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원장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광장으로 나왔다. 광장에 여자 아이들 몇몇이 탁자와 의자를 정리하고 청소를 하고 있었다. 위원장을 본 아이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위원장에게 인사했다. 아이들은 위원장의 표정을 보고 다시 일을 해야 할지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그렇게 어색한 대치 상황에서 한 아이가 말을 걸었다.
“땅에 살던 사람들이 왔다고 하던데 그 사람들을 만나러 가시나요?”
“어?”
해저 기지에는 비밀이 없다. 선장이 종자를 가지고 온 일, 사람들을 9명 데리고 온 일도 기지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그리고 이 일로 선장의 징계위원회가 열리는 사실도. 기지 안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을 비롯해 기지의 산소농도, 식량현황, 에너지 소비량, 기지 주변 해수온과 갖가지 정보들은 광장에 오면 알 수 있다. 모든 일은 여과 없이 광장의 게시판을 통해 알 수 있다. 기지 안의 모든 것이 모든 이에게 공지된다. 곧 자신의 일도 알려진다는 생각에 위원장은 몸이 땅으로 꺼지는 현기증을 느끼며 아이들을 뒤로했다. 돌아섰으나 갈 곳이 없었다. 위원장실에서는 조만간 징계회의가 열릴테고 자기 방은 설탕을 맛본 잔상들이 남아 있고 광장엔 호기심 가득한 아이들이 모여있다. 결국 위원장은 격리실 쪽으로 향했다. 가는 내내 선장에 대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선장의 도발이 아니었다면 자신은 결코 설탕에 눈도 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 한들 시간은 돌이킬 수 없다.
격리실 복도 앞에는 방호복을 입은 직원 두 명이 있었다. 직원은 방금 식사를 마친 9명의 식판 담긴 수레를 끌고 나왔는지 소독을 하고 있었다. 소독 연기가 자욱했다. 위원장은 격리실 복도 한편에 서서 직원들이 연기를 뚫고 수레를 끌고 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연기가 잦아들었는데 직원들은 끝내 위원장을 보지 못하고 나갔다. 위원장은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곳에 무슨 일이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었다. 거짓말은 하기 싫고 갈 곳이 없다고 말하기는 더 싫었다. 완전히 연기가 사라지자 선장이 있는 격리실 유리창 너머에 수화기를 들고 서있는 선장이 보였다. 선장은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선장은 이내 위원장을 알아보고는 눈인사를 했다. 위원장은 다시 나가지도 들어가지도 못한 채 격리실 복도 앞에 그대로 서있었다. 통화가 끝났는지 선장은 위원장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수화기를 내렸다. 그러다가 이내 위원장에게 수화기를 들라는 신호를 하고는 다시 수화기를 들었다. 무시하고 가고 싶었지만 피할 수 없으니 위원장은 유리창으로 걸어 나가 수화기를 들었다.
“방금 위원회에서 제 징계회의가 진행될 거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네.”
“제 반론을 듣고 싶다고 하셔서 말씀을 드렸고요.”
“네.”
위원장은 선장의 시선을 피해 9명이 머무는 격리실로 시선을 옮긴 채 대답을 했다.
“위원회에 같이 제 징계를 논의하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혹시 직접 들으러 오신 건가요?”
“아니요.”
“그럼, 여긴... 무슨 일로?”
위원장은 차마 갈 곳이 없어서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확인하고 싶었다.
“그게 설탕인 줄 알고 있었나요?”
“네?”
“어제 나한테 말했던 거요. 열어보면 알 거라고, 궁금하면 먹어보라고 했던 거요.”
선장은 대답 없이 위원장을 바라봤다.
“그게 설탕이었나요? 아뇨, 전 몰랐습니다. 하지만 노인이 그걸 꼭꼭 싸매고 종자 기지를 떠나려던 나에게 넘기려 한 걸로 봐서는 귀한 거라고 생각했죠. 그걸 확인하러 여기 온 건 가요? 그게 중요한 문제인가요? 제 징계와 관련이 있나요?”
