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를 함께한 시간을 글로 남깁니다.
이번엔 "엄마, 속옷이 작아요. 좀 더 큰 거 사 주세요." 했다. 그렇게 아이 속옷을 사려는데 아동 속옷은 보통 55나 60에서 시작해 85에서 끝난다. 지금 85 사이즈가 작으니 90 사이즈를 사야 되는데 아동용은 사이즈가 없고 성인남성속옷은 대부분 95부터 시작한다. 이런... 내가 원하는 90 사이즈는 없었다. 온라인 몰을 뒤적이다 안 되겠다 싶어 이마트로 갔다. 아동과 성인 속옷들을 보다가 구석에 자리한 주니어 속옷이 눈에 띄었다. 그곳에 사이즈 90이 있었다. 아동도 성인도 아닌 주니어라는 이름의 사이즈가 있었구나. 그렇게 속옷을 여러개 사들고 집에 왔다.
날씨가 선선해지면서 반팔 반바지를 넣고 긴 옷을 꺼내보니 봄과 다르게 껑충 커버린 아이의 바지와 티셔츠들이 다 작았다. 그런데 이 사이즈가 또 말썽이었다. 아동용 바지는 160 사이즈가 끝인데 허리는 맞지만 기장은 짧고, 성인 옷은 작은 사이즈라도 기장도 애매하고 허리는 너무 컸다. 아무리 둘러봐도 아이에게 딱 맞는 사이즈를 찾기 힘들었다. 또 아동용 티셔츠는 총장도 짧고 팔도 짧은데 성인 티셔츠는 아직 체격이 작고 마른 아이에게는 얻어 입은 옷 마냥 벙벙했다. 대체 다들 아이들 옷을 어디서 사서 입히는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순간이었다.
아동은 아닌데 그렇다고 성인도 아닌, 이 사춘기 아이들을 대변하는 듯한 그 애매한 사이즈. 그 와중에 아이는 취향을 이야기한다.
"색은 어두운 색으로 사주고요, 잘 늘어나는 편한 걸로 사주세요. 아 그리고 발목에 시보리 있는 건 싫어요."
사이즈 선택하기도 쉽지 않은데 취향까지 고려해 달라는 요구사항을 듣고, 나는 온라인 몰을 뒤적거려 장바구니에 옷을 담는다. 맘에 드는 거 남기고 삭제하라 말하고 사춘기 아들의 선택을 기다리지만 싹 비워진 장바구니를 보며 쓴웃음을 지을 뿐이다. 애매한 사이즈도 모자라 애매한 너의 취향도 맞춰야 하는 나는 오늘도 온라인 쇼핑몰을 기웃거리다 기어코 이번 주말에는 너를 데리고 주니어든 캐주얼 매장이든 가서 결판을 짓겠다고 다짐한다. 엄마의 결심은 애매하지 않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