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부 26장 : 고래 2090.08.15

by 꿈꾸는나비

일과가 끝난 시간이라 모두들 광장에서 빛을 쐬고 있다. 하루 중 가장 평화로운 시간이라고 노인은 생각했다. 그러나 노인은 지금 이 순간이 가장 괴롭고 힘든 순간이었다. 임신부는 출산 중 의식을 잃었다. 아기는 골반에 걸린 상태로 상당 시간을 보내야 했다. 아기는 엄마 젖도 못 물어본 채 인큐베이터에 들어가 있고 엄마는 과다 출혈로 수술을 받고 혼절을 반복하고 있다. 언제쯤 엄마가 인어공주를 품에 안을 수 있을까… 인어공주를 노린 건 마녀가 아니었다. 노인은 바닷속을 바라볼 수 있는 창가에 앉아 어두운 심해를 바라봤다. 선장이 가벼운 목례를 하고 노인 옆에 다가와 앉았다. 선장이 뭐라고 말을 꺼내려는 그때, 갑자기 비상벨이 울리고 빨간 비상등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광장에 모였던 사람들은 모두들 일사불란하게 각자 방으로 서둘러 돌아갔다. 노인이 혼란 속에 꿈쩍도 못하자 선장은 노인을 잡아끌었다.

“방까지 가시려면 너무 멀어요. 저랑 가시죠.”

선장은 노인의 손목을 잡고 서둘러 걸었다. 선장은 광장 동쪽에 위치한 보안실로 노인과 들어갔다. 보안실 직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보안국장이 다가와 선장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레이더에 정체불명의 물체가 잡혔는데 이쪽으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크기는 15m 정도로 보이는데 속도는 빠르지 않지만 이대로라면 기지와 충돌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어느 정도 거리에 있죠?”

보안국장 옆에 모니터를 보고 있던 직원이 대답했다.

“방금 전에 북서쪽 200m 거리로 들어왔습니다. 10분 이내 100m 이내로 접근하고 15분 이내 시야로 확인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대로 접근해온다면 기지와 충돌할 가능성이 35%입니다.”

“금속 물체인가?”

“아니요. 금속 반응은 없습니다.”

선장은 보안실에 있는 선원 몇몇을 바라보며 외쳤다.

“유인 잠수정 2대를 위로 보내고 3대는 기지 밖에서 대기시키게. 위로 가는 잠수정 하나에 내가 타고 올라가겠네.”

그때 보안실로 위원장이 황급히 들어오며 보안국장과 선장을 보며 말했다.

“아니요. 선장은 여기 남아 보안국장과 상황을 분석하고 작전을 지시하세요. 다른 사람을 보내도록 합시다.”

선장은 뒤를 돌아 위원장을 날카롭게 바라봤다. 그 모습을 구석에서 노인이 바라봤다. 선장과 같이 일하는 선원 한 명이 재빨리 선장에게 다가왔다.

“선장님, 제가 가겠습니다.”

선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선원의 어깨를 잡았다.

“조심해서 접근하고 확인되면 바로 알려주게.”

선원은 고개를 끄덕이고 밖으로 달려 나갔다. 이어 몇 명이 더 선장의 지시를 받아 전속력으로 뛰어 나갔다. 선원들이 나가기 전 보안국장은 잠수정 5대를 준비시키라는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보안국의 긴장감에 노인은 계속 구석에서 상황을 지켜봤다. 불과 몇 분 사이에 잠수정들이 기지 밖으로 나가고 보안국 직원이 미확인물체가 100미터 이내로 접근했다고 알렸다. 때 마침 선장이 보낸 선원에게서 교신이 들어왔다.

“선장님, 잠수정 1, 2호 지금 물체를 향해 올라가고 있습니다.”

“알았네, 시야 확보되면 알려주게.”

침묵도 잠시,

“시야에 물체가 들어왔습니다. 20미터 이내로 접근 중입니다.”

“보이는 게 있나?”

“네, 보입니다... 상당히 큰데... 이건... 고래입니다!”

“고래?”

“고래의 사체가 기지 쪽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그때 보안국 직원이 외쳤다.

“7분 이내 기지와 충돌할 가능성이 60%입니다.”

선장과 보안국장이 모니터를 바라봤다. 기지와의 거리가 60m로 좁혀졌다. 보안국장이 선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작은 폭약 하나로 날려버리죠. 매뉴얼에도 나와 있으니까.”

“아니요, 안됩니다. 기지와 너무 가까워요. 혹시라도 고래 배에 가스가 차있으면 예상보다 폭발이 클 겁니다. 작살을 쏴서 끌고 가죠. 기지와 충돌만 피하도록 합시다.”

보안국장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선장은 선원들과 교신을 시작했다.

"고래가 어떤 상태로 낙하하고 있습니까?"

“머리가 기지를 향하고 사선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작살로 고래의 머리를 쏴서 끌고 갈 겁니다. 해류 방향을 고려해서 북서쪽에서 기지를 지나가도록 끌고 가도록 합시다. 작살은 고래에 접근한 잠수정 1,2호 에서 발사하고 3,4,5호는 고래에 접근하고 대기합니다. 필요하면 추가로 작살을 쏘는 것으로 하죠.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준비되면 말씀하세요."

"선장님, 준비되었습니다. 7m 앞에 고래 머리가 보입니다. 머리에 작살을 조준합니다.”

“발사하세요!”

‘탕’하는 소리와 함께 잠시 지지직거리는 교신음이 흔들렸다.

“작살이 머리에 꽂혔습니다.”

다른 선원의 교신이 들어왔다.

“다음 작살 준비합니다. 고래 머리로 조준합니다.”

