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흰머리 짐승 Jul 03. 2020

믿음, 소망, 사랑 2

딸 편

대학에 입학하고 첫 방학이었어요. 낮잠 자고 일어나 엄마와 수박을 먹다 꺼진 텔레비전에 비친 제 얼굴을 봤어요. 선풍기에 날리는 제 머리카락이 그날따라 왜 그리도 밋밋해 보였을까요?

          “엄마, 나 염색할까?”

          “잠깐만 있어 봐”

수박 먹다 만 엄마는 어디선가 검은 비닐봉지에 싸인 염색약을 구해왔고 이내 두 손엔 쿠킹호일과 가는 빗까지 쥐고 저를 불렀어요

          “야, 여기 와서 앉아 봐”

엄마는 빗으로 앞과 옆, 뒷머리에서 몇 가닥씩 골라내 염색약을 바르고 쿠킹호일로 감쌌죠. 열 번째 뭉치까지 마무리한 엄마는,

          “잘 나오려나?”

          “엄마, 근데 이거 무슨 색이래?

          “몰라, 그거 벗겨내 봐야 알아”

구릿빛이었어요. 자고로 ‘브릿지’란 앞머리를 쓸어 넘길 때 노란빛부터 옅은 밤색을 거쳐 검은 머리까지 그라데이션을 자아내는, 기타 치며 노래하기가 특기에다 공부까지 잘하는, ‘그 당시 교회 오빠’의 스타일이었어야 했어요. 한데 제 머리카락은 군데군데 그냥 빨간, 쓸어 넘길 때 그라데이션은커녕 핏발이 선 듯한, 쓰윽 흘겨봐도 불장난하다 말려 올라간 것 같은, 하여튼 그런 색이었어요. 벗겨내 봐야 안다던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나간 뒤 몇 시간을 돌아오지 않았어요.


저녁에 아빠가 퇴근했습니다. 그 시기의 부자(父子)는 서로를 부담스러워 하기 마련이죠. 퇴근 뒤 아빠의 동선 상 시야에 제가 들어왔을 리 없습니다. 옷 갈아입기 위해 안방으로 들어가던 아빠가 돌아 나와 제 앞에 섰을 때, 올 게, 아니 올 분이 왔구나 싶었죠.

          “내일까지 머리 원상 복구 해 놔”

주목색인 빨강은 그렇게 임무를 다하고 스러져갔습니다.


저녁 먹으면서 아빠는 ‘점잖게’란 말을 숟가락질만큼 반복했습니다. 반격 한 마디 하지 못했습니다. 그라데이션만 나왔더라면 아까워서라도 깨갱거렸을지 몰라요. 다음 날 다시 어디선가 검은 봉지에 뭔가를 구해 온 엄마는 같은 식탁 의자에 스물한 살 아들을 앉혀야 했습니다. 어렸을 때는 어리니까, 어른이 되어서는 점잖아야 하니까 제 머리는 늘 검어야 했어요. 요즘이야 이게 무슨 소린가 싶겠지만 지난 세기말까지만 해도 다른 색을 입힌 검은 머리카락, 짧게 깎은 머리카락은 ‘함의’를 담고 있었어요. 1997년 DJ DOC가 발표한 ‘DOC와 춤을’엔 이런 가사가 나와요.

‘주위 사람 내 머리를 보면 한 마디씩 하죠. “너 사회에 불만 있냐?”’


          “딸, 다리가 왜 그래?”

온갖 기하학무늬가 일곱 살 딸의 다리를 덮고 있습니다. 검은 마커로 스스로 그린 모양입니다.

          “문신이야, 어때?”

속으로 ‘네가 아직 승천하는 용을 그릴 줄 몰라 얼마나 다행이냐’ 싶다가도 어쩌면 그런 생각 자체가 이미 문신이 가진 근거 없는 함의를 받아들인다는 의미여서 멈칫하게 돼요. 또 어느 날은,

          “우리 딸 멋있네”

          “멋있다니, 예쁜 거야. 아빠, 여자한테는 멋있다가 아니라 예쁘다고 해야지”

그 뒤부터 딸에게 예쁘다고 말할 때는 다르게 칭찬할 말은 없을까 한 번 더 머리를 굴리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연유로 딸아이 티셔츠 한 장을 살 때도 핑크로 덮인 매대 사이를 헤매다 핑크 아닌 색을 골라 내고야 맙니다.


남성과 여성은 열거해봐야 지루할 만큼의 생물학  차이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태생적 차이에 근거 없이 덧입혀진 겹겹의 차이가  딸의 세상을 좁혀 놓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혹자는 물을 겁니다. 그럼 남자아이처럼 키우고 싶다는 건가요? 아뇨,  딸이 여기저기서 여성에게 입혀 놓은 이미지들을 치워버리고 그저  ‘사람으로서 스스로를 조형하기를 바랍니다. 저는 사랑하는  딸이, 그저 예뻐 보여 다리에 마커 문신을 그려 넣은  아이가, 여기저기서 근거 없는 함의를 담은 시선을 받을  ‘개나  버려하기를 바랍니다. 그저 그렇게  세상 멋들어지게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다 상처 입으면 제게 기댈  있게 사랑으로 보살필 겁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믿음, 소망, 사랑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