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중2님이 중학생이 되어 처음 치른 작년 1학기 기말고사 성적표는 충격 그 자체였다. 특히 그분의 수학 성적은 십 대 시절에 공부 좀 했던 부모를 순식간에 심 봉사 만드는 점수였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50점이라니. 아들 학교가 강남 8학군도 아닌데 문제가 어려웠나 싶어 수학 시험지를 내놓으라 했다. 받아 살펴보니 더 참담했다. 한두 문제를 제외하고는 학교 수업을 따라가면 무난히 풀 수 있는 문제가 대부분이었다. 내 아들은 공부에 ‘1도’ 관심 없는 무념무상의 상태였다.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을 때 그를 영재고 특목고 자사고에 보내고자 뜻을 정하여 학원 버스를 태우지 않았던 까닭은 돈 때문이었다. 대학 입학 전까지 계산해보니 그렇게 8년간 학원을 보냈다가는 돈이 남아나지 않겠다는 계산이 나왔다. 아들 말고도 자식이 둘이나 더 있으니 ‘집안 형편상’ 학원에 최대한 천천히 들어가서 얼른 나와야 했다. 그 계산식에는 나의 교육적 소신도 한몫하고 있었으나 그 소신이 경제적 여건을 뛰어넘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냥, 분수에 맞게 살면서 내 노후를 자식에게 짐 지우지 않고 싶을 뿐이었다.
마침 아들의 담임선생님은 수학 선생님이셨다. 학교 방과 후 수업을 권해 주시길래 그 자리에서 수강 신청을 했다.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며 아들에게 말을 건넸다. “학교에서 배운 것이나 잘 복습하도록 하여라(이 말은 ‘니가 지금 공부할 생각이 없는데 학원에 가서 선행 학습 해 보았자 도로 아미타불이다. 그렇다고 어미가 되어 아들의 수학 50점을 그냥 놓아둘 수는 없는 일 아니겠느냐? 내 너를 어여삐 여겨 가성비 우선 원칙에 따라 방과 후 수학을 허하노라. 일단, 다음번 시험까지 지켜보도록 하겠다.’라는 뜻이나 아들 귀에 세 마디 이상 외쳐 보았자 튕겨 나오므로 굳이 소리 내어 발음할 필요는 없다).”
정체불명의 자유학기제 덕분에 아들은 그해 다시 성적표를 받아 올 일이 없었다. 방과 후 수학 시간에 친구와 떠들고 교재를 안 가져가 선생님께 주의를 당부하는 문자만 몇 번 받았을 뿐이었다. 그렇게 그가 중2님이 된 어느 날 저녁, 엄마표 특제 닭날개 튀김을 감탄사 연발하며 맛나게 드시던 아들은 자신의 진로에 대한 고민을 피력했다. “내가 딱히 잘하는 것도 없고 그나마 요리에 관심 있으니......” 그래. 아들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혼이 담긴 요리를 개발해 인공지능 로봇을 물리치고 살아남자꾸나 하려는 찰나, 아들은 무심한 표정으로 또박또박 말했다. “엄마, 나 걍 주부 할래요.”
“아들아, 너 그 인물로 주부 했다가는 괜히 동네 아주머님들 마음 싱숭생숭하게 만들 수 있느니라. 전업으로 주부 6년 한 엄마는 우울증으로 심히 고생했으니, 참고해라.” 365일 24시간 법적으로 보장된 휴무 없이 끝없는 가사와 육아를 해결하며 가족의 생사화복을 주관하겠다니, 중2님의 포부는 원대하였다. 역시, 크게 될 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