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부 27장 : 후회 2090.08.02

by 꿈꾸는나비

새벽에 설탕을 삼키고 눈물과 침으로 범벅된 얼굴로 한참을 앉아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벌써 아침이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절망했다. 찬물로 세수를 하고서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볼 수 있었다. 책상에 엉망이 된 설탕 가루들을 치우며 위원장은 원망했다. ‘이게 다 망할 선장 때문이야, 선장이 데려온 늙은 노인 때문이라고! 대체 그 노인은 이 귀한 설탕이 어디서 난 거야! 위원장은 끈끈해진 책상을 다시 닦아내며 또다시 원망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걸 가져와서는, 이제 이걸 어떻게 하냔 말이야!, 그대로 돌려주면 될 것을 뜯어서 먹어버렸으니, 그걸 못 참고!’ 계속되는 자책과 원망에 아침식사도 거르고 위원장은 책상에 설탕 팩을 올려둔 체 방을 나왔다. 오늘 아침 기지에서 눈을 떴을 사람들에게 이곳이 어디인지 알려야 했다. 그들이 받을 충격과 공포가 지금의 나보다 클까? 위원장은 격리실로 향했다. 가는 내내 머리가 아팠다. 선장의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 선장과 선원들이 있는 쪽은 그냥 지나쳤다. 9명이 지내고 있는 격리실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직원이 작은 탁자 위의 마이크와 CCTV를 가리켰다.

“방금 여자 아이를 끝으로 모두 일어났습니다.”

“분위기는 어떤가요?”

“새벽에 노인이 제일 먼저 일어났었는데 선장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 많이 흥분했었습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진정된 상태이고요, 다른 사람들이 눈을 뜰 때마다 노인이 상황을 설명해줬습니다. 그렇지만 아직 어떤 상황인지 잘 모르고 다들 겁에 질려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설명을 해야겠네요.”

위원장은 작은 탁자 앞에 마련된 의자에 앉자 마이크의 전원을 켰다. '삑'하는 고주파 소리가 났다.

“안녕하세요. 이곳에 오신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이곳 기지를 책임지고 있는 위원장입니다. 이곳에 오신 여러분을 수면상태로 맞이하게 된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점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이곳에 대한 정보를 아셨다면 아마 잠수함에서 큰 혼란이 야기될 것으로 판단되어 선장이 조치를 취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계신 곳은 해저 1235m에 위치한…”

공포… 어둠… 해저 기지에서 맞서야 할 또 하나가 있다면 인간의 본능이 아닐까? 혀끝에 까끌하게 닿던 설탕이 미뢰 하나하나를 되살리며 그 맛을 뇌에 전달하는 데 걸린 시간이 얼마나 됐을까? 그 찰나의 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위원장은 그들이 충분히 감정을 추스를 시간을 주고 난 뒤 설명을 이어갔다.

그렇게 9명이 해저 기지에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위원장은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억눌려 있던 본능을 드러낸 자가 대가를 치러야 할 시간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위원장은 책상 위에 놓인 설탕 팩을 집어 분석실을 찾았다. 위원장이 들어오자 분석실 입구 쪽 직원이 고개를 들고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위원장님. 여기는 어떻게 오셨습니까?”

“어제 분석실로 보내지 못한 물품이 있어서요. 어제 잠수함으로 들어온 외부인들 소지품 중 하나인데, 물품 #13호입니다. 제가 반납하지 않고 가져갔었는데…”

위원장의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입안의 미뢰들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입안 가득 침이 고이는 것 같았다.

“열어서… 먹어봤습니다.”

“네?”

분석실내 시공간이 일시 정지되었다. 직원들의 귀가 모두 위원장을 향했다. 숨소리마저 위원장을 향한 것 같다고 위원장은 느꼈다.

“네, 제가 규정을 어기고 소독된 물품을 가져갔다가 뜯어서 먹어봤습니다… 설탕이더라고요.”

정적이 흘렀다. 분석실 직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위원장이 내민 물품 #13호를 받아 들었다.

“설탕이요? 설탕이 아닐 수도 있는데… 분석해보고 결과 알려드리겠습니다.”

“네, 그렇게 해주세요. 그런데 설탕이 맞아요.”

직원은 받아 든 물품을 들고 계속 서있었다. 위원장이 그대로 서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일은… 제가 잘못한 일입니다. 허락받지 않은 물품에 손대고 훼손한 점은 사과드리겠습니다. 곧 위원회가 소집될 예정인데 그때 이 일도 안건으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제 행동에 대해, 제 잘못된 행동에 대해 책임지겠습니다.”

위원장은 그렇게 돌아섰다. 다시 시공간이 흘러갔다. 순간 뒤에서 쏟아져 나오는 단어들이 그녀를 밀치고 앞으로 뻗어갔다. 그중 몇이 위원장을 관통했다.

‘설탕이라고?’, ‘위원장이 어떻게 했다고?’ ‘설탕? 그게 뭐야?’, ‘규정 위반이야?’

위원장은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수치스러웠다. 그녀의 뇌는 뇌를 탓하지도, 설탕을 집어먹던 손과 입을 탓하지도 않았다. 단지 이 일을 어떻게 책임져야 할지 경우의 수를 나열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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