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닿고 싶었다.
초등학생 때 가장 무서웠던 장소를 꼽자면 당연히 피시방이다. 지금 와서 피시방이란 게임을 하고 라볶이와 닭강정을 사 먹는 편안한 장소지만, 어릴 때 피시방은 야생의 소굴이었다. 담배 연기로 가득 차고, 어떤 불량배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약육강식의 세계. 나는 그 미지의 세계에 첫발을 들인 풋내기 모험가였다.
우리 동네에 처음 피시방이 생긴 것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다. 센터에서 집에 가는 길에 5층짜리 건물에 생겼다. 1층은 치킨집, 3층은 당구장, 4층과 5층은 수학 학원인 건물이었는데, 2층에 피시방이 생겼다.
어른들이 말하길, 피시방은 담배 연기가 뻑뻑하고, 나쁜 형들이 삥을 뜯는 무시무시한 곳이라고 겁을 줬다. 피시방에 가지 않는 게 착한 일이라고, 피시방에 가면 나쁜 아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피시방에 가지 않았다. 어른들이 나 보고 모범생이라고 부르는 것에 도취되어 있었고, 굳이 피시방에 가서 모범생 이미지를 잃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했나. 성재형은 나를 기어코 피시방에 데려가려고 했다. 센터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성재형은 자꾸만 나를 유혹했다. 피시방은 컴퓨터실 컴퓨터보다 훨씬 좋다고, 훨씬 많은 게임을 할 수 있다고 속삭였다. 하, 내가 이런 허접한 유혹에 넘어갈쏘냐.
오렌지색 어두운 조명이 피시방을 밝히고 있었다. 커다란 모니터가 긴 줄을 따라 주르르 놓여 있었다. 고스톱을 하는 아저씨와, 메이플스토리를 하는 어린애들이 삐까뻔쩍한 모니터에 영혼을 빼앗기고 있었다. 카운터에는 긴 머리 누나가 앉아 있었다. 나는 그 앞에 눈만 내놓고 빼꼼 서서 천 원짜리를 건넸다. 숫자 여러 개가 적힌 카드 한 장을 가져갔다.
푹신한 의자에 몸을 기대고 전원 버튼을 눌렀다. 화면이 켜지고 코드 입력창에 숫자를 적었다. 마우스 포인터가 도넛으로 변하고 빙빙 돌더니 곧 바탕화면이 나타났다. 윈도우 7이었다. xp가 아니라 7!
나는 피시방에 푹 빠졌다. 집이나 학교 컴퓨터실에 있던 똥컴과는 차원이 달랐다. 본체에서 소음이 나지 않고, 게임이 렉 하나 걸리지 않았다. 그동안 내가 알던 컴퓨터는 컴퓨터가 아니었다. 진짜 컴퓨터가 피시방, 바로 그곳에 있었다. 어른들이 겁준 것처럼 무서운 곳도 아니었다. 담배 냄새가 좀 나긴 했지만 기침이 나올 정도는 아니었고, 삥을 뜯는 무서운 형들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센터가 끝나고 가끔씩 피시방에 갔다. 나 혼자 갈 용기는 없어서 꼭 친구를 데리고 갔다. 보통 메이플스토리나 로스트사가를 했다. 피시방에서 하면 좋은 아이템을 줬기 때문이다. 해가 저물 때쯤 떡꼬치 하나 입에 물고 집에 걸어갔다. 돈 쓰는 맛을 처음 알게 되었다.
어느 날, 피시방에서 게임을 하는 중이었다. 갑자기 내 옆에 불쑥 아빠가 나타났다. 나는 깜짝 놀라 아빠를 바라봤다. 컴퓨터를 하고 있는데 아들 목소리가 들려서 왔더니 진짜 있다며, 아빠도 당황한 눈치였다.
수치심, 잘못을 들켰다는 당혹스러움, 죄책감, 모범생 타이틀을 잃게 된다는 공포가 몰려왔다. 그냥 피시방에 온 것뿐인데, 어린 나는 인륜을 저버린 대죄를 저지른 것마냥 느꼈다. 나는 그대로 도망쳤다. 그 뒤로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피시방에 가지 않았다. 어른들의 ‘착하다’라는 말이 어린 나를 얼마나 옥죄고 괴롭혔는지 이제야 깨닫는다.
우리 동네에서는 트램펄린을 ‘방방’이라고 불렀다. 피시방에서 면사무소 방향으로 쭉 내려가면 인삼밭 차양막 같은 검은 천막이 나타났다. 천막에는 하얀 페인트로 ‘방방’이라고 크게 적혀 있었다. 그것 때문에 방방이라고 불렀던 모양이다.
누나와 누나 친구들과 처음 방방에 간 날, 나는 중력이라는 놈을 처음 느껴봤다. 방방 가운데서 최대한의 무게를 담아 바닥을 밟고 튕겨 올랐다. 최고점에 올랐다가 순식간에 떨어졌다. 떨어지는 힘을 더해 더 세게 바닥을 밟고, 더 높이 날아올랐다. 어느 정도 높이에 다다르면 상체를 살짝 앞으로 젖혀 덤블링을 돌았다. 무사히 두 발로 착지하면 상쾌함과 성취감이 나를 마비시켰다.
트램펄린에서 방방 뛰는 게 뭐가 그렇게 재밌던지. 주인아저씨는 시간이 다 되어도 우리를 그냥 냅뒀다. 땀을 잔뜩 흘리고 방방에서 내려온 우리는 슬러쉬를 사 먹었다. 방방 입구에 슬러쉬 기계는 쉬지도 않고 계속 돌아갔다. 아저씨는 콜라컵을 가져와 슬러쉬를 한가득 담고, 숟가락이 달린 빨대를 꽂아주었다. 입 한가득 슬러쉬를 빨아들이고 목구멍에 넘기면 머리가 찡하며 아파오고 달궈진 몸이 시원해졌다.
슬러쉬 맞은편에는 오락기가 있었다. 킹오브파이터즈였다. 아마 98이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어떻게 하는지 몰라하는 내 뒤로 아저씨가 다가와 조작법을 알려주었다. 버튼을 우다다 눌러서 주먹을 날리고 발차기를 했지만 맨날 3 스테이지 정도 가서 죽었다. 덕분에 빠르게 흥미를 잃었다. 킹오파보다는 방방이 더 재미있었다.
하늘에 닿고 싶었다. 방방을 타고 높이 뛰어올라 저 푸른 하늘에 닿고 싶었다. 하얀 구름을 손으로 잡아 뜯어먹어보고 싶었다. 그때 나는 구름과 솜사탕이 똑같다고 믿었고, 그 유치한 꿈을 연료 삼아 더 높이 뛰어올랐다.
몇 년이 지나 방방이 사라지고 한약방이 들어서자 더이상 하늘에 닿을 일 없이 추락하고 말았다. 나는 하늘에 닿는 방법을 아직도 찾지 못한 채 어른이 되었다. 어릴 때 방방 입구에 붙어 있던 푯말이 기억난다. 푯말은 빨간 글씨로 내게 말했다. ‘어른 출입 금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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