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따위로 태어나버려서 죄송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안할 따름이다

by 천비단



11월 셋째 주 목요일만 되면 대한민국 전체가 긴장에 휩싸인다.


거리는 한산하고,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조차 조용하며, 심지어는 하늘에 비행기조차 뜨지 않는다. 절과 교회에 중년 여성들이 가득 들이차 새벽부터 거의 온종일 기도를 올린다. 아무리 날씨가 추워도 교문 앞에 사람들이 모여 현수막을 내걸고 간식을 나누어주며 환호를 지른다. 그 인파 사이를 가로질러 학생들이 위풍당당하게 걸어간다. 반드시 승리하여 돌아오겠노라 당부하며 전쟁터로 떠나는 영웅처럼.


대학수학능력시험. 수능.


1993년 처음 실시된 이래로 그것은 학생과 학부모의 가장 중요한 연례행사가 되었다. 그 시험 하나를 위해 많은 학생이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치른다. 그리고 그 결과에 좌절한 이들은 허탈감과 두려움에 못 이겨 세상을 등진다. 수능이 끝나고 12월부터 청소년 자살률은 점점 떨어져 겨울에 최저치를 찍는다. 그리고 새 학기가 시작되면 다시 오르기 시작한다. 오르고 내리는 롤러코스터는 수많은 학생들의 좌절과 비관으로 만들어진다. 수능, 그것은 우리의 대축제이며, 합동장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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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 원서 6개를 모두 수시로 넣었다. 수능 성적만으로 대학 입학이 결정되는 정시와 달리, 수시는 내신, 면접, 논술 시험 등 수능 외의 요소도 평가받는다. 단 한 번의 시험으로 대입이 결정되는 경쟁을 해소한다는 명목 하에 수시 제도는 매년 강화되어 왔다. 수능에 자신이 없던 나로서는 다행인 제도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수시를 한다고 수능 성적이 완전히 필요 없던 건 아니었다. 인서울 학교는 대부분 최저등급이라는 것을 요구했다. 나는 고려대 최저등급을 맞추기 위해 수능을 봤다.


부모님은 내 대입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고려대에 원서를 넣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대치동에서 학원을 한다는 지인과 연락했다. 덕분에 나는 대치동에서 특별강의를 받을 수 있었다. 그 학원은 각 대학교의 각 입시전형에 따라 맞춤형 컨설팅을 해주는 학원이었다. 나는 이런 학원이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리고 수도권에 살아서 다행이란 생각도 했다. 지방에 살았다면 이런 학원에 올 수도 없었을 테니.


문제는 19학년도 수능 국어가 역대급 불수능이었다는 점이다. 비문학 지문으로 과학 관련 내용이 나왔다. 시간도 얼마 없는데 지문 길이만 한 페이지에 육박할 정도로 길었다. 나는 지문을 빠르게 읽고, 내 과학 지식을 활용해서 문제를 풀었다. 집에 돌아와 채점하니 틀렸다. 결과적으로 나는 3등급을 맞았다. 국어에서 처음 받아보는 점수였다. 나는 0.5등급 차이로 고려대 최저등급을 맞추지 못했다. 부모님의 노력은 모두 허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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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기간만 되면 우리는 울상에 빠졌다. 교실은 날이 갈수록 차가워졌다. 평소 수업 시간에 웃고 떠들기만 하던 친구들도 시험이 얼마 남지 않으면 입을 닥치고 문제집을 깨작깨작 풀었다. 조금이라도 말소리가 들리면 공부 잘하는 친구들은 화가 잔뜩 난 목소리로 조용히 하라고 소리 질렀다. 친구들은 내 눈치를 보면서 책상에 시선을 떨궜다.


시험 당일에는 더 가관이다. 잔뜩 사나워진 친구들은 띄엄띄엄 놓인 책상에 앉아 종이에 고개를 박고 눈에 불을 켜고 입술을 달싹거리며 주문 같은 것을 외운다. 시험이 시작되면 학생들은 문제를 풀고, 선생님 두 분은 교실을 돌아다니며 우리를 매섭게 감시한다. 시험이 끝나면 OMR 카드를 걷어가고 선생님들은 한 장 한 장 검사한 후 나간다. 그러자마자 친구들은 내 시험지를 뺏어가 자기들 것과 대조하면서 기뻐하거나 좌절했다. 나는 그럴 시간에 다음 시험 준비나 하라고 쏘아댔지만 내 말을 듣는 친구는 없었다.


시험이 끝나면 성적표가 나왔다. 친구들은 이 성적표를 어떻게든 숨기기 위해 열심이었다. 손바닥만 한 그 종이쪼가리를 갈기갈기 찢어 하수구에 버렸다. 어떤 친구는 심지어 삼키기도 했다.


하지만 학교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학교는 우리 집에 성적표를 우편으로 보냈다. 우리는 성적표가 배달되는 날에는 재빠르게 집에 가서 우편함을 비웠다. 그러자 선생님들은 카톡이나 네이버 밴드로 학부모에게 성적표가 나왔다는 사실을 친히 알려주었다. 분명 선생님께서 성적표가 나왔다고 했는데, 부모는 성적표가 아직 안 나왔다고 뻗대는 자식을 추궁했다. 성적이 얼마나 나쁜지 사실대로 고하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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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할 건 인정하겠다. 우리는 부모님보다 훨씬 좋은 세상에 살고 있다. 먹을 게 없어서 굶을 걱정도 안 하고, 아무리 가난해도 학교는 다닐 수 있고, 심지어는 EBS에서 무료로 인터넷 강의도 보여준다. 과거처럼 공부를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사회가 아니다.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공부를 할 수 있다.


그래서 어른들은 우리를 이해하지 못했다. 왜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축복받은 세상에 태어났으면서, 왜 공부를 하지 않는지. 왜 성적이 이 모양 이 꼴인지.


당신은 우리를 가리키며 ‘우리 애가 공부를 안 해서 그렇지 머리는 좋다’고 해명하듯 말했다. 마치 당신도 충분한 기회가 주어졌다면 지금보다 훨씬 성공한 삶을 살 수 있었을 거라고 변명하듯이 말이다. 나도 기회만 있었다면 허름한 작업복이 아니라, 하얀 와이셔츠에 정갈한 넥타이를 맸을 거라고 항변하듯 말이다.


그래서 당신은 문제집을 끙끙대며 푸는 우리를, 밤늦게 스탠드등 하나 켜고 공부하는 우리를 대견해했다. 그리고 기대했다. 우리가 보란 듯이 성공하길. 엄청난 성적을 받고, 모두가 우러러보는 대학에 합격하길. 그래서 당신이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삶을 쟁취하길.


하지만 우리는 그 기대를 배반했다. 불안한 표정으로 우물쭈물 성적표를 내밀며, 당신의 그 후회 짙은 믿음을 꺾었다. 당신의 쓸쓸하고 허탈한 표정을 마주했다. 체념하듯 “그래, 잘했다.”하고 툭 내뱉는 한 마디를 잠자코 들었다. 당신의 어린 분신인 우리가 당신에게 혹시 몰랐던 가능성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고 증명하고 말았다.





그래서 우리는 당신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당신의 머리를, 당신의 삶을 그대로 닮아버린 우리가, 당신의 믿음을 깨버려서. 이 따위로 태어나버려서 죄송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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