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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머리 짐승 Jun 26. 2020

싸움에 대처하는 자세

아이들은 싸웁니다. 분에 못 이기면 몸을 씁니다. 주먹이 나가고 눈물을 흘리며 목청을 한껏 돋우죠. 싸운 아이들을 불러 세우고 어른들은 말합니다 “친구랑 사이좋게 지내야지”, “동생인데 잘 데리고 놀아야지”, “언니 말 잘 들어야지” 저는 그 세 가지 말 가운데 제 아이들에게 단 한 가지도 해 본 일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겁니다. 


아이들이 싸우는 건 모르는 감정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감정은 배우는 것이 아니지요. 혹시 어려서 모르는 것이 있다면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언어와 불쑥 불거진 마음을 스스로 매만지는 기술일 겁니다.


싸움 이후 벌어질 아이들의 몽니를 모면하기 위해, 상대 아이 부모와의 불편하고 서먹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어울림’, ‘보살핌’, ‘따름’ 따위가 즉효의 처방약인 듯 아이들 마음에 욱여넣지 않아요. 싸운 아이들이 묻고 있는 것은 인간관계의 기술이 아니라 감정을 표현하고 다스리는 방법일지도 모르니까요. 


아이들은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모든 순간에는 감정이 생길 거예요. 아이들은 스스로의 마음들을 읽어내고 쏟아내고 어루만지는 세밀한 방법들을 익혀야 해요. 옆에서 상대 아이가 울어 젖히든, 그 부모가 사과하라고 종용하든 저는 듣지 않아요. 달래고 사과하는 시간에 저는 무릎을 꿇고 제 아이들 앞에 앉아 마음을 물어요. 무엇이 화를 일으켰는지, 억울해서인지, 약이 올라서인지, 심술인지, 부러움인지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물어요. 물론 아이들의 언어는 선후, 인과 관계가 불분명할 때가 종종 있어요. 그럴 때는 시간을 줍니다. 사과하든 다시 시시비비를 가리든 그건 그다음 문제예요.


아이들이 살아가면서 어떤 사람들을 만날지 저는 몰라요. 그 사이에서 벌어질 수백만 가지 에피소드들은 감조차 잡지 못하겠죠. 화 잔뜩 난 아이들에게 자꾸 물어보는 이유는 사실 한 가지 더 있어요. 제게는 소망이 하나 있거든요. 아이들이 처리해내기 어려운 감정을 만났을 때 아내나 저에게 열에 한두 번은 말할 수 었었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이 감정 변화의 폭풍을 지날 때 ‘엄마, 아빠는 나를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참으라고만 할 거야’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저도 연습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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