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냉장고에도 김풍이 살고 있다


냉장고 문을 연다. 웅― 하는 낮은 기계음이 고요한 공기를 흔들며 밀려 나온다. 이 것은 요리할 재료를 찾는 과정이 아니다. 미처 다 쓰지 못한 시간들이 화석처럼 굳어버린 유배지를 마주하는 일이다.

그 안에는 선선한 기운이 감돈다. 날카롭게 베어내는 추위가 아니라, 모든 생장의 시계를 잠시 멈춰 세운 채 숨을 죽이고 있는 차분하고도 정갈한 냉기다. 그 한기 속에서 수분을 빼앗겨 쭈글쭈글해진 파 한 대와 끝부분이 갈색으로 마른 양파 반쪽이 서로의 몸을 기대고 있다. 검은 비닐봉지 속에서 제 모양을 잃어가는 것들은, 화려한 내일을 꿈꾸다 현실의 무게에 눌려 서랍 깊숙이 밀어 넣어둔 낡은 일기장을 닮았다.

사람들은 대개 빈틈없는 식탁을 꿈꾼다. 선홍빛 육질이 선명한 고기와 갓 따온 듯 생경한 채소들이 줄지어 놓인 풍경을 상상한다. 그러다 제 손에 쥐어진 남루한 것들은 식탁에 오를 자격이 없다고 밀쳐내곤 한다. 그러나 참된 허기는 화려한 만찬이 아니라, 이 차가운 적막 속에서 홀로 시들어가는 것들의 이름을 가만히 불러줄 때 비로소 채워지기 시작한다. 결핍은 부끄러워할 상태가 아니라, 새로운 무언가가 피어나기를 기다리는 침묵의 바탕이다.

화면 속 한 남자가 팬을 달군다. 냉장고를 부탁해의 '김풍' 작가다. 기름이 열기를 머금고 미세하게 떨릴 때쯤, 으깬 토마토와 달걀물을 들이붓는다. 붉은 과육과 노란 액체가 뒤섞이는 찰나, 주방은 고요한 질서에서 역동적인 혼돈으로 모습을 바꾼다.

그의 요리는 파괴에서 시작한다. 엄격한 규칙과 소수점 단위의 치밀한 계량을 그는 유쾌하게 비껴간다. 형체를 잃고 뭉개진 토마토 위로 포근한 달걀물이 번져나가는 모양을 지켜보는 일은 묘한 위안을 준다. 그것은 정교하게 설계된 아름다움이라기보다, 오래된 서랍장 깊숙한 곳에서 우연히 발견한 어린 시절의 낙서처럼 달콤한 여운을 남긴다.

그의 몸짓은 요리를 넘어선 하나의 실존적 선언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 비틀거리는 불균형이야말로 삶의 본질이라고 낮은 목소리로 다독인다. 우리가 정답이라고 믿어온 조리법들이 실은 스스로를 가둬온 틀이었음을, 팬 위에서 으깨지는 토마토의 얼룩이 증명한다. 부서지지 않고서는 새로운 맛의 지평에 도달할 수 없으며, 삶의 흉터 또한 때로는 가장 개성 있는 무늬가 된다. 조리법을 잃어버린 순간, 우리는 비로소 자기 자신이라는 유일무이한 식재료를 마주한다.

주말 저녁이면 나 역시 주방의 이방인이 된다. 나는 냉장고 구석에서 수줍게 고개를 내민 베이컨 몇 줄과 유통기한이 임박한 치즈를 꺼낸다.

"아빠, 이거 진짜 야매인데 은근히 당기네."

큰딸의 무심한 한마디에 주방의 소음이 잠시 잦아든다. 거실 창으로 넘어온 노을이 아이들의 젓가락 끝에 걸린 투명한 치즈 줄기에 잠시 머물다 간다. 접시 위에 담긴 것은 보기에 부족할지 모르나, 그 안에는 일상의 고단함을 누그러뜨리는 아빠의 서툰 진심이 배어 있다.

냉기로 가득했던 내면의 수납칸에 미지근한 온기가 고이는 것을 느낀다. 한 입 베어 문 아내의 미간이 부드럽게 풀리는 것을 볼 때, 그 찰나의 평화는 화려한 미사여구보다 묵직하다. 모자란 재료들이 서로를 껴안고 만들어낸 이 기이한 조화는, 완전함보다는 온전함이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는지 보여준다. 우리는 완벽한 부모가 될 수도, 완벽한 남편이 될 수도 없지만, 서로의 빈자리를 남은 재료처럼 메워주는 '온전한 우리'는 될 수 있다. 이 서투른 풍요는 정답을 맞혔을 때의 쾌감과는 결이 다르다. 실수를 기꺼이 품었을 때만 찾아오는 너른 품이다.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것은 큰 목적지가 아니라, 길을 잃은 곳에서 우연히 마주친 풍경들이다. 목적지로 향하는 지도는 정답을 가리키지만, 정작 발길을 멈추게 하는 것은 지도 밖 이름 없는 들꽃이나 낡은 담벼락에 비친 오후의 햇살이다.

삶도 때로는 조리법을 잃어버렸을 때 비로소 진정한 자아를 대면한다. 준비된 것이 없기에 무엇이든 채울 수 있고, 정해진 길이 없기에 발 닿는 곳이 곧 길이 된다. 나는 이제 완벽한 식재료가 갖춰지길 기다리며 냉장고 앞을 서성이지 않기로 했다. 대신 내게 주어진 시간들을 소중히 모아서 나만의 무늬를 그려 넣는다.

타인의 눈에는 정답을 비껴간 어설픈 변주로 보일지라도, 그 안에는 정해진 궤적을 이탈해 본 자만이 맛볼 수 있는 선선하고도 짜릿한 자유가 깃들어 있다. 남들이 정해놓은 코스 요리를 따라가느라 정작 자신의 허기를 잊고 살았던 시간들로부터 벗어나는 일이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라는 말은, 가장 모자란 순간에 피어나는 직관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본래 부족한 존재이며, 재료가 완벽한 인생이란 어디에도 없다. 결핍을 한탄하는 대신 그 틈새로 고개를 내미는 우연의 기쁨을 받아들일 때, 삶은 비로소 창조가 된다.

화면이 꺼지면 나는 다시 나의 냉장고 앞에 선다. 여전히 사막 같은 냉기가 나를 맞이하지만, 이제 나는 그 적막이 두렵지 않다. 내 안에도 유쾌한 파괴자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나에게 속삭인다. 유통기한이 지나가는 것은 식재료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품었던 꿈과 열정도 마찬가지라고. 하지만 그 빛바랜 꿈들을 버리는 대신, 오늘의 현실과 버무려 새로운 맛을 내보라고 말이다.

비록 남들이 보기엔 오답 노트일지라도, 그 안에는 나의 눈물과 웃음, 그리고 멈추지 않았던 시간의 풍미가 진하게 고여 있을 것이다. 나는 오늘 밤, 유통기한이 임박한 나의 꿈들을 꺼내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오답을 요리하려 한다. 그것은 찬란한 정답보다 아름다운, 우리 모두를 위한 고요한 성찬이다. 이 식탁 위에 차려진 것은 음식이 아니라, 생의 불완전함을 사랑하기로 결심한 한 인간의 정갈한 고백이다.

냉장고 문을 닫는 소리가 '쿵' 울린다. 이제 주방에는 선선한 평화가 깃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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