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과 패배주의에 빠진 MZ세대
2000년대, 인터넷 커뮤니티가 한창 성장하던 시기에 다양한 유행어가 만들어졌다. 그중에 개그콘서트까지 당당히 진출한 유행어가 하나 있다. ‘ASKY’라는 암호문까지 존재했던 그 유행어, 바로 ‘안 생겨요’다.
자신은 왜 여자친구가 생기지 않을까 한탄하는 고등학생의 글에, ‘~하면 생길 것 같죠? 안 생겨요.”라는 희망고문처럼 보이는 댓글이 달린 것이 너무나도 웃픈 상황을 연출했기에 여기저기 짤방으로 돌아다녔다.
이와 비슷한 밈이 몇 개 더 있다. ‘우린 안될 거야 아마’, ‘틀렸어 이제 꿈이고 희망이고 없어’, ‘현실은 시궁창’, ‘포기하면 편해’…. 이 문장에 공통적으로 보이는 씁쓸하고 자조적인 느낌. 젊은 세대의 ‘패배주의’는 오래 전부터 친구처럼 존재했다.
왜 MZ들은 패배주의에 빠졌을까? 여러 설명이 있겠지만, 내가 가장 그럴싸하다고 생각하는 설명은 바로 ‘학습된 무기력’이다.
우리는 정말 어릴 때부터 공부했다. 공부가 정확히 무엇인지 모를 나이부터 부모님이나 주위 웃어른들에게 공부를 잘해야 한다고 들으며 자랐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교육열이 심한 지역이라면 유치원 다닐 때부터 성적에 대한 압박을 느낀다. 공부하고, 시험을 치르고, 그 성적에 실망하거나 순응하는 과정을 10년 넘게 거쳤다.
모두가 공부를 잘할 수는 없다. 성적은 상대평가로 결정된다. 1등급에서 9등급까지 내 위치가 결정되어 나온다. 아무리 죽도록 노력해봤자 나보다 더 죽을 각오로 노력한 사람의 성적을 뛰어넘기는 힘들다. 학창 시절은 패배감을 느끼고, 그것에 체념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겨우겨우 대학에 합격했다. 문제는 취업이 안 된다.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는 게 그렇게나 어려웠는데, 누구나 대학에 가는 시대라며 대학 졸업장이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다. 명문대에 나와도 취업을 못하는 시대라고 한다. 이건 말이 다르지 않나. 대학만 가면 인생 풀린다고 말하던 게 누군데.
어쩌다 취업을 했어도 문제다. 돈이 모이질 않는다. 내가 받는 월급에 비해 집값이나 물가가 감당하기 힘들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거대한 변수들이 내 삶을 뒤흔든다. 이렇게 돈을 모아봤자 내 집을 가질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MZ의 삶은 패배의 연속이다.
부모님 세대에는 성공법칙이 존재했다. 뼈 빠지게 공부를 해서 서울에 있는 대학에 들어가 번듯한 직장에 취업한다. 돈을 벌고, 결혼하고, 서울 또는 수도권에 집을 장만한다.
이 공식을 따른 자들은 성공했고, 그렇지 못한 자들은 성공하지 못했다. 성공한 자든, 성공하지 못한 자든 모두 자식들에게 똑같은 성공법칙을 가르쳤다. 성공한 사람은 자식의 자신의 뒤를 따라오기를, 그렇지 못한 사람은 자식만이라도 성공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이다. 성공하지 못한 부모가 더더욱 광적으로 성공법칙을 맹신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 성공법칙이 붕괴했다. 더 이상 명문대에 간다고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 대학을 졸업했어도 일자리가 없다.
우리는 어른들이 말했던 성공법칙을 믿었다. 믿는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공부를 잘해야, 좋은 대학에 가야 성공한다고 말하는데 어찌 거역하는가. 그런데 어른이 되니 인서울을 해도 성공하지 못한다고 말을 싹 바꾼다. 어처구니가 없다. 사기라도 당한 기분이다. 언제는 대학교만 가면 인생이 풀린다면서?
MZ 사이에는 자기계발 열풍이 돈다. ‘갓생 챌린지’라며 사람들이 생산적인 일을 하고 인증하거나, 베스트셀러에 자기계발서가 즐비하다. MZ들은 패배주의에 빠졌다면서, 왜 자기계발은 열심히 하는가? 패배주의와 자기계발의 기묘한 동거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MZ세대는 거시적인 희망은 포기했다. 계층 상승, 내 집 마련. 어른들이 말했던 ‘성공의 지표’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희망을 포기한 대신, 미시적인 희망에 눈을 돌렸다. 운동, 독서, 자격증 같은 작은 성취를 이뤄나가며 효능감을 갖기로 한 것이다.
한강뷰 아파트를 위해 10억을 모을 수는 없지만, 아침 6시에 일어나 운동하는 것은 할 수 있다. 이렇게 미시적인 자기 통제감을 느끼며 나를 위로한다. 거대한 패배감에 무너지지 않기 위해 ‘작은 승리’를 성취해나간다. 나는 내 삶을 통제할 수 있다는 희망을 얻는다.
세상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노력은 성과를 보장하지 않는다. 더 높은 하늘을 꿈꿨던 새는 더 깊이 추락할 뿐이었다.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유일하게 내 맘대로 되는 자기 자신을 통제하려고 한다. 이것이 패배주의와 자기계발이 공존하는 이유다.
한 마디로, MZ세대의 자기계발은 성공을 위해서 하는 게 아니다. ‘오늘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내일 도태될 것 같다’는 불안에서 기인한다. 현실에 빼앗긴 내 삶의 통제권을 되찾기 위해, 자신이 어딘가에 쓸모 있는 인간이라는 증명을 해서 안심하기 위해 자기계발을 한다. 패배주의적 자기계발이다.
오늘도 노력해도 성공할 수 없다는 한탄글과, 새벽 러닝 인증 사진이 올라온다. 나는 지금도 귓가에 들린다. 너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상냥하게 말하던 어른들의 목소리가. 바라던 것 모두 실패하고 포기해버린 지금의 나는 패배감만 곱씹을 뿐이다. 아, 그래도 브런치에 계속 글을 올리고 있으니 나름 자기계발 중인 거 아닐까?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