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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머리 짐승 Jul 01. 2020

믿음, 소망, 사랑 1

아들 편

어렸을 적 아버지 형제들이 모이면 아침마다 기독교식 짧은 예배를 드렸습니다. 뜻 모를 단어들을 힘주어 읊조리는 기도문과 성경의 언어는 어린 제게 고역이었어요. 대관절 무슨 일이기에 그토록 비장하게 비는지, 또 읽을 때마다 발음을 씹는 조그마한 글씨들은 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거든요. 다만 마지막 기도 전에 함께 부르는 찬송은 참 기분 좋았어요. 그 가운데 이렇게 끝나는 노래가 있었어요.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아이들을 막상 독일 학교로 옮겨 놓으니 걱정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선생님이 하는 말은 얼마나 알아듣는지, 친구들 사이에서 주눅들지는 않는지, 아니 쭈뼛거리더라도 어울리기나 하는지, 집으로 함께 돌아오는 5분 동안 돌리고 돌려 물어봅니다.


#1

          “오늘은 누구랑 놀았어? 새로 사귄 친구 있어?”

          “혼자 놀았어”

          “왜? (혹시 아무도 안 놀아준 거니?)”

          “다른 애들 노는 게 재미없어 보이더라고. 그래서 혼자 놀았어”


#2

          “독일 학교 재밌어?”

          “응, 재밌어”

          “(아휴, 다행이다) 그래? 국제 학교보다 재밌어?”

          “응”

          “뭐가 그렇게 재밌디?”

          “여기는 공부할 때 공부만 하고, 놀 때는 놀기만 해. 

           국제 학교는 노는 거랑 공부하는 거랑 막 섞이거든. 나는 한 번에 하나만 하는 게 좋아”

          “아, 잘 됐네”

          “근데 아빠, 국제 학교가 그립긴 해. 친구들도 거기 있고 선생님도 거기 있잖아”


#3

          “축구클럽 너희 학교 친구들 많은 곳으로 옮길래?”

          “……”

          “꼭 옮길 필요는 없는데……”

          “아니, 잠깐 생각할 시간 좀 줘 봐”

          “오케이”

          “나중엔 옮겨야겠지만 지금은 그냥 다닐래”

          “그래?”

          “축구클럽 친구들은 오래됐잖아. 학교 옮겼다고 쏙 빠져나가는 건 못된 일 아니야?”


저는 제 아이에게 믿음이 있습니다. 아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이유를 모으면 세 가지쯤 되지요. 잘 보이려거나, 꾸지람 듣기 무섭거나, 걱정 끼치고 싶지 않을 때. 아들은 굳이 제게 잘 보일 필요를 느끼지 않고,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면 혼나기를 거부하며, 먼저 말을 꺼낼 때는 대개 친구와 싸웠거나 낯선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뿐입니다. 칭찬받아 마땅한 일들은 대개 다른 부모들로부터 듣습니다. 


저는 제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믿기 때문에 사랑합니다. 믿으므로 사랑하고 사랑하므로 아이에게 소망합니다. 제게 잘 보이려 들지 말기를, 언제까지나 고개 빳빳하게 들고 ‘왜‘라고 묻기를, 제 녀석 뒤에는 늘 아빠가 버티고 섰다는 걸 잊지 말기를 소망합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은 조건을 달지 말아야 한다지만 저는 아닌가 봅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그중에 제일은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들을 향한 마음은 늘 믿음으로부터 출발합니다.


당신은 당신 아이의 무엇을 믿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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