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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팰롱팰롱 May 25. 2021

아빠

코로나 3차 웨이브가 캐나다를 덮치면서 이곳, 노바스코샤 주도 상황이 급격히 나빠졌다. 그 바람에 주 이동 제한령도 더욱 강화됐을 뿐만 아니라 락다운 지침도 내려와 주요 사업장이 아닌 곳들은 다 문을 닫아야 했다. 호텔은 다행히 그중에서 살아남았지만 사람들의 발이 묶이는 바람에 파리 날리는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됐다. 그래서 호텔은 다시 쉼터 사람들을 받기로 했다. 주로 노숙자들이나 감옥에서 갓 출소한 사람들이었다. 우리 호텔은 서로 다른 두 호텔이 연결되어 있고 한 회사에서 운영되는 방식이라 한쪽에는 여자 출소자들이, 다른 쪽에서는 남자 출소자들이 머물게 되었다. 쉼터 관련자들은 나름 남녀가 뒤섞여 놀지 않게 관리 한다고는 했지만 사실상 제대로 된 관리는 이루어 지지 않았다.

얼마 전이었다. 이른 아침 출근하자 마자 어떤 여자가 술이 덜 깬 채 내가 일하던 호텔로 밍기적거리며 넘어와 남자 출소자들이 있는 층으로 올라갔다. 그러더니 이내 다시 내려와서 한 객실로 전화를 해달라고 했다. 그 객실의 남자가 전화를 받았고 어떤 여자가 너 찾는다고 하니까 알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그 여자는 다시 또 올라가더니 또다시 혼자 내려왔다. 혼자 내려온 여자는 다시 또 나한테 전화하라고 했다. 나는 전화해줄 수 있지만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했고 그 여자는 갑자기 흥분하더니 소리를 지르며 너가 해야 하는 일이니 어쩌니 하면서 시비가 붙었다. 나는 그 여자가 여기 머무는 고객도 아닌데 당신이 요구하는 것을 다 들어줄 의무는 없다고 했고 그 여자는 그게 내가 하는 일이라며 막무가내였다. 그러다가 말끝에 그 여자는 "That's not the way it works in this country"라며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했다. 나는 곧바로 온천하가 다 들리게 "그건 인종차별인 건 알지?"라며 소리 질렀다. 진짜 지금 이 땅에 누가 세금을 내는지 알고나 있냐고, 니가 지금 여기 머무는 게 누가 내는 세금인지나 아냐는 소리가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사태를 악화시키고 싶지 않아 참았다. 어쨌든 그 여자는 바로 말을 돌리며 계속해서 트집을 잡았고 한동안 옥신각신 하다가, 한 친한 손님이 개입해서야 겨우 사태는 진정되었다. 그 여자가 가고 나서 툭 하고 눈물이 터졌다. 급히 백오피스로 가서 혼자 눈물을 훔치는데 프런트에서 사부작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겨우 진정하고 다시 나가 보았다. 하우스키핑 부서의 친한 아줌마가 있었다. 손님이 요청한 사항을 적어둔 걸 받으로 온 거였다. 급히 끄적거리다가 갑자기 감정이 주체가 안되어서 눈물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갑자기 터진 내 눈물에 그녀는 당황해서 안절부절했고 나는 한동안 터져 나오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해서 안절부절했다. 겨우 가슴이 진정되고 나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충 설명했더니 그녀는 포옹해주며 힘내라고 토닥여주고 갔다.

비단 그 일 뿐만이 아니라 그동안 그런 부류의 사람들에게서  너무 많이 치여서 스트레스 지수가 엄청났던 것이 원인이었다는 생각이 든 건 그다음 일이었다. 인종차별은 처음이었지만 방아쇠에 불과했던 것이었다. 그런 식으로 자잘하게 모욕적인 말을 듣거나 욕지거리를 듣는 등의 정신적 학대를 당하는 일이 최근 잦았기 때문이었다. 어떤 경우에는 매니저가 바로 개입해서 그 사람한테 경고하거나 하는데 그날은 매니저도 늦게 출근해서 아무도 없던 상황에다가 인종차별까지 나오면서 터질 것이 터진 것이었다. 그날은 재수가 정말로 없었는지 또 다른 사람이 시비를 붙여왔고 나는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되어서 전화상으로 소리 지르며 싸웠다.

아무튼 매니저가 출근하고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라고 대충 브리핑했다.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했다는 말에 매니저는 무척 놀랐고 걔가 정확히 뭐라고 했냐고 받아 적어 가서는 그곳 직원과 이야기했고 그렇게 그 여자는 호텔에서 제거되었다. -굳이 '제거'되었다고 쓰는 이유는 매니저를 포함한 쉼터 직원 모두 그 여자가 'removed' 될 거라고 했기 때문이다. 좋게 해석해주기 싫은 내 맘과 더불어!- 아무튼 사태는 그렇게 일단락되었지만 아직도 이 일은 호텔에서 진행 중이고 내 마음의 상처도 아직 아물지 못했다.

