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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몸글몽글 Nov 06. 2017

난민 곁의 스포츠

『우리 곁의 난민』을 읽고 - 이경렬

   



10월 마지막 금요일. 책 『우리 곁의 난민』 의 마지막 글자를 다 읽자마자 국기원 전화번호부터 검색했다. 휴대전화에 번호를 입력하고 다른 한 손으로 책 135쪽을 펴서 빨간펜으로 별표하고 꾹꾹 놀러 밑줄 그은 문장을 주시했다.         


“콩고 출신의 어느 난민 가정 자녀는 태권도 품띠를 따기 위해 열심히 연습했지만 국기원에서 승품 심사 자격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시험 자체를 볼 수 없었다.”(『우리 곁의 난민』 , 문경란 지음. 서울연구원.135쪽)   

   

통화버튼을 눌렀고 안내음성에 따라 “국내 심사 문의” 부서로 연결했다.

  

“우리나라에서 난민은 태권도 단증 심사 지원조차 할 수 없다는 데 그게 사실입니까?”


담당자는 일단 “난민이요?”라며 놀랬다. 잠시 후 별도의 난민 승단심사 기준은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렇지만 국기원에서 인정하는 증빙서류 소지자면 응시가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생각보다 심사 규정은 간편했다. 해외국적자는 아래와 같이 여섯 가지 증빙서류 중 한 가지만 제출하면 심사 응시가 가능하다.      


① 출입국 사실증명서
② 외국인 등록증 사본(앞/뒤)
③ 외국인등록 사실증명서
④ 국내거소신고 사실증명서
⑤ 재학증명서(입학날자~현재) + 여권
⑥ 재직증명서와 + 여권   


이를 듣고 난민인정증명서가 외국인등록증이나 다름없으니 심사가 가능한 거 아니냐고 추가 질문을 하자 담당자는 규정 엄수 소신을 고수하며 위 여섯 항목 외에는 인정불가고, 최근 해외에서 단증 위조와 도용 사건이 발생하여 외국인 단증 발급에 신중을 가한다는 국기원의 입장을 더했다. 이에 질세라 난민은 본인의 고국에서 박해를 받아 피난 온 사람들이니 단증 불법 행위 우려는 노파심일 뿐이라고 반론했지만 헛스윙이었다. 담당자는 내게 소신을 담은 ‘규정 없음’ 직구를 또 던지며 삼진 아웃을 잡아냈다. 휴대전화를 잡은 손이 허리 아래로 떨구어졌다. 궁리를 하다가 얼마 전 국회의원 태권도 연맹 발족을 주도한 공인태권도 9단의 소유자 국회의원이 떠올랐다. 자세를 가다듬고 의원실 전화번호를 눌렀다.     

 

전화를 받은 비사관에게 고자질부터 했다. 현 정부에서 100대 국정사업 중 하나로 태권도 양적세계화를 넘어 질적세계화를 선언한 상황에 정작 국내 난민은 태권도 승단 심사 응시 권리조차 없다는 실상과 난민 태권도 인식이 부족한 국기원의 상황을 일러바쳤다. 아울러 2018평창올림픽이 100일 앞으로 다가온 시기에 이런 사실이 국제적으로 알려지면 개최국 위상이 실추될 것이 분명하니 하루빨리 난민 승단 심사응시를 허용하는 태권도 진흥법 또는 국기원 규정 개정을 실시해달라고 말했다.     


다행스럽게도 전화를 받은 비서관도 관심을 나타냈고 국기원에 사실 확인을 해보고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답했다. 이에 상기된 나는 하루 이틀내로 관련 정보나 내용을 정리하여 메일로 전송하겠다고 말했다. 발등에 불을 떨어트렸다. 기실 내가 가진 난민 태권도 관련 정보는 『우리 곁의 난민』가 전부였다. 이틀내로 자료와 사례 수집은 감당하기 벅찬 작업이었다. 아껴두었던 ‘전화찬스’가 간절했다. 정확한 표현은 ‘저자와의 전화찬스!’ 『우리 곁의 난민』 의 저자 문경란 작가에게 연락을 취했다.   



2017년 6월 23일 문경란 작가는 스포츠인권 공부모임 사람들에게 『우리 곁의 난민』을 선물했다.  나도 책을 받고 저자와 함께 인증샷을


사실 이 책은 스포츠인권공부 6월 모임 때 문경란 작가에게 선물로 받았다. 스포츠인권공부모임은 문경란 작가의 제안으로 결성되어 올해 5월부터 매월 셋째 주 목요일 저녁 한국체육대학교에서 책 『스포츠인권을 만나다』을 교재로 발제와 토론을 나누는 자리다. 모임 인원은 10명 안팎으로 스포츠인권강사, 체육시민단체, 학부 및 대학원생, 운동선수 학부모 등 전공불문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참여한다. 여기서 문경란 작가와 스포츠인권 관계를 살짝 언급하자면, 문경란 작가는 국가인원위원회 상임위원 재직시절 우리사회 인권사각지대인 학교 운동부 인권의 문제개선을 위해 혁혁한 역할을 했다. 


일례로 2008년 인권위 최초로 운동선수 인권실태조사 실시, 2011년 현재 스포츠인권의 근간이 된 스포츠인권가이드라인 제정에 일등공신으로 활약했다. 작년에는 체육시민단체, 체육전문가, 인권전문가, 언론인 등과 함께 스포츠평화포럼 진행을 주재했다. 나도 이 포럼에서 문경란 작가와 인연을 맺었고 올해는 공부모임으로 인연을 잇는 중이다. 『우리 곁의 난민』 이 출간 된지 열흘 째 되던 날, 스포츠인권공부 모임 6월 모임 일이었다. 이날 문경란 작가는 15권 가량의 책을 가져와 모임 사람들에게 일일이 사인을 해주며 책을 선물해주었다. 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과 새정부 출범 후 경찰개혁위원회 인권보호분과 위원장을 맡게 되어 하루하루 바쁜 일정 가운데도 스포츠인권공부모임에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아무튼 다시 전화찬스로 돌아가서, 문경란 작가에게 국기원과 의원실과 통화내용을 안내했다. 작가는 매우 반겨하며 내가 말한 내용은 135쪽의 내용과는 성질이 다르다며 차이점을 소상하게 설명해주었다. 이실직고하면 내가 책의 내용을 오독한 것인데 이를 바로 잡아줬다. 


