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보다 내가 더 중요해
2022년 쿠팡플레이의 SNL에서 <MZ오피스>라는 코너를 선보였다. 기성세대 사원들과 당돌한 MZ 신입들 간의 에피소드를 그린 개그 프로였다. 이어폰을 끼고 일을 하거나, 맑눈광의 포스를 뿜으며 상사를 상대하는 장면은 쇼츠나 릴스로 편집되어 유행을 탔다. 사람들은 말했다. 회사에서 MZ 신입 만나기가 두렵다고.
개그 프로 속 에피소드가 개그맨들이 지어낸 것이었다면 속편히 웃기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에피소드 상당수가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각색한 것이다. ‘회사에서 이어폰 끼고 일하는 MZ 후배’가 실화라는 것이다.
사람들의 반응은 반으로 갈렸다. ‘회사에서 어떻게 이어폰 끼고 일하냐, 예의가 없다’라는 사람과, ‘회사에서 이어폰 낄 수도 있지, 일만 잘하면 되지 않냐’라는 사람으로. 이어폰 찬성파가 이어폰 반대파를 꼰대로 몰아가자, 이어폰 반대파는 ‘진짜로 내가 꼰대인가?’하며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찬성파 반대파 둘 모두 같은 MZ세대라는 것이다.
오해부터 풀고 가겠다. 모든 MZ들이 다 무개념한 것은 아니다. 무개념한 짓을 하는 MZ는 소수다. 일할 때 이어폰 낀다는 사연은 같은 MZ들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단순히 개그라고 치부하기에는 힘든 것도 현실이다. 실제로 MZ 신입사원을 이해할 수 없어 고민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종종 보인다. 개그 프로로 풍자되고, 사람들의 공감을 얻은 것은 실제로 현실에 그러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대체 MZ들은 왜 저러는 걸까?
왜 MZ들은 회사에서 일할 때 이어폰을 끼는 걸까? 왜 눈 뜰 새 없이 바쁜 시기에도 칼퇴를 고집하는 걸까? 당돌하게 회식하기 싫다고 말하며 회식자리에 빠지는 걸까? 왜 선배에게 아무 말도 안 하고 어느 날 갑자기 조용하게 퇴사하는 걸까?
과거 아버지 세대에는 한 직장에 평생동안 근무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1970~90년대에는 경제가 급격하게 성장하는 시기였다. 기업은 승승장구하며 성장했고, 기업의 성장은 곧 직원의 승진, 임금 인상으로 바로 이어졌다. 또한 한 직장에서 오래 근무하는 게 사회적으로 성실하다고 받아들여졌다. 퇴사나 이직을 자주 하는 사람은 인내심이 없고 적응력이 떨어진다는 낙인이 찍혔다.
그러나 1997년 IMF 외환위기 사태가 터지고 상황이 달라졌다. 대규모 구조조정이 일어나 수많은 아버지들이 직장에서 해고되었다. 씁쓸한 표정으로 집에 돌아온 아버지를 보며 우리는 느꼈다. 직장은 개인의 삶을 영원히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것을.
회사는 개인의 삶을 책임져주지 않는다. ‘평생직장’의 개념은 희미해졌다. 주인의식을 가지라느니, 회사 사람들은 가족이라느니 하는 말에도 골났다. 회사와 나는 계약으로 이루어진 비즈니스 관계지, 가족 사이가 아니다. 더 이상 회사에 충성하는 직원은 없다.
인식 또한 바뀌었다. 회사를 위하는 것보다 개인의 삶을 위하는 것이 더 낫다는 인식이 새겨졌다. 집단주의에서 개인주의로 변화한 것이다. 더 이상 사람들은 회사에 충성하지 않는다. 회사는 생계를 이어나갈 수단일 뿐이다. 나의 행복을 영위하는 게 더 중요하다.
우리에게는 소망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받은 만큼 일하고 싶다’는 것이다.
우리는 갑작스러운 야근이 싫다. 팀장님의 변덕으로 인해 예정에 없던 회식에 끌려가는 게 싫다. 법적으로 정해진 퇴근 시간에 눈치 볼 필요 없이 퇴근하고 싶다. 왜 우리가 일을 다 하고 퇴근하는데 “오늘도 칼퇴해?”라는 상사의 말에 눈치를 봐야 하는가?
젊은 세대에 중요해진 가치가 있다. 바로 ‘공정성’이다. ‘받은 만큼 일한다’라는 말에는 공정을 중요시하는 태도가 바탕이 된다. 정해진 계약보다 많은 시간을 일하거나 다른 업무를 하는 것을 부당하다고 여긴다. 권위주의적 문화를 거부하고, 합리적인 일처리를 추구한다.
MZ세대는 기존의 관습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왜 퇴근하는데 남 눈치를 봐야 하지? 내 할 일 다하고 약속한 시간에 집에 가는 건데. 왜 회식에 억지로 참여해야 하지? 나는 회사 사람들이랑 술 마시기 싫은데. 왜 이어폰을 끼면 안 되지? 일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닌가.
우리는 회사를 위해 개인의 삶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회사일이 바빠서 집에 돌아와도 나와 놀아주지 않고 소파에 무기력하게 누워 잠만 주무시던 아버지. 나는 그처럼 되고 싶지 않다. 우리는 회사에 내 삶이 종속되고 싶지 않다.
필요 이상으로 개인에게 간섭했던 회사 문화를 거부한다. 회사를 평가할 때 ‘워라밸’을 보장해주는지가 굉장히 중요해졌다. 부당한 일을 당하면 문제를 제기한다. 삶의 가치를 ‘회사’가 아닌 ‘자신’으로 옮겼다. 회사보다 내가 더 중요하다.
여기까지 읽었지만 ‘그래도 나는 회사에서 이어폰 끼는 걸 용납할 수 없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혹시 아는가? 이제는 군대에서도 이어폰을 낀다. 밥 먹을 때나 개인정비시간에 이어폰을 끼고 있어도 나이 많은 간부 말고는 뭐라 하지 않는다. 이어폰 끼느라 선임이 말하는 걸 못 들었어도 “잘못 들었슴다? 뭐라고 하셨슴까?”하고 만다. 전역한 지 이제 막 3달 된 내 경험담이다. 옛날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 아닌가?
관습이나 문화는 변해가기 마련이다. 여기에 정답은 없다. 각자의 환경마다, 사정마다 합의해서 룰을 정하면 될 뿐이다. 군대도 변하는데, 회사라고 못 변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