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말고 DM 하면 안 되나요

완벽주의 강박에 시달리는 MZ세대

by 천비단



한국인은 배달의 민족이다. 배달 서비스가 그 어떤 나라보다 발달했다. 한강 잔디밭에서 치킨 배달을 시킬 수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이다.


배달앱이 인기를 끌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두껍게 쌓인 전단지를 하나하나 둘러보며 전화를 걸어 주문해야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앱에 들어가 인기 있는 가게를 둘러보고 마음에 드는 곳에 터치 몇 번으로 음식을 주문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MZ세대가 배달 요청사항에 꼭 적는 문구가 있다. 바로 ‘문 앞에 두고 가주세요’다. 앱으로 결제를 미리 하니 배달 기사와 대면할 필요 없이 음식만 두고 가달라고 하는 것이다. 전화도 하지 않고, 배달 기사와 마주치지도 않고 배달 음식을 시킨다. 배달앱의 등장으로 우리는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음식을 시켜먹게 되었다.


배달뿐만이 아니다. 미용실이나 식당도 앱으로 예약한다. 전화 예약만 가능하다는 곳은 일찍이 포기한다. 점점 ‘말을 섞어야 한다’라는 점은 마이너스 요소가 되어 간다.


회사 신입 사원이 가장 두려워하는 업무 1위는 ‘전화 응대’라는 설문 조사가 있다. 상대의 말을 듣고 해석하여 적절한 대답을 즉흥적으로 꺼내야 한다는 점에서 공포를 느낀다. MZ세대는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세대가 되었다.


쉽지 않음






전화를 무서워하고 기피하는 증상을 ‘콜 포비아(Call Phobia)’라고 한다. MZ세대들 사이에서 점점 유행처럼 번져나가는 증상이다. 단순 성격 문제라고 하기에는 각종 통계자료에서 콜포비아 증상을 겪는다는 비율이 40~50%나 된다.


MZ세대가 콜포비아를 겪는 원인으로 스마트폰의 발달로 인한 소통 방식의 변화나, 비언어적 요소의 부재로 인한 피로도 증가 등을 꼽는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그보다도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그것은 MZ세대에게 사명처럼 각인된 ‘완벽주의 강박’이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정답을 강요받는다. 틀려서는 안 된다. 한번의 실수가 미래에 진학할 대학을 결정짓는다. 초등학생 때는 자신감 넘치게 손을 번쩍 들며 대답하던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되면 아무도 손을 들지 않는 이유다. 틀려서는 안 된다는 강박이 입을 틀어막는다.


문자를 보낸다면 글을 쓰다가 지우고 다시 쓸 수 있다. 하지만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 한 번 뱉은 말은 돌이킬 수 없다. 혹시라도 말실수를 했다간 자신의 결점을 그대로 내보이는 꼴이 된다. 완벽주의적 강박이 전화를 두려워하고 피하게 만든 것이다.






대학생 때 가장 피말렸던 것은 수강신청이었다. 필수 과목은 지지리도 많으면서 수강생을 코딱지만큼 제한하는 이유를 나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게다가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수강 인원은 더더욱 줄어들었다.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만반의 준비를 마쳤으나, 필수 과목 하나를 수강 신청하는 데 실패했다. 결국 계절학기 때 그 수업을 듣는 수밖에 없었다.


그 교수님은 지금 생각해도 열정이 넘치시는 교수님이었다. 중년의 나이에 연차가 오래 쌓이고도 목소리에 열정이 남아 있는 교육자를 보기란 어렵다. 수업은 강의와 참여 활동이 적절하게 섞인 수업이었고, 나는 나름대로 그 교수님의 수업을 좋아했다. 조를 못 짜서 나 혼자 조별과제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남들은 서너 명씩 모여 역할 분담하고 착실하게 과제를 해나갈 때 나 혼자만 자료 조사하고 과제 만들고 테스트도 하고 발표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 일어난다면 납득할 수 있는가? 아직도 세상에는 이런 비상식적인 일이 무분별하게 일어난다.


교수님?


그 교수님은 학생에게 참 관심이 많았다. 특히 ‘수업에 학생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에 가치를 두셨다. 매 수업마다 참여활동을 준비해두신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런 교수님이 늘상 하는 행동이 있다. 바로 ‘질문’이다.


