분 하고, 깔짝 5번 웨이트 하고, 페이스북 3분 하고, 깔짝 웨이트 3개 할 거면 대체 운동을 왜 하러 오는 건지. 집이 무슨 격오지라 와이파이가 안 되는 걸까. 기구 옆에 서서, 기구 위에 앉아서 하염없이 스크롤링하고 있는 사람을 보면, 근처 대리점에 데려가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추천하고 싶다. 그리고 말하고 싶다. 인스타그램은 집에 누워서 하시는 게 더 편하지 않아요?


5. 그렇게 때려 부술 거면 소림사로 가세요.

아니 왜 그렇게 뭘 집어던지고 떨구고 난리인가. 지진 난 줄 알았다. 살살 좀 놓고, 조심조심 다루면 안 될까. 청컹, 쿵, 땡, 드르륵 아주 오케스트라로 난리다. 분조장이라서 그런 거라면, 이 기회에 인내심을 길러 보는 노력을 해보는 건 어떨까. 근력 강화하러 갔는데, 심장이 안 좋아지는 느낌이다. 제발 살살 내려놓고, 내 물건이 아닌 모든 것들을 조심히 다루길.


6. 혹시 일부러 데시벨 더 올리시는 거예요?

친구 자랑, 사업 자랑하는 것처럼, 우렁찬 목소리로 전화 통화를 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내용도 별 영양가도 없을뿐더러, 노래까지 나오는 그 시끄러운 데서, 굳이 전화를 왜 하는지? 너무 궁금해서 - 안 궁금해도 들려서 짜증 - 그냥 들어봤는데, 어디 뭐가 맛있다는 둥, 주식이 떨어졌네 올랐네, 남친 여친이랑 뭘 할 거냐는 둥 그렇게 소소한 일상일 수가 없던데, 기구에 앉아서 전화까지 하면 진짜 해시태그 노답이다. 안마의자로 생각하는 걸까? 전화받는 동안 운동도 깔짝깔짝 할 거면서 그렇게 사소한 전화는 안 받아도 그만, 지금 안 해도 세상 안 망한다. 나는 당신의 사생활이 전혀 궁금하지 않다.


7. 아 쫌 에티켓 좀 진짜 쫌

4개월 동안 센터에 다니면서 정말 여러 가지 인간 군상을 목격했는데, 수건이나 물통으로 자리를 맡아둔 사람들, "이거 혹시 하고 계신가요?"라고 물어보면, 안 하던 기구로 쏜살같이 달려와서 "지금 하고 있다"라고 하는 사람들, 이래 저래 잘못 운동하다가 기구를 망가뜨리거나 거울을 깨 놓고는, 아무 말도 없이 그냥 가는 사람들, 정말 인품 해시태그 노답인 사람들 너무 많다. 빨래를 하거나, 음식을 싸가지고 와 나눠먹는 것도 말 다했지. 심지어 어떤 사람은 남들이 손으로 만지는 모든 기구나 손잡이를, 신발 신은 발로만 밀고 당기는 걸 본 적이 있는데, 진심으로 뒤로 가서 발로 차려다 조신하게 참았다. 그렇게 제 좋을 대로 운동하고 몸매만 좋으면 뭐해, 인품이 쓰레기인 걸.


8. 저기요, 여기 마을회관 아니에요.

아니 대체 왜, 이 코시국에 헬스장에 모여 믹스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나. 요즘엔 어딜 가도 그런 짓 함부로 하면 욕먹는다. 게다가 이런 마을회관러님들은 자기가 아는 누가 오면, "어~ 왔어?", "아~ 어제는 왜 안 보였나?", "언제 갈 거야?"라면서 하이파이브하고, 붉은 악마도 아니고 서로 파이팅이라며 소리치고, "어이~ 자네 왔능가"로 진짜 상봉, 반상회, 다과회 할거 없이 난리가 난다. 간식을 싸와서 드라마 얘기를 하면서 그걸 까먹을 거면, 대체 피트니스 센터에 온 건지 마을 회관에 온 건지.


9. 결국 저거 치우는 사람, 당신의 선생님이에요.

운동복이든 수건이든, 내 것이 아니란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대체 그걸 함부로 쓸 이유는 뭘까. 심지어 엄청나게 커다란 - 진짜 수틀리면 당신 하나쯤은 묻어버릴 수도 있을만한 - 수거함이 버젓이 있는데, 바닥에 던지고, 아무 데나 두고 그냥 가거나, 무슨 쓰레기 폐기물 처리장에 가득히 쌓인 '수건 산'처럼 만드는 몰지각함은 뭘까. 그거 시간마다 치우는 사람은 결국, 당신이 센터를 이용하는데 도움을 주는 직원이거나, 트레이너 선생님들이다. 잘 쓰고, 마땅히 가야 할 자리에 잘 넣어두는 게 그렇게 어렵나. 나는 도무지 모르겠다.


10. 혹, 지옥행 티켓이라면 그렇게 서두를까.

서로 타이밍 봐가면서 쓰면 되는 기구를, 지하철에 가방 던져 자리 맡듯이 쓰려는 사람들이 있는데, 굳이 그럴 이유가 뭔지. 오늘 그 기구 안 쓰면, 내일 몸이 이쑤시개로 쪼그라드나. 다양한 부위를 고루 운동하면서, 내 차례가 오길 조금만 기다리면 되는 걸, 이건 내 것이고, 네가 나보다 먼저 손을 댔다간 국물도 없을 줄 알라는 식으로 번호표 뽑기에 혈안 된 사람들. 천천히 가도 된다. 다른 기구를 하다가 와도 좋고, 다른 동작으로 전신 운동을 해도 될 일 아닌가.


후, 지극히 주관적인 헬스장 빌런 TOP10를 꼽아봤지만, 사실 이게 다는 아니다.


번외로도 고구마 줄기처럼 주렁주렁 읊을 수 있다.

- 드라이기로 민망한 여기저기 다 말리는 빌런들

- 너무 과도한 복장으로 오는 사람들

- 프로틴 셰이크, BCAA 여기저기 흘리고 간 빌런들

- 친구들끼리 와서 허세 부리면서 고성 지르는 빌런들

- 코시국에 비말 차단을 이유로 너무 빨리 뛰면 안 된다는 트레드밀에서 굳이 계속 '나는 이렇게 해야 운동이 된다'며 뛰는 빌런들.

- 집에 TV 안 나오시는지, 큰 소리로 깔깔거리며 무료로 TV 보러 오신 빌런들

- 트레이너가 다른 회원 수업 중인데 아무 때나 끼어들어서 이거 저거 해결해 달라거나 질문하는 사람들

- 자기 잘못으로 회원권 만료됐는데 제발 다시 살려달라며 패자부활전에 목숨 거는 사람들


말해 뭐해.


제발 좀 같이, 세련되고 멋있게 잘 살면 안 되는 걸까. 그게 그렇게 어려운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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