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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풀 Nov 13. 2021

시장조사의 넘사벽

남산에서 돌 던지기

시장 조사에서 반드시 지켜져야 할 원칙 가운데 하나가 샘플링 즉, 표본 추출이다. 얼마큼 랜덤 하게 표본이 모집단을 대표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해서 기업이나 시장 조사 기관들은 대표성 있는 표본 확보에 몹시 공을 들인다. 

다음에 본격적으로 다루겠지만 20년 가까이 마케팅과 리서치를 담당해 본 경험으로 볼 때 사실 시장조사에서 넘어야 학 가장 높은 넘사벽은 마케터(조사자, 곧 발주처로서의 클라이언트) 본인이 갖는 고정관념이다. 

식품 용기를 제조, 판매하는 다국적 기업에서 일할 때의 기억이다. 

당시만 해도 수입품이다 보니 한국 사람이면 반드시 먹는 김치를 담는 용기가 없었다. 아무리 공기나 물이 새지 않고 변색도 되지 않는다고 홍보하지만 사실 그 독한 고춧가루에 당해 낼 장사는 없다. 해서 대부분 가정집에서 쓰는 김치통은 포리 에틸렌의 반투명 용기로 얼마 못 가서 벌겋게 물이 들곤 한다. 

본사에 한국 시장을 겨냥한 김치 용기 개발을 제안하니 시장 가능성(Marketability)에 관한 조사를 하라며 예산과 기한을 제시한다. 비용도 비용이지만(당시 책정 예산이 1억 원이니 시장 조상에 익숙지 않던 한국 회사에서 온 나로서는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다.) 6개월의 조사 기간 또한 내 보기엔 시간 낭비다. 본사 연구소의 신제품 개발 담당자를 한국으로 불러 남산으로 데리고 올라간다. 남산에서 돌 던지면 김 씨 성이 맞을 확률은? 대략 25% 수준이다. 아무 집이나 랜덤 하게 100군데를 찍어서 냉장고에 김치가 없는 집이 다섯 곳 이상 나오면 개발 요청을 접겠다고 말하곤 다음 날부터 가가호호 방문에 들어갔다. 들르는 집마다 답례로 신 제품을 몇 점 전달하며 10여 가구나 돌았을까? 벨기에서부터 출장 온 R&D 담당자는 즉시 개발에 착수하겠 노라는 답변이다.  

이렇게 해서 이듬해에 출시된 김치통(김치 케니스터)은 폭발적 매출을 기록하게 된다. 이후에도 결혼하는 신부들을 위한 혼수 선물용 웨딩 세트, 스승의 날이나 소풍 가는 날 선생님 용 도시락 세트 등 일련의 신 상품들은 모두가 우리 문화나 풍습을 반영한 것들이다. 야구나 축구는 아무리 봐도 서양 놀이다. 하지만 명절이면 텔레비전 프로에서 보이는 서양인들의 윷놀이나 제기차기는 다시 봐도 어색하다. 글로벌 패러독스 이론에 따르면 세계가 민주화될수록 독재 국가는 건재하며 경제가 발전할수록 빈부 격차는 심해지고 유행이 퍼질수록 민족적 유산은 빛을 발한다고 한다. 다국적 기업에 근무하다 보면 언어라든지 조직 문화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그럴수록 우리 것으로 승부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마당(market)에 들어왔으면 우리 방식(marketing)이 통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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