교수님은 자주 질문을 던졌다. 설명을 하다 말고 시선을 학생들에게 돌린 다음 명랑한 목소리로 질문을 하셨다. 하지만 대답이 곧바로 돌아오는 일은 잘 없었다. 우리는 반쯤 정신이 나간 표정을 한 채 멀뚱멀뚱하게 교수님을 바라봤다. 앞자리에 앉은 학생이 책임감을 느끼고 작은 목소리로 대답을 하고 나서야 교수님은 다음 설명으로 넘어갔다.


이런 일이 반복되니 한 번은 교수님이 수업을 하다 말고 한탄을 하신 적도 있다.


“다들 아침이라서 피곤한지 질문을 해도 대답도 안 해줘. 허허.”


그때 교수님의 표정은 어딘가 쓸쓸해보였다. 물론 그때 나는 뒷자리에서 졸음과 사투를 벌이고 있던 터라 확실하지는 않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어릴 때에는 선생님이 질문을 하면 너도나도 손을 번쩍 들어서 발표하던 때가 분명 있었다. 아무리 엉뚱한 대답을 말해도 웃고 넘어가던 시절이 있었다. 선생님의 질문에 자신있게 대답하고, 그 보상으로 사탕이나 점수 따위를 얻고 기뻐하던 때가 분명히 내게 있었다.


하지만 나이가 찰수록 번쩍 들린 손이 점점 줄더니 고등학생이 되자 아예 손을 들지 않게 되었다. 그때쯤 되니 선생님도 더이상 우리에게 질문을 하지 않았다. 무표정한 얼굴의 학생들에게서 뒤돈 채 칠판만 바라보고 설명을 하던 선생님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하며 기뻐하던 아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흔히들 한국은 교육강국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 교육이란 것을 몸소 체험한 내 입장에서 말하자면, 한국은 교육강국이 절대 아니다. 그저 과도하게 교육열이 뜨거운 것뿐이다. 과도한 교육열이 높은 품질의 교육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오히려 그 열기에 비참하게 비틀리고 녹아내려버린다.


우리가 받은 교육은 오답을 허용하지 않았다. 한번 실수하는 순간 그것은 내 성적표에 영원히 남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내신이라는 이름으로 내 미래를 결정짓게 되었다. 시험 문제가 쉽게 나오면 모범생들은 오히려 걱정했다. 실수 하나 해서 문제 하나라도 틀리는 순간 등급이 쭉쭉 떨어져서 그렇다.


한 번의 실수가 내가 갈 대학을, 더 나아가 내가 갖게 될 직업, 미래에 이룰 꿈까지 결정 지을 거란 믿음이 우리를 시험에 매달고 성적표를 받아들고 나서 펑펑 울게 만들었다. 그 믿음이 거짓이라고 말해주는 어른은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진실이라고 믿게 만들었다. 그래야 우리가 공부할 테니.


수시가 중요해지면서 상황은 더 나빠졌다. 수시란 수능 성적으로 대학을 결정하는 정시와 다르게, 평소 학교 생활과 내신성적, 수상 경력, 특별 활동 경험 등으로 입시를 결정하는 제도를 뜻한다. 이는 곧 평소 학교 생활할 때에도 실수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다. 수업을 들을 때에도, 수행평가를 할 때에도, 심지어 쉬는 시간에도 우리는 선생의 눈치를 봐야만 했다. 그깟 점수를 위해서. 그깟 교과세부능력및특기사항을 위해서.


‘너 이렇게 굴면 생기부에 뭐라고 적힐지 안 무섭냐’라고 협박하는 선생도 종종 있었다. 실제로 어떤 친구는 학기말에 생기부를 확인하자 비방에 가까운 내용이 적혀 있는 친구도 있었다. 그 친구는 이러면 대학 어떻게 가냐고 머리 끝까지 분노한 채 교무실로 따지러 갔었다.


오답을 남겨서는 안 된다. 이 문장은 우리를 움켜쥐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오답을 말해서는 안 되기에, 우리는 대답하지 않기로 했다. 실수해서는 안 되기에, 실수할만한 상황 자체를 피하기 시작했다. 완벽주의가 우리의 입을 틀어막았다.






수화기를 든 채 어버버거리며 당황하는 신입사원. 그 모습을 보고 기성세대는 답답해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측은함을 느낀다. 당신도 참 열심히 학창시절을 보냈겠구나, 열심히 살아왔겠구나. MZ들은 농담삼아 말한다. 팀장님, 전화 말고 DM 하면 안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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