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내 안에 악마가 있어요

by 박쥐마담

내 집에 사는 중2님은 평소 말씀이 많지 않다. 어릴 때도 조잘대는 편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내성적인 묵언수행파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친구들과 어울리면 발랄하게, 집에 돌아오면 차분하게, 필요한 것이 있으면 비굴하게 주파수 전환을 하며 사신다. 기독교 모태신앙인으로 매주 일요일 교회에 가시나, 주중에는 불교와 도교적 세계관에 기대기도 하신다. 인생무상이니 오늘 하루 엄마의 전매특허 간장양념 닭 날개 튀김 먹으면 만족, 무위자연이니 친구들과 자전거로 동네 한바퀴 돌고 귀가하여 고양이 데리고 놀면 지락(至樂). 그 태도가 단아하고 가끔은 고고하다. 요즘 말로 ‘워라벨’을 맞추며 사니 말이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작년 3월, 교복 입는 중학생이 된 그와 단둘이 밥을 먹을 기회가 있었다. 그가 좋아하는 순대국밥을 먹는데 앞뒤 맥락 없이 “엄마, 내 안에 악마가 있어요.” 하는 게 아닌가. 이게 무슨 소리지? 나는 황급히, 아들 엄마라면 옆구리 살 집히는 자리에 장착하고 있는 ‘무심 모드’ 버튼을 눌렀다(이 버튼을 적절한 순간에 누르기 위해서는 평소 끊임없이 수행해야 한다. 살다 보면 “엄마, 내 여친 임신했어요.” 하는 말이 내 아들 입에서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 다행스럽게도 나는 당시 학교에서 중2를 가르치고 있던 터라, 연쇄살인마의 커밍아웃 같은 그 말씀에 응대할 답변을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었다. “그 악마 내 안에도 있다.”


나는 남의 자식인 중2님들과 교실에서 이 두 줄짜리 대화를 복기하고 부연한 뒤 질문했다. “사람 안에는 악마가 있습니다. 물론 천사도 있지요. 내 마음 속에 있는 천사와 악마 중에서 누구를 불러낼 지는, 누가 정하나요?” 총명한 중2님들은 이구동성으로 답해 주었다. “내가 정합니다.” 혈기와 호르몬이 분수처럼 솟구치는 중2들이 매 순간 천사를 불러내는 성인이 되기를 기대하지 말자. 짜증의 순간이 닥칠 때 마음의 창살을 붙잡고 있던 악마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튀어나온다. 악마가 탈출해버린 마음의 밑바닥에는 공부에 지친 천사가 잠시 낮잠을 자고 있음을 잊지 않으면 된다.


내 집 중2님이 초등생이었을 때, 같은 반 친구를 놀렸던 적이 있었다. 혼자서도 아니고 친구들과 떼로 사람을 놀리다니, 적당한 선에서 넘어갈 수가 없었다. 나는 모든 조치를 취했다. 아들은 엄마 아빠에게 달달 볶였다. 엄마와 아빠 손에 이끌려 피해자의 집을 방문했고 사과를 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나는 내 아들이 쓴 자술서를 학교에 전달해 절차대로 훈육을 받도록 교장 선생님께 부탁했다. 그동안 선생의 자리에서 “우리 애가 그럴 리가 없어요”라고 말하는 학부모들을 비아냥거렸으니, 차마 내 입으로 같은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나는 그런 부모들과는 다르니 내 자식을 잡아 공공선을 이루리라 다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들의 마음에서 처음 나온 악마가 다시는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엄마의 결벽증일 뿐이었다.


엊그제 저녁을 먹다가 중2님께 5년 전 그 일을 여쭈어보았다. “아들아, 넌 그때 왜 그랬어?” / “응? 재밌으니까.” / “뭐라고(‘무심 모드’ 버튼 누르는 것을 잊어버림)?” / “놀리는 거 엄청 재밌잖아.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 “(그렇긴 하다)......” 아들아, 내가 틀렸구나. 천사는 계속 자게 놔두고, 악마에게는 수면제를 먹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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