“그게… 제 징계와 관련이 있죠.”
“네?”
선장은 위원장을 잠시 바라보다 물었다.
“열어서 먹어봤던 거군요? 그래서 설탕이란 걸 알았고요?”
선장은 격리실에 있지만 물리적으로 격리되어 있을 뿐 정보가 격리된 것은 아니다. 광장에서 만난 아이들보다 선장이 더 먼저 위원장의 징계소식을 알 수도 있다. 이곳은 그런 곳이다. 물속에 만들어졌을 뿐 아니라 이곳은 물속처럼 투명하게 관리되고 있으니까. 그리고 지금까지 그렇게 관리하려 애쓴 건 위원장 자신이었다. 수치심도 외로움도 이곳에서는 부질없게 느껴졌다. 위원장은 숨기지 않았다.
“네, 먹어봤죠. 설탕이더라고요. 내가 그럴 줄 알고 있었죠? 의도한 거죠? 당신의 징계회의 보다 나에 대한 징계회의가 더 먼저 열릴 수도 있겠네요.”
선장은 말이 없었다.
“내가 당신보다 더 나을 것도 없다는 사실에 재밌겠네요.”
위원장은 그 말을 끝으로 수화기를 내려놨다. 선장은 뭐라 말을 하려고 했지만 위원장은 바로 옆 격리실 쪽으로 이미 걸어간 후였다. 위원장은 CCTV를 통해 9명을 바라봤다. 아이들은 침대에 앉아 있고 어른들은 탁자에 둘러앉아 있었다. 아마도 이곳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겠지. 위원장은 노인에게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격리실에 연결된 전화로 전화를 걸었다. 벨소리가 들리자 CCTV 화면 속 사람들이 순간 긴장하는 모습이 보였다. 남자 한 명이 일어나 벨소리가 나는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아침에 여러분께 인사드렸던 위원장입니다. 잠시 노인과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요."
남자는 노인에게 수화기를 보이며 손짓했다. 노인은 탁자에서 걸어와 수화기를 받아 들었다. 모두의 시선이 노인에게 향했다.
"네."
"저는 오전에 인사했던 위원장입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아, 네 , 말씀하세요."
"기지로 가지고 오신 물품 중에..."
노인의 몸이 순간 경직되었다 움츠러드는 게 보였다.
"하얀 가루가 있더라고요. 그게 혹시 뭔지 알려주시겠습니까? 비닐팩에 담겨 있던데요."
"아, 그거요? 설탕입니다."
노인은 반가운 사람이라도 만난 듯, 설탕이라는 인사를 하듯 말했다. 위원장은 눈을 감았다.
"그렇군요. 혹시 그걸.. 어떻게 구하신 건지 알 수 있을까요? 사실 설탕을 본 게 너무 오랜만이라서요."
노인은 잠시 머뭇거렸다. 유쾌했던 설탕 인사는 무거워졌다.
"남편의 유품이라고 해야 할까요... 남편이 당뇨를 앓고 있었습니다. 음... 당뇨로 약을 먹는 사람에게 저혈당이 가끔 오거든요. 저혈당이 오면 당분을 바로 섭취해야 하기에... 지금은 불가능하지만 그전에는 그래도 구할 수는 있었으니까요. 원래는 3팩이 있었는데... 설탕보다 당뇨약이 먼저 떨어지는 바람에......"
노인은 천천히 움츠린 몸을 다시 곧게 폈다.
"두 팩이 남았는데 선장이 한팩은 종자 기지에 두고 오는 게 좋겠다고 얘기하길래 한팩만 가지고 오게 되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위원장은 노인의 말에 더 궁금한 게 없었다. 설탕을 먹어야 살 수 있었던 사람이 있었는데 이제는 없다는 사실, 누군가에게는 약이었을 설탕이 자기에겐 독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을 더 확실하게 알게 되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