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칼 들고 협박함?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누칼협'

by 천비단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밈(meme)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유전자처럼 자기복제를 거듭하여 진화를 거듭하는 문화적 유전자. 사상, 이념, 종교 따위를 일컫는다. 인터넷이 발달한 지금은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문화, 창작물, 유행어 등을 뜻하는 단어로 변했다.


2021년 한국에서 유행한 밈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누칼협’이다. ‘누가 칼 들고 협박함?’이라는 뜻이다. 말만 들어서는 무슨 용도로 사용하는 의미인지 파악이 안 될 것이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떠올리기도 힘은 악의가 담긴 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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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게임 커뮤니티였다. 한 유저가 ‘게임이 과금이 너무 맵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글을 올렸다. 그 글에 ‘누가 이 게임 하라고 칼 들고 협박함?’이라며 징징대지 말라는 댓글이 달렸다. 이 댓글이 컬트적인 인기를 끌어 이제 게임과 관련하여 불만하는 글이 올라올 때마다 댓글로 “누가 칼 들고 협박함?”이라는 말이 달렸다.


문제는 이 다음이었다. 이 ‘누칼협’이 게임 커뮤니티를 넘어 사회 현상까지 뻗어나갔다. 코인, 주식, 부동산 투자를 하다가 재산을 날린 사람들이 절망하자 ‘누가 투자하라고 칼 들고 협박함?’이라고 조롱했다. 공무원의 처우 개선을 토로하는 주장에 ‘누가 공무원 하라고 칼 들고 협박함?’이라고 비난했다. 심지어는 1년 후 이태원 참사가 일어나자 ‘누가 이태원 가라고 칼 들고 협박함?’이라며 피해자들을 조롱했다.


전국적인 참사에도 ‘누칼협’이 쓰이자 사람들은 분노했다. 이렇게 냉소적이고 불특정 다수에게 상처 주는 밈은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나타났다. 이 ‘누칼협’을 분석하고 비판하는 칼럼도 많이 나왔다. 아무렴 전국민이 슬픔에 빠져 있는데 그 옆에서 ‘누가 칼 들고 협박함? 결국 지 선택으로 죽은 거 아님?’이란 말을 하고 있는데 좋게 볼 사람이 없긴 하다.






‘누칼협’ 밈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세대는 MZ세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밈에 가장 많이 긁히는 사람 또한 MZ세대다. 대체 왜 MZ세대 사이에 ‘누칼협’ 같은 밈이 유행한 걸까?


‘밈’은 그 밈이 탄생한 사회와 연관이 있다. ‘누칼협’은 각자도생, 무한 책임을 강요하는 2020년대 한국 사회의 비정한 모습을 보여주는 밈이다. 더 이상 남의 불행과 슬픔에 공감해주지 않겠다는 이기적이고 방어적인 면이 극대화된 것이다.


결국 ‘방어기제’로 설명할 수 있다. 저 사람이 불행한 것은 저 사람이 잘못된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올바른 선택을 했으니 나는 안전할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으로 심리적 안도감을 얻는다. 사실은 자신도 언제든 저들과 같은 억울한 피해자가 될 수도 있지만, 그럴 리 없다며 스스로 속이는 것이다. 만약 피해자들의 사연에 공감하는 순간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공포와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 불행한 사람은 ‘이유’가 있어서 불행하다는 논리를 내세우는 것이다.


더군다나 한국은 극단적 능력주의에 빠져 있다. 모든 결과는 개인의 노력과 선택에 달려 있다. 능력이 뛰어나고 선택을 올바르게 한 사람은 행복하다는 거짓된 믿음을 갖는다. 이 믿음은 사람들 사이의 공감을 가로막는다. 나도 힘들게 사는데, 네 징징거림을 받아주면 내가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남의 불행에 더욱더 차갑게, 냉소적으로 반응한다. 결국 네 잘못 아니냐며.


tempImageRZ6Ubt.heic <군중 속의 외침>, painted by Grok


‘누칼협’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처우 개선을 바라는 노동자도, 진상 민원인을 상대하는 공무원도, 코인 투자에 실패하여 전재산을 날린 사람도, 전세 사기를 당해 피와 같은 돈을 잃은 피해자도 마찬가지다. 설움을 토로해봤자 ‘누가 칼 들고 협박했냐, 결국 네 선택 아니냐.’하는 차가운 대답만 돌아온다.


개인의 불행은 모두 개인의 선택에서 기인하는가? 아니다. 어떤 불행은 한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요인에서 온다. 그것은 사회구조적 문제인 경우가 많다. 분명 선택했다. 그것이 진정 자유의지에서 비롯한 자발적인 선택이었나 묻고 싶지만, 본인의 선택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선택에서 동반된 부조리조차 감수해야 하는가?


‘누칼협’은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묻는다. 힘든 거 알고 선택한 거 아니냐, 위험한 거 알고 선택한 거 아니냐며, 사회가 해결해야 할 시스템의 결함조차 개인에게 전가한다.


나는 이 밈이 슬프게 느껴질 때도 있다. 이들의 비아냥이 자기 자신에게 하는 자조적인 조롱으로 보일 때도 있기 때문이다. 사는 게 힘들다는 말에 ‘누가 한국에서 태어나라고 칼 들고 협박함?’이라는 댓글을 봤을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착잡함을 느꼈다. 아무리 노력해도 불행에서 벗어날 수 없고,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무력감. 그로 인해 가슴 깊은 곳에서 사무치는 패배주의와 냉소주의. ‘누칼협’의 본질은 스스로를 자조하는 마음 아닐까.






‘누칼협’은 사람들의 비판으로 인해 빠르게 유행이 사그라들었다. 그 대신 다음으로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나 ‘기가차드’ 같은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밈이 유행했다는 사실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서로를 비웃고 물어뜯는 세상보단, 보잘 것 없는 인생이라도 보다 나은 내일이 있을 거라 기대를 품는 세상이 살만 하지 않겠는가.


tempImageZK4Sdr.heic 정보) 데프트는 저런 말 한 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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