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우리는 당신처럼 살고 싶었다
“너는 아빠처럼 살지 마라.”
아빠는 맥주잔에 술을 따르면서 말했다. 거실 바닥에 아빠다리로 앉은 아빠 앞에 작은 상이 있었다. 그 위에 술병과 조미김, 김치가 있었다. 김치통 위에 젓가락이 아무렇게나 올라가 있었다. 시큰한 술 냄새와 김치 냄새가 뒤섞였다. 나는 곁눈질로 아빠의 구부러진 어깨를 쳐다봤다.
“너는 꼭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라.”
아빠는 술을 들이켰다.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애초에 내가 들으라고 한 말도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이어폰을 끼고 유튜브를 보는 중이었다. 아빠의 시선은 초라한 술상에 박혀 있었다.
아빠는 말없이 또 술을 따랐다.
한국의 교육열은 해외에서도 알아줄 만큼 뜨겁다. 이미 몇 년 전부터 나온 얘기다. 2024년 한국 학생 1인당 사교육비는 47만 4000원으로, 10년 사이에 2배 가까이 올랐다. 서울 수도권 쪽으로 한정하면 가격은 더욱 높아진다. 2024년 서울 고등학생 1인당 사교육비는 102만 9000원이었다. 집안 벌이의 대부분이 사교육비로 빠진다.
이 교육비를 충당하기 위해 부모들은 허리 빠지게 일한다. ‘전업주부’라는 개념은 희미해졌다. 이제는 맞벌이가 당연하게 되었다. 아내와 남편 모두 돈을 벌어오지 않으면 한 달에 백만 원이 넘는 교육비를 버틸 수 없다.
덕분에 유치원과 초등학교는 골머리를 앓았다. 예전에는 오후 1, 2시에 수업이 끝나도 부모님이 자식을 데리러 왔는데, 이젠 일을 하느라 부모가 자식을 데리러 올 수가 없다. 부모가 퇴근하는 시간까지 아이를 돌보는 일은 교사가 맡게 되었다. 부모님 퇴근 시간이 늦어져 유치원에 홀로 남아 부모님을 기다리는 아이, 허겁지겁 뛰어오며 사과하는 부모는 드라마에서도 쉽게 묘사될 만큼 흔한 풍경이 되었다.
우리 부모님도 맞벌이를 하셨다. 두 분 모두 공장에 다니셨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아무도 없었다. 20평도 안 되는 좁은 집에 나와 누나 둘만 있으니 넓고 황량하게 느껴졌다. 나와 같은 처지인 아이들과 아파트 놀이터에서 공을 차고 놀기도 했으나 그것도 몇 년 가지 못했다. 아이들은 점차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컴퓨터란 녀석이 집집마다 생기기 시작했다. 나도 놀이터에 나가는 일이 없어졌다. 아빠가 어딘가에서 뚱뚱한 컴퓨터 하나를 들고 왔기 때문이다. 나는 아프리카 티비를 보거나 메이플스토리를 하면서 따분한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부터 공부방에 다니기 시작했다. 저소득층 아이들이 다니는 곳이었다. 30명 조금 넘는 아이들이 공부방에 모여 문제집을 풀거나 보드게임을 했다. 아이들의 부모님은 당연한 듯 모두 맞벌이였다. 우리는 외롭고 쓸쓸한 집에 혼자 있기보다는 공부방에서 친구들과 노는 것을 좋아했다.
5시에 공부방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면 엄마가 저녁을 차리고 있었다. 하루 종일 공장에서 일하고 온 엄마는 피곤한 몸을 이끌며 어린 자식들이 먹을 찌개를 끓이고 밥을 퍼주었다. 일주일 전과 똑같은 반찬이었지만 나는 맛있게 밥을 먹었다. 어쩌다 엄마가 기운이 남아 계란후라이를 해주기라도 하면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다.
저녁을 먹고 TV를 보다가 10시쯤에 조곤조곤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에 엄마가 잠을 깨우면 식탁에 앉아 밥을 먹었다. 이미 출근 준비를 마친 엄마는 나와 누나가 숟가락을 뜨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다음에야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그때 나와 엄마가 함께 있는 시간은 하루에 6시간 남짓밖에 안 되었었다. 깨어 있는 시간 대부분은 학교 아니면 공부방이었다. 그때 나는 초등학생이 되면 부모와 같이 있는 시간이 줄어드는 게 당연한 건가 생각했다.
부모는 자식이 자신보다 행복하게 살길 바란다. ‘너는 나처럼 살지 마라’는 말은 그 마음이 반영된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을 듣는 자식 된 입장에서는 슬픔을 느낄 수밖에 없다.
‘나처럼 살지 마라’라는 말은, 자식은 당신처럼 실패한 삶을 살지 않길 기원하는 것이다. 부모들은 자식을 위해 당신의 인생을 손쉽게 부정한다. 자식을 배불리 먹이기 위해 당신의 꿈을 포기하고 고된 일을 참아가며 돈을 벌고 꿋꿋이 견뎌온 삶의 전철을 자식이 밟지 않길 바란다.
그 말을 듣는 어린 자식은 자연스럽게 부모의 삶을 실패작으로 여기게 된다. 부모의 사랑과 헌신을 희생과 체념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는 다짐한다. 나는 엄마 아빠처럼 살지 않을 거라고. 엄마 아빠처럼 실패한 인생이 아니라 성공한 인생을 성취하고 말겠다고. 그것이 엄마 아빠를 위한 효도라고.
시간이 흐르고 몸뚱이가 커지고 나서야 자식은 깨닫는다. 이 세상은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들고 가혹한 곳임을. 진상 손님에게 쩔쩔매며 고개를 숙이고, 정신없이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서빙하고, 늦은 밤에 집에 돌아와 저녁상 하나 차리기도 힘들어 뻗어 누울 때가 되어서야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고된지 알게 된다.
우리가 ‘부모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것은 부모보다 훨씬 성공해서 풍족한 삶을 살기 위함이었다. 이것이 우리가 당신에게 물려받은 사랑이었다. 가난에 대한 공포는 세대를 넘어서 되물림되었다. 우리가 까닭 없이 슬프고 포기하는 게 늘어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었다.
당신은 우리가 당신과 닮지 않기를 바랐지만, 슬프게도 유전이란 것은 생김새와 성격을 넘어 인생까지 이어졌다. 개천에 용이 나기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다는 사실을, 부유한 부모 아래엔 부유한 자식이 나고, 가난한 부모 아래엔 가난한 자식이 날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야 깨달았다. 우리는 당신의 슬픔마저 물려받았다. 그것은 불행일까, 축복일까. 나는 알 수 없었다.
이제서야 고백한다. 우리는 당신처럼 살고 싶었다. 고통스러운 현실을 묵묵히 견디고, 쥐꼬리만 한 돈을 벌고, 술 한 잔에 고민을 털어버리고, 사랑스러운 자식에게 사랑을 베풀며 살고 싶었다. 당신이 우리에게 기어코 그러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