다시 ‘탕’ 하는 소리와 함께 지지직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선장님, 고래를 끌고 갑니다.”

보안실에 정적과 모니터의 레이더 화면 불빛만이 존재하는 것 같아 보였다. 정적을 깨는 보안국 직원의 외침이 들렸다.

“기지와 충돌할 가능성이 85%입니다. 현재 기지와의 거리를 고려해 속도를 좀 더 높여야 합니다. 기지 남동부 4번 돔과 부딪힐 가능성이 큽니다. ”

선장은 선원들과의 교신을 이어갔다.

“속도를 좀 더 높여야겠네.”

“해류가 일정하지 않습니다. 출력을 20퍼센트 더 높입니다.”

“3번 잠수정은 고래에 접근하고 작살 준비하도록!.”

선장의 외침에 3번 잠수정이 고래에 접근하는 모습이 모니터로 보였다. 모니터에는 기지로 접근하는 고래와 잠수정 5대의 모습이 보였다. 고래와 기지와의 거리는 이제 30m 남짓이었다.

“기지와 2분 이내 충돌할 가능성이 80%입니다.”

선장은 3번 잠수정에 작살을 준비하라고 명령했다.

“고래의 등 쪽에 작살을 조준하세요. 시간이 없으니 조준되면 발사하세요. 발사 후 1,2 호와 같은 방향을 유지하며 최대 출력으로 끌고 갑니다.”

“네, 조준합니다.”

‘탕’하는 소리가 들렸다. 바로 교신이 들어오지 않자 선장은 초초한듯 팔짱을 꼈다.

“살짝 등뼈에서 벗어났지만 고정은 됐습니다. 최대 출력으로 끌고 갑니다.”

“모든 잠수정은 최대 출력 유지하고 4,5호 꼬리 쪽에서 대기하게.”

“기지와 1분 이내 충돌할 가능성이 20%입니다. 지금 20미터 위로 고래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노인은 홀린 듯 보안국의 육중한 문을 열고 나와 광장으로 들어갔다. 광장의 남동쪽으로 빠르게 걸어가 창 옆에 있는 불들을 차례로 켰다. 밖이 환했다. 노인은 창에 코를 대고 위를 올려다봤다. 잠수정 2대가 고래의 머리에 작살을 꽂은 채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잠수정에 달린 라이트가 눈이 부실 정도로 밝았다. 주변이 대낮같이 밝았다. 노인은 마치 고래가 살아 헤엄친다는 착각을 했다. 바다가 아닌 햇살이 눈부신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 머리와 등에 작살이 꽂힌 채 고래는 머리를 아래로 하고 해저 기지를 지나 심해로 가라앉고 있었다. 혹등고래였다. 고래가 남동쪽 돔 위를 지나는 순간 등에 박힌 작살 지점을 시작으로 지퍼가 열리듯 점점 배 쪽으로 살이 벌어졌다. 지퍼가 다 열리고 나자 그 안에 담긴 것들이 한순간에 쏟아져 나왔다. 형형색색의 플라스틱들이 기지 남동쪽 하늘을 수놓았다. 라이트에 비친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마치... 마치... 불꽃놀이의 한 장면 같다고 노인은 생각했다. 불꽃놀이. 불꽃놀이다. 노인은 넋을 잃고 불꽃놀이를 바라봤다.


“와, 너무 예쁘다.”

“예쁘니?”

“네, 너무 예뻐요, 저것 봐요 아빠! 꼭 꽃이 피는 거 같아요. 저 불꽃은 노란색인데 저건 빨간색이에요. 봐요 제 말이 맞죠? 원소마다 특유의 불꽃색이 있다니까요? 나트륨이 노란색이에요, 스트론튬이 빨간색이고요, 저기 봐요, 저 파란색이 바로 세슘이에요!”

“그래, 예쁘다... 나나야?”

“네, 아빠.”

“만약에, 혹시라도 나중에 말이야. 네가 뭔가 중요한 일을 하게 될지도 몰라. 어쩌면 정말… 아주 중요한 일이겠지.”

“네?”

“분명 너는 그 일에 최선을 다 할 거야. 그럼… 그런데 그래도 실패할지도 몰라. 혹시 그런 순간이 오더라도 너를 너무 탓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넌 정말 최선을 다했을 테니까.”

“네? 아빠… 갑자기 왜 그러세요?”

“아니, 그냥. 네가 실패하더라고 포기하지는 않았으면 해서. 모든 문제에는 해결책이 어떻게든 있는 법이거든. 가까이서 보면 안 보이는 문제도 멀리서 보면 보이기도 하고, 멀리서 보면 모르는 것도 가까이서 보면 알게 되는 법이거든. 때로는...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나중에 알게 되기도 하고. 그러니까 아빠가 하고 싶은 말은… 포기하지 말고 너 자신을 끝까지 믿어보라고.”

“네, 아빠 그럴게요. 그리고 저는 엄마 닮아서 절대 포기하지 않아요.”

“그래, 이 불꽃놀이를 보려고 여기서 4시간을 기다린 너를 보면 포기를 모르는 게 맞긴 하다.”

석원은 나나의 손을 꼭 잡았다.


노인은 아빠의 손을 잡고 있었다. 분명 아빠였다. 노인은 넋을 잃고 고래를 바라보다 손을 내려다봤다. 아빠도 없고 텅 빈 손이었다. 노인은 두 손을 모아 손바닥을 들여다봤다. ‘모든 문제에는 해결책이 있는 법이라고요? 포기하지 말라고요? 네… 저는 그 어떤 것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아직 쓸만한 카드가 하나 남아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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