책에 서술한 내용은 난민전체의 문제라기보다 한국에서 태어난 난민의 자녀에게 해당되는 우리사회 제도의 문제였다. 이른바 한국은 속인주의 국가여서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난민의 자녀는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다. 부모의 본국 국적으로만 출생등록이 가능하기에 부모가 직접 해당국가대사관가서 등록을 마쳐야 한다. 그런데 “난민은 본국에서 박해를 받고 피난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대사관 방문을 꺼리는 경우가 많아 출생등록을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133쪽)”고 한다. 등록을 하지 못하면 국가의 보호를 받을 수 없게 된다. “학교가기도 어렵고 병원 진료를 거부당하기도 한다. 학교를 입학해도 국적이 없어 여행자 보험 가입 대상자에 제외되어 수학여행이나 현장학습을 못가는(134쪽)” 실정이다. 


따라서 유독 태권도 제도가 난민을 차별하는 건 아니라고 정리해주었다. 덤으로 칭찬도 받았다. 이렇게 책을 읽고 행동을 하는 모습이 멋지다고. 내게 탈삼진을 안겼던 국기원 직원과 재대결에서 만루 홈런을 날려도 이 칭찬 한마디 보다 기쁠 수 없으리. 나는 1초 동안 연속으로 ‘아닙니다’와 함께 ‘감사합니다’라고 응했다. 전화를 마치자 미처 통화로 전하지 못한 말들이 입가에 맴돌았다. 그러니까 책을 보고 가만있을 수 없었다는 일종의 계시 같았던 독서경험이.                 


비록 책 받은 지 넉 달이 지나서야 완독을 했지만 작가와의 인연과 상관없이 책은 내게 계시를 안겼다. 스포츠 소수자라는 관점을 설정해주었고,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고 있는 동두천시가 국내 난민들의 주요 거주지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특히 책에서 가장 처연한 이야기의 주인공 라이베니아 출신 마틸다씨의 국내 거주지가 동두천이어서 입체적인 상상과 감정이입이 작동됐다. 덕분에 길에서 아프리카 사람 몇 명이 모여 있으면 유심히 바라보게 되고 그 결과 내가 사는 집에서 불과 1km거리에 이주민, 탈북자, 난민, 장기체류자 등을 위한 봉사 의료단체 <라파엘 클리닉>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또한 최근에는 동두천시립도서관에서 중학교 교복을 입은 혼열인 여학생이 『인종이란 제목의 두꺼운 책을 대출하는 모습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기도 했다. 아울러 오는 11월 11일 동두천 시민회관에서 열리는 <주한 미군 및 지역 주민 태권도-문화 축제>현수막을 목도하고 가슴이 퍼덕였다. 행사장에 모인 사람들에게 한국에서 태어난 난민 2세들의 태권도 승단심사 권리 보장을 촉구하는 의견서를 나누어줄 착상의 나래가 펼쳐졌기 때문이다. 



『우리 곁의 난민』을 읽고 ‘내 곁의 난민’을 바라보게 됐다. 이는 인간의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이다. 말하자면 “난민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가운데 인간의 삶이 얼마나 복잡다단하고 예측 불가능하며 불완전한가를 성찰하고 깨달을 수 있다(p.254)”는 기회!     


11월 첫째 날 이동섭 의원실에서 연락이 왔다. 국기원에 의견을 전달했고 다른 해당부처에도 연락을 취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상호간 상황공유하며 관련한 사례를 찾아보기로 했다. 추가 자료를 찾았냐는 문의에 아직까지 국내 난민 태권도 문제의식이 담긴 문헌은『우리 곁의 난민』이 유일하다고 전했다. 그렇다고 태권도 기구가 난민 의식이 부재하다는 뜻은 아니다. 비록 국내 난민 태권도 인식은 부재하지만 국외 난민지원 태권도 활동은 활발하다. 이를테면 2015년 세계태권도연맹은 스위스 로잔에서 <태권도박애재단>을 출범하여 세계 난민촌과 개발도상국 재해지역 어린이를 대상으로 태권도 보급 및 교육 지원 사업인 ‘월드태권도케어스프로그램(WTCP)’을 진행하고 있다. 이에 2016년 국제 스포츠 평화 및 봉사 발전을 축구하는 ‘국제포럼 피스앤스포츠(Peace and Sport)’ 올해의 경기단체로 선정됐다. 나아가 올림픽 사상 최초 난민대표팀의 올림픽 출전권을 안겨준 종목도 태권도였다. 국제적으로 스포츠인권 증진을 선도한 태권도 저력은 국내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하다. 어느 분야보다 먼저 난민 2세들에게 둘러싸인 제약의 실타래를 풀 충만한 여력을 지녔다. 그러니 얼른 실행하자. 우리 곁의 난민이 존재하듯 난민 곁의 스포츠가 있어야 한다.               




글쓴이 : 이경렬

대학에서 생활체육과를 전공. 호텔 트레이너, 체육교사를 꿈꿨으나 어쩌다 2014년부터 체육시민단체에서 활동 중. 주요 관심사는 스포츠인권과 스포츠문화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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