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의 개인주의 선언, MBTI

MZ세대가 MBTI를 좋아하는 이유

by 천비단



커피 그라인더가 돌아가는 향이 가득한 어느 카페 안, 한껏 차려입은 남녀가 어색하게 마주보며 앉아 있다.


“혹시 어디 사세요?”


“취미가 어떻게 되세요?”


“여행 좋아하시나요?”


풋풋한 대화가 오가는 가운데 어느정도 긴장이 풀어진 남자는 미소를 지으며 묻는다.




“혹시 MBTI가 어떻게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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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 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는 마이어스와 브릭스 두 모녀가 개발한 성격검사다. 어머니 브릭스가 독자적으로 연구하던 성격 연구를, 딸 마이어스가 세계2차대전 중 여성들이 적합한 직무를 찾는 걸 돕는 지표로 개조했다.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한 성격검사지만, 심리학 전문가가 개발한 것도 아니고, 검사 자체도 과학적이지 않아 신뢰도가 있는 검사는 아니다.


그러나 MBTI가 한국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성격검사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코로나19 때 크게 유행한 이후로 사실상 전국민이 MBTI를 좋든 싫든 받아들였다. 최소한 혈액형 성격론보다는 과학적으로 보이지 않은가. 실제로 실생활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MBTI를 얼추 맞힐 수 있기도 하고. 일반인들이 일상생활을 하는데 정밀한 성격검사까지는 필요 없다.


MBTI는 맘 편히 써먹을 수 있는 스몰토크 주제다. 처음 만나는 소개팅 자리에서, 새내기 오리엔테이션 자리에서, 친해지려고 마음 먹은 사람과 나누는 대화에서 90%는 MBTI 얘기가 나온다. 하늘만 쳐다보면 뻔히 알 수 있는 날씨 얘기보다는 상대방의 성격이 무엇일지 추측하는 게 훨씬 재미가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 MBTI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도 많다. 온갖 곳에서 하도 MBTI 타령을 하다 보니 반발심이 드는 것이다. ‘나는 MBTI를 믿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사람한테 ‘너는 MBTI를 믿지 않는 MBTI인 거야’라고 말하는 초식도 많이 봤다. 정말 무적의 논리다.


이렇게 필요 이상으로 MBTI로 타인이나 자신, 상황을 해석하는 사람을 ‘MBTI 과몰입러’라고 부른다. 부정적인 뉘앙스가 강하다. 약속 시간에 늦어놓고는 뻔뻔하게 ‘나는 P여서 그런 거야’라고 변명하거나, 피곤해서 먼저 집에 가려고 하는 사람한테 ‘역시 I야, 집에 갈 생각만 한다니까’라고 꼽 주거나. 심지어는 ‘역시 씹프피는 상대하는 거 아니야’라면서 성격유형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MBTI 과몰입러는 MZ세대에 많다. 대체 MZ세대는 왜 그렇게나 MBTI에 집착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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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무한도전’과 ‘개그콘서트’를 안 보면 그 다음주 학교에서 대화가 안 통했다. 점심 시간 학교 스피커에서 무한도전 가요제 노래가 흘러나오고, 너나 할 것 없이 개콘 유행어를 따라하며 낄낄거렸다. 그 아이들이 자란 지금도 요즘 예능은 재미 없다며 옛날 예능을 돌려볼 지경이다.


하지만 지금은 ‘국민예능’이 없다. 유튜브, 틱톡, 넷플릭스, 인스타그램에 들어가면 나만을 위한 맞춤 컨텐츠가 즐비한다. 어떤 기준으로 정해지는지 모를 알고리즘이란 녀석이 내가 보고 듣는 것을 결정해준다. 알고리즘의 발달로 전 국민이 공유하는 대중문화가 사라졌다. MZ세대에게 문화적 구심점이 사라진 것이다.


MZ세대는 파편화되었다. 나와 타인이 너무나도 다른 존재로 느껴진다. 소통을 하려고 해도 서로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이 다르니 말이 통하지 않는다.






한국은 집단주의 성격이 강하다. 어떤 조직이든 튀는 행위를 안 좋게 바라본다. 집단 속 개인은 비슷비슷한 존재여야만 한다고 믿는다. 기성세대가 창시한 ‘성공법칙’이란 것도 이런 집단주의적 문화 속에서 탄생했다. 하지만 MZ세대는 파편화되었다. 나와 타인은 생긴 것도, 생각하는 것도, 관심있는 것도 다른 것 같은데, 어른들은 그걸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성격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사람의 성격은 스펙트럼과 같아서, 사람마다 성격이 다른 게 당연한데, 그동안 한국은 특정한 성격은 비정상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남에게 공감을 잘하지 못하면, 대화를 잘 이어나가지 못하면,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지 못하면 정상이 아니라는 식이다.


이런 상황에서 MBTI가 나타났다. MBTI는 이러한 정상 강박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당신이 남의 말에 공감을 잘 못하고 낯선 이를 두려워하는 게 당신이 별나서가 아니라 성격 때문이라는 나름 설명도 해주었다. MBTI는 ‘사람은 모두 다르다’라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집단주의 속에서 갈등하던 MZ들에게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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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모두 다르다. 나와 당신의 성격은 다르다. 이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MZ세대에 MBTI가 유행한 것은, MZ세대가 집단주의에서 탈피한 것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이제 ‘비정상적인 성격’은 없다. 사람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 혼자 우울함을 느끼는 것, 계획을 지키지 못해 자책하는 것. 그동안 내 개인적인 문제라고 여겨왔던 것이, 나와 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나와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러한 사실이 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내가 틀린 게 아니었다. 나는 그저 다른 것이었다.






여전히 MBTI 과몰입은 문제다. 자신의 잘못을 성격 탓이라면서 합리화하거나, 상대를 MBTI만으로 함부로 평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MBTI는 인간은 모두 다른 존재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MZ세대는 이제 자기 자신은 독립적이고 유일한 존재임을 안다. 자신과 상대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 그것은 나와 당신의 우주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개인주의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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