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타 사야카, 「편의점 인간」을 읽고 쓰다
일본의 프리터족이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낸 가벼운 소설일 줄 알았는데, 꽤나 묵직한 주제를 품고 있었다.
책의 주인공 후루쿠라는 자신을 사회의 '이물질'이라고 여기지만, 편의점 안에서 '비로소 세계의 부품'이 되어 살아간다.
작가가 후루쿠라의 입과 생각을 빌려 지나치게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어서였을까, 책 전반에 걸쳐 나오는 '이물질'에 대한 이야기는 큰 이물감 없이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크고 작은 사회에서 주류와 비주류는 있기 마련이며, 비주류에 속한 사람들이 비교적 손쉽게 혐오와 배제의 대상이 되는 것은 인간적, 또는 이전에 동물적인 본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 본능을 어느정도 극복하는가'가 사회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척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책 속에서 편의점은 극도로 하얗고 청결한 공간으로 묘사되며, 그 모습은 후루쿠라가 편의점을 그만두는 날 편의점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정점을 찍는다.
밖은 아직 밝았지만, 편의점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 보다도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중략) 나는 빛나는 하얀 수조 같은 가게에 가볍게 인사를 하고 지하철역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 p169
책을 읽는 동안 한국 소설 <표백>이 떠올랐다.
모든 빛을 흡수하며 무결점 상태를 유지하는 거대한 흰색 세계, '그레이트 화이트 월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바로 <편의점 인간> 에서의 편의점이 아닐까 싶다.
<표백>에서 주인공은 표백사회에 대한 해결책으로 '자살'을 택하지만, <편의점 인간>의 주인공 후루쿠라는 결국 '표백'을 택한다.
언뜻 보면 정반대의 해결책으로 보이나, 결국 둘 다 '자기 존재의 소멸'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같다.
나는 이 거대한 표백사회를 내 존재의 소멸없이 살아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