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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의 인문학이 대체 뭐라고

by 천비단 Apr 1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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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 한국에 인문학 붐이 불었다. 교사, 강사, 교수, 너나 할 것 없이 인문학이 중요하다고 떠들어댔다. TV를 틀면 설민석 강사가 한국사 강의를 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어른은 아이들에게 인문학 특강이나 교양서를 보게 했다. 선생들은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융합형 인재가 되어야 대학에 갈 수 있다며, 우리가 공부도 잘하고 책도 많이 읽길 바랐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단체로 집단최면이라도 걸렸었나 싶다.


 인정하긴 싫지만, 나는 선생들이 원하던 ‘인재'였다. 성적도 좋아, 말도 잘 들어, 책도 많이 읽어, 심지어 글도 잘 쓰네? 수업 시작 전 일찍 교실에 들어온 선생님은 쉬는시간에 책을 읽고 있는 나를 보고는 ‘너희도 oo이처럼 책 좀 읽어라'하고 설교하기 일쑤였다.




 한 번은 ‘교내 인문학 대회'가 열린 적 있다. 인문학 대회라고 거창한 이름을 달았지만 사실 외부강사 초청해서 강연 듣고 소감문 써서 제출하는 게 다였다. 강사가 3명이 왔는데, 그중 한 분은 고민정 아나운서였다. 선생님이 인맥이 닿아 특별히 초청한 것이었다. 당연히 사람이 몰렸다. 나도 친구 따라 별생각 없이 강연을 듣기로 했다. 그런데 아뿔싸. 강연 주제가 ‘사랑'이었다. 젠장, 연애는커녕 짝사랑도 해본 적 없는 나한테 ‘사랑'을 주제로 한 강연이라니. 그것은 두 시간 가량의 졸음 참기 고문이었다. 무슨 내용인지 전혀 이해가 안 되었다. 문제는 이 강연을 바탕으로 2000자 분량의 소감문을 써서 제출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때는 아직 챗GPT가 발명되기 전이었다. 나는 B4 크기 커다란 원고지를 책상 위에 두고 멀뚱멀뚱 앉아 있었다. 한 단어도 적지 못했다. 한참을 고민해도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너무 좋은 강연이었다고 거짓말을 쓸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전혀 모르겠는 최악의 강연이었다고 솔직하게 쓸지. 아, 선생님 마음에 쏙 들게 사탕 발린 말만 번지르르 늘여 놓으면 내가 상을 받을 텐데. 눈앞에서 상장이 아른거렸다. 끙끙대는 사이 기숙사 취침 시간이 한 시간 앞으로 다가왔다. 결국 솔직하게 쓰기로 했다. 나는 사랑을 겪어본 적 없고, 그래서 이 강연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고. 내 입장에서 강연을 비판하는 내용을 꾸밈없이 써 내려갔다. 상? 안 받고 말지 뭐.


 결과는...? 교내 인문학 대회 최우수상은 나였다. 문과 이과 다 합친 전교생이 참여한 대회에서, 강연이 그지 같이 재미없었다고 쓴 내가 최우수상. 상장을 받으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상을 줄 사람이 없었나? 고민정 아나운서에게는 살짝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분은 아직도 모를 것이다. 10년 전 자기가 고등학교에서 한 강연에서 ‘최우수 소감문’을 쓴 학생이 강연을 신랄하게 까는 내용을 썼다는 사실을.




