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왜 꿈이 없냐고 물으시면 어쩌란 거죠
새 학기가 되면 연례행사처럼 꼭 하던 일이 있다. 학생들에게 자그마한 종이를 나눠주고, 그것에 본인의 정보를 적게 하는 것이다. 담임 선생님이 학생들을 파악하고 친해지기 위해 하는 일이었다.
그 종이의 양식은 매번 달랐지만, 반드시 존재하는 칸이 있었다. 바로 ‘장래희망’이었다. 커서 뭐가 되고 싶냐는 질문. 뭇 어린아이들의 심장을 뛰게 만드는 질문이다. 아이들은 상상의 나래를 펼쳐 미래의 어른이 된 자신의 모습을 그린다. 그리고 그 환상을 솜주먹 같은 손으로 꼬깃꼬깃 써내려간다.
그때는 몰랐다. 이 ‘꿈’이라는 것을 담보로 잡혀,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해야만 하는지.
어른들은 ‘꿈’을 강조했다. 너희 같이 어린아이들은 반드시 꿈을 가져야 한다면서, 이상한 공익 광고 같은 영상을 지겹도록 보여주었다. 꿈을 이루고 행복한 삶을 사는 사는 사람들의 화려한 모습을 보고, 그들이 꿈을 추구하는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낭만적인지 떠들어대는 것을 들었다.
하지만 어릴 때 내겐 꿈이 없었다. 애초에 ‘꿈’이 뭔지도 몰랐다. 꿈? 그건 잠에 잘 때 꾸는 거 아니었나? 아무 생각 없이 놀고먹기만 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꿈 타령을 해대니 여간 당황스러웠다. 초등학생이 되면 꿈을 정해야 한다는 소리는 전혀 듣지 못했다.
몇몇 아이들은 빠르게 장래희망을 적었다. 나는 10분 넘게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흰 종이와 눈싸움했다. 선생님이 내게 물었다. 너는 꿈이 없냐고. 나는 왠지 잘못을 지은 기분이 들어 주눅이 들었다. 그러자 선생님이 웃으면서 아무거나 쓰라고 했다. 아니, 방금 전까지 꿈이 얼마나 위대한지 연설하던 인간이 갑자기 ‘아무거나’ 쓰라고 하다니. 나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결국 나는 아무거나 적었다. 눈앞에 보이던 직업, ‘선생님’ 말이다. 삐뚤삐뚤한 글씨로 적힌 종이는 선생님 손에 모아져 종이뭉치가 되었다. 선생님은 한 장 한 장 살펴보고, 학생들의 꿈을 발표시켰다. 대통령, 프로그래머, 연예인, 우주비행사… 다양한 직업이 호명되었다.
우리는 서로의 장래희망을 비웃으면서 왁자지껄 떠들었다. 장래희망 발표가 끝나자 선생님은 목을 가다듬더니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꿈을 이루려면 ‘공부’를 잘해야 한다고. ‘공부’를 잘해야만 너희의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아! 선생님의 속셈은 이것이었다. 우리가 장래희망을 만들게 하고, 그 꿈을 인질 삼아 공부를 시키게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보기 좋게 당했다. 내가 되고 싶은 어른이 되려면 공부를 잘해야 한다니! 달콤한 미래를 그리던 초등학생에 불과한 아이들의 마음속에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저주가 내려졌다.
어른들은 툭하면 공부 타령을 했다. 꿈을 이루려면 공부를 잘해야 한다, 공부도 못하는데 밥이 넘어가냐, 공부를 잘해야 성공할 수 있다, 잠은 죽어서 자라, 네가 잘 때 남들은 공부하고 있다, 공부만 잘해라. 다른 건 다 못해도 괜찮으니 공부만 잘해라. 우리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어른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밖에.
