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집에 오고 싶지

by 박쥐마담

내 집 중2님을 비롯한 자식님들의 도움으로 일과 육아를 병행한 지 16개월이 되어 간다. 다시 출근할 곳이 생겨서 설레었지만 동시에 6년 공백을 뛰어넘어야 한다 생각하니 막막하고 두려웠다. 종일 집에 있는 엄마로서 자식님들을 돌보고 감시했는데 더는 그럴 수가 없으니 미안하고 불안했다.


이런 복잡한 심경에 현실적인 문제가 더해졌다. 막내를 언덕 꼭대기에 있는 어린이집에 데려다주어야 했으므로 등원 도우미가 필요했다. 같은 교회를 다니는 권사님께 도움을 요청하고 한숨 돌렸다. 그런데 사람 좋아하는 막내가 그 권사님을 그리도 싫어할 줄이야. 극렬하게 울고 저항하는 바람에 석 달을 넘기지 못했다. 나는 사람으로 빼곡하게 들어찬 마을버스에 아이를 끼워넣고 차장 언니가 되어 문에 매달렸다. 출근부터 과도한 에너지를 썼으니 퇴근길엔 좀비가 되었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저녁밥을 지었다. 그렇게 밥을 짓다가 된장찌개가 끓어 넘치듯 내 인내심도 넘쳐버려, 애먼 자식님들이 화를 뒤집어 쓰곤 했다. 결국, 장롱 면허를 부활시켜 경사진 소방도로를 올랐다. 운전 미숙으로 주차된 5톤 트럭에 차를 갖다 박아 앞 범퍼를 싹 갈기는 했지만 아직 아무도 안 죽고 안 다쳤다.


뭐든 잘 참는 둘째는 하교 이후 방과 후 수업에 가기까지 비는 시간을 집에서 혼자 보냈는데, 그게 영 별로였나보다. 내 처지에서는 빈집에 혼자 있으면 천국인데, 초등 여학생은 외롭고 심심하단다. 강아지가 있으면 좋겠단다. 식구가 느는 건 중요하고 복잡한 문제이니 가족회의를 소집했다. 남편은 단호했다. “개는 가축이다.” 이 발언으로 남편은 중2님께 신랄한 지적을 받았다. 중2님께서는 강아지보다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 하셨다. 강아지 같은 녀석은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하고 고양이 같은 녀석은 고양이를 키우자 했다. 막내는 중간에 끼어 왔다갔다했다. 중2님께서 결정적인 한마디를 하셨다. “고양이가 있다면, 집에 오고 싶지.”


그렇게 삼 개월 전, 별에서 온 그대, “별이”가 내 집에 왔다. 길고양이 별이는 중성화 수술을 막 마친 상태였다. 봄인데 장마처럼 비가 퍼붓던 날, 나는 지인에게 별이를 입양받아 집으로 데려왔다. 별이 덕분에 내 자식님들은 기본적인 집안일에 고양이 배설물을 치우는 일까지 해야 했다. 고양이 응가를 며칠 치우던 중2님이 내게 말했다. 엄마, 우리 셋 똥 치우느라 고생 많이 했겠네. 아들의 그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엄마 힘든 거 알아줘서 고맙네. 너희들 키우느라 힘들었고 지금도 힘들지. 가끔 집에 오기 싫은 날도 있지. 그래도 너희들이 있어서, 엄마는 집에 오고 싶지.


후일담. 별이 덕분에 나는 15년 동안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남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야옹아, (다리미) 앗 뜨거워. 저리 가.” 내가 고양이로 다시 태어나야 들을 수 있는, 자상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