집에 와서도 불쑥불쑥 그때 일이 생각나서 종종 기분이 무척 나빠지고 우울해졌다. 어쩌면 그 일과 관계없이 회사에서 스트레스와 긴장의 연속이어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나는 집에 오면 음악도 틀고 나름 스트레스를 풀어보려 하지만 불쑥불쑥 기분이 가라앉곤 했다. 기분이 나빠져서 심장이 갑자기 빨리 뛰다가 일순간에 멍 때리기 일쑤였다. 이런 식이 계속되면 내 정신력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자 가족이 보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집에 전화해서 나 이런 일을 당했다고, 너무 속상하다고 엉엉 울고 위로받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부모님 속이 얼마나 상하시겠는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아빠는 어떻게 참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빠는 경찰관이셨다. 아빠는 회사 일을 일절 집으로 가지고 들어오는 법이 없었고 나는 아빠한테 무관심했다. 그래서 학창 시절 내가 아는 경찰관은 다른 아이들이 아는 경찰관과 수준이 하등 다를 것이 없었다. 철이 없고 속이 깡통같이 텅텅 비었던 나에게 아빠의 직업은 귀찮은 짭새일 뿐이었다. 아빠가 어떤 일을 하는지 0.00001%의 관심도 두지 않을 정도로 지독하게 못됐고 이기적이었던 나는 언제나 문제집 산다, 학원 간다는 등 거짓말로 돈을 받아 술 마시고 담배 피며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기 바빴다. 그것도 아빠의 관할 구역 안에서. 아빠는 그때 엇나가는 나를 보며 어떻게 견뎠을까.

아빠가 회사에서 얼마나 힘들게, 얼마나 많은 것을 참아가며,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하며 나를 키웠는지 처음 알게 된 것은 나의 옛 연인 때문이었다. 경찰관이 직업인 사람을 만나다 보니 자연스레 어떤 일을 겪는지 들으면서였다. 그때 처음으로 '우리 아빠 그런 분이었구나..' 하고 깨달았다. 그전까지 나는 부끄럽게도 아빠는 그냥 경찰관인 줄만 알았다.

출소자는 아빠의 직업과 가까운 사람들이다. 물론 출소자가 되기 전의 신분의 사람들을 주로 만났겠지만. 어쨌든 그런 질의 사람을 만나서 상대하다 보니 오히려 아빠가 정말 어떤 마음으로 참았는지 그 마음이 너무 깊어 나는 더 알 수가 없어졌다. 회사 상황에 너무 화가 나서 한번은 직장 동료에게 '내 평생 안 만나도 될 사람들을 지금까지 너무 많이 봐오고 있다'고 분개를 터뜨린 적이 있었다. 내가 그런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어쨌든 그 누구도 예상 못한, 나의 잘못도, 아빠의 잘못도 아니지만 어쨌든 아빠는 당신의 딸이 평생 그런 류의 사람들을 만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런' 사람들을 상대하며 나를 키웠으니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아빠가 자존심을 구기고 상처를 입고 눈물을 삼키면서도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그런 것들은 다 속으로 집어 삼켜버리고 집으로 퇴근했을 일을 생각하니 마음이 미어지게 아팠다. 그런 아빠를 생각하니 문득 내가 힘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도로 들었다. 당신이 그렇게 힘들여 딸을 키웠다는 사실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이제 내가 보일 차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이런 저런 일도 생기는 법이고 그런 일들 중에는 지독하게 나쁜 일도 있을 수 있다. 지금은 그중 하나 일 뿐이고. 나는 이 일을 겪으며 아빠를 조금 더 생각하게 되었으니 내가 그때 이해하지 못한 0.0001%만큼의 철이 이제 든 거고, 그러니 나는 조금 더 강해지고 조금 더 현명하게 대처해 나가면 될 뿐이라고 스스로가, 아니 아빠가 말해주는 것 같았다. 아빠한테 털어놓지도 않았는데 아빠는 벌써 나에게 위로를 해주었다.

이내가 아무리 감추려 해도 아빠는 내가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내 얼굴표정을 보고 귀신같이 알아차렸다. 나는 아직도 철이 덜 들어서 아빠의 그늘을 잘 알아채지 못한다. 아마 지금 전화를 한다면 아빠도 아무렇지도 않게 전화를 받겠지만 또 전화를 끊고서 혼자 끙끙 앓겠지. 금이야 옥이야 키운 당신의 딸이 왜 또 얼굴에 그늘이 졌는지. 어쩌면 지금의 일은 그때 아빠에게 세상이 준 상처보다도 더 깊은 상처를 주었던 못되먹었던 나에게 하늘이 주는 따끔한 벌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아빠한테 전화를 걸고 쑥스럽지만 사랑한다고 말해야겠다. 자주 말해야겠다. 더 늦기 전에.   


추신: 감옥에 갔다온 모든 사람들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해없이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도 별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단지 평소에 겪어 본 적 없는 나쁜 일들을 너무 많이 겪고 있어서 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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