 수시로 대학에 가기로 했다. 일찍부터 수능과 맞지 않는 인간임을 깨달았다. 수시 전형은 자소서를 써야 했다. 자소서. 원래 ‘자소설'이었던 것이 시간이 흘러 ㄹ이 탈락해 ‘자소서'가 되었다는 전설이 도는 놈. 선생님은 내 생기부를 한참 훑어보더니 말했다. 내게 ‘특색’이 없다. 성적이 좋기는 한데 그뿐이다. 과학과를 진학하는데 과학과 관련된 활동이 단 하나도 없는 게 문제였다. 기초체력은 갖췄는데 무기는 없는 꼴이라고 할까. 공부 잘하는 사람은 널리고 널려서 남들과 차별되는 강점이 있어야만 승산이 있다는 것이 선생님의 설명이었다. 아니 샘, 언제는 공부만 잘하라면서요,라는 말이 연구개 바로 앞까지 튀어나왔지만 겨우 삼켰다. 이 바닥 생태계가 그렇다는데 따져서 뭐 하는가. 대신 물었다. 그럼 저는 자소서를 무슨 내용으로 써야 하나요. 선생님은 팔랑펄럭 종이를 넘겼다. 그러다 한 페이지에서 멈췄다. ‘이거다'하는 눈빛이었다. 그 페이지는 바로 독서 기록이었다. 다른 학생의 몇 배는 되는 양. 이걸 보더니 ‘인문학적 소양'을 강조해서 쓰라고 했다. 마침 글쓰기 대회 입상도 여러 번 했으니 적격이라나 뭐라나. 그렇게 나는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융합형 인재'라는 내용으로 자소서를 썼다. 심지어 면접에 가서도 내 입으로 그 말을 지껄였다. 내가 바로 니들이 그렇게 환장하는 인문학적 소양을 지녔다. 당장 날 뽑아라 하고. 참 염치도 없다.


 나는 ‘인문학적 소양’을 내세워 대학에 합격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인문학'에 심취해서 책도 많이 읽고 글까지 쓰기도 했다. 그런데 웃긴 게 뭔지 아는가? 나는 아직도 그놈의 인문학이 대체 뭔지 전혀 모르겠다. 그렇게 많은 책을 읽고, 그렇게 많은 글을 쓰고, 그렇게 많은 강연을 듣고, 뻔뻔스럽게 인문학을 들먹이며 대학에 합격까지 했는데, 인문학이 뭔지, 그게 왜 중요한지 도당체 모르겠다.




 그들이 설명한 바로는 인문학은 마법이었다. 습득만 하면 대학에 합격하고 여자친구가 생기고 직장이 생기고 인생이 술술 풀리는 마법이었다. 그런데 나는 왜 이러지? 분명 선생들이, 교수들이, 어른들이 나보고 인문학적 소양이 철철 넘친다고 잡다한 칭찬을 했는데. 내 삶은 왜 이 꼴이지? 왜 우울증에 걸리고, 시험에 떨어지고, 꿈을 읽고 비참하게 고통받고 있지? 1년에 책 한 페이지도 안 읽는, 어른들의 기준으로 봤을 때 인문학적 소양이라곤 오랜 가뭄에 말라 쪼그라든 우물처럼 하나도 없는 사람들은 돈도 벌고 하고 싶은 일도 하며 즐겁게 살고 있는데 왜 나는? 나는 왜 이 모양 이 꼴이지?


 이제야 깨닫는다. 폭풍과도 같았던 인문학 유행은 바이럴이었다. 작가가, 강사가, 교수가, 출판사가, 방송 작가가 지들 한몫 챙기려고 준비한 많고 많은 소재거리 중 하나였다. 나는 그 바이럴에 보기 좋게 당한 호구였고.


 인문학을 몰랐다면, 차라리 책 따위 읽지 말고 돈 버는 법을 연구했다면. 글 따위 쓰지 말고 일 분이라도 더 공부해서 더 좋은 대학에 갔다면. 그랬다면 지금과 같은 절망은 느끼지 않아도 됐을 텐데. 뭔지도 모를 인문학보다, 먹고사는 문제가 먼저였는데. 난 그것도 모르고 인문학 뽕에 취해 모든 걸 잃었다. 그놈의 인문학이 대체 뭐라고. 멍청한 새끼.


<책 읽는 노인>, painted by MS Desig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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