10분 만에 급조된 그 꿈이란 것을 위해 우리는 공부했다. 수업을 듣고, 학원에 가고, 문제집에 머리를 처박고, 인강을 듣고, 틀린 문제 개수마다 매를 맞아가며 공부했다. 시험이 끝나면 점수를 매기고, 처참하게 낮은 점수에 울고불고 난리를 떨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열정은 식어만 갔다. 성적표는 매정하게 우리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아홉 개의 등급 속에 위치가 정해진 우리는 숫자에 맞춰 꿈을 수정했다. 생기부 속 장래희망란에 ‘대통령’이라고 적혀 있던 것이 ‘변호사’가 되고, ‘외교관’이 되더니, 최후에는 ‘회사원’이 되었다. 그러자 선생님이 꾸중했다. 이런 직업을 적으면 대학 입시에 불리하다고. 우리는 선생님의 타박에 장래희망을 또 수정했다. 우리는 되고 싶은 꿈이 아닌, 대입에 유리한 직업을 적었다. 적당히 야망적이면서 적당히 현실적인 직업으로. 그 ‘꿈’이란 것은 생기부에 영원히 박제되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기숙사 살이를 했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 불면증이 낫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지만, 어림도 없었다. 아무렴, 이때는 군대에서 몸을 혹사시켜도 불면증은 낫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접 겪기 전이었으니.
중간고사 날이었다. 그날 나는 시험을 잘 봤다. 문제가 술술 풀렸고, 채점을 하니 한두 개 정도만 틀렸다. 1등급은 확정인 점수였다. 나는 기분이 매우 신났다. 기숙사에 돌아와 독서실에 문제집을 던지고, 룰루랄라 하며 방문을 열었다.
방 안은 깜깜했다. 블라인드가 내려가 있어 오후 2시인데도 불구하고 밤처럼 어두웠다. 나는 아무도 없는 줄 알았다.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가니 후배가 있었다. 나는 왜 불을 꺼놓고 있냐고 투덜대려다가, 후배가 누군가와 전화 중인 걸 알고는 입을 다물었다.
후배는 옷도 안 갈아입은 채 교복 차림으로 침대 구석에 무릎을 모아 안고 있었다. 후배는 어머니와 전화하는 중이었다. 후배는 연신 흐느끼면서 사과하고 있었다. 엄마 미안해, 나 바보인가 봐…. 후배는 눈물을 닦을 힘도 없었는지, 그 어두운 와중에도 침대 시트 위로 떨어지는 눈물방울이 또렷하게 보였다. 나는 조용히 캐비닛 안에 외투를 걸고, 가방을 두고 방에서 나왔다. 어떤 위로의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방금까지 시험을 잘 봐 신나하던 내게, 시험을 망친 후배를 위로할 자격 따위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대학에 입학했다. 능력이 달린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죽도록 공부하며, 성적 하나에 울고 좌절하고 체념해가며. 그러자 어른들은 또 묻는다. 너는 꿈이 뭐냐고. 이제 장래희망란에 면접관들이 흡족해할 만한 직업을 적을 필요가 없어진 우리는 솔직하게 말한다. 꿈이 뭔지 모르겠다고, 꿈이 없다고. 꿈이 사라졌다고. 어른들은 인상을 구기며 나무란다. 젊은 놈이 왜 꿈이 없냐고.
우리로서는 억울하다. 언제는 공부만 잘하라고 했으면서. 꿈을 가지라는 말은 사실 우리가 공부를 열심히 하게 만들기 위한 미끼에 불과했으면서. 정말 솔직하게 꿈을 얘기하면 겨우 그딴 게 꿈이냐며 무시했으면서, 혹은 네까짓 게 그 꿈을 이룰 수 있을 거라 생각하냐며 타박했으면서. 그것을 처참하게 도륙내고 짓밟았으면서. 그래서 내 꿈을 지우고 당신들이 맘에 들어할 꿈을 꾸며냈는데. 이제 와서 왜 꿈이 없냐니. 왜 꿈을 찾을 노력은 안 했냐니. 정말 지금까지 공부만 했냐니.
우리는 우리의 꿈을 모른다. 어렸을 때 상상했던 일들은 모두 ‘돈을 못 번다’는 어른들의 냉정한 말에 모두 사라졌다. 대학에 입학한 우리는 하고 싶은 일도 없고, 할 줄 아는 일도 없고, 공부만 잘하는 어른아이가 되었다.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자신의 진짜 꿈을 지우고 다른 직업을 쓰던 친구를. 기적적으로 인서울에 성공했다고 환호하며 무엇을 배우는지도 잘 모르는 학과에 입학했던 친구를. 시험을 망쳐 어머니에게 흐느끼며 사과하던 후배를.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들에게 지금 꿈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