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하게 말하는 관계
나는 아들이 교회 주일 예배를 ‘짼’ 이후, 내 집 중2님에게 ‘엄마에게 거짓말하지 말라’는 훈시를 내렸다. 그 훈시에는 아들이 정직한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이 깃들어 있다. 선한 의도에서 나온 바른말이지만, 듣는 이에게는 숨이 턱 막히는 갑갑함을 준다. 인간의 속성상 거짓말을 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거짓말을 했다가 몇 번은 들통나 등짝을 맞은 기억이 아직 또렷이 남아있는 주제에 그에게 무리한 요구를 할 수는 없었다. 나는 그에게 내린 훈시에 부칙을 달았다. “거짓말하는 대신에 솔직하게 말하면, ‘최대한’ 요청을 들어주도록 하겠다.”
중2님은 초등학교 6학년 졸업 직전부터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만 2년이 다 되어 오는 지금까지 사용 시간 문제로 나와 무수한 옥신각신을 벌였다. 정해진 시간을 넘겨 몰래 사용하다가 걸리고, 엄마를 야수로 만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중2님의 말을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 내 가사와 육아의 수호성인이신 그분도 게임과 유튜브,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앞에서는 와르르 무너지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중2님일 수밖에 없었다. 아아, 슬프도다.
중2님과의 신뢰 관계 회복을 위해, 그의 솔직을 존중하기로 한 며칠 후, 맡겨진 집안일을 싹 다 끝낸 그가 내 옆을 얼쩡거렸다. “엄마, 나 이번 주 토요일에 피시방 안 가고 교회 음악회 연습할 건데, 그러면 주말에 피시방을 못 가잖아.” 그는 내 눈치를 한번 보더니, 나직하지만 또박또박하게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내일 학원 수업 없으니까 피시방 가려고.” 아아, 내가 내 무덤을 팠구나. “솔직하게 말한 건 좋은데, 넌 주중에 꼭 피시방을 가야 하겠냐?”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나는 내가 그에게 내렸던 부칙의 ‘최대한 들어주도록’을 곱씹고 있었다. “가서 게임을 몇 시간이나 할 건데?” “한 시간 반.” 학교에서 축구한다고 거짓말하고 피시방 갈 수도 있었을 텐데, 나름 딴에는 솔직하게 말했으니 장하지. 그렇게 나는 나를 달랬다.
그 주 주말, 중2님은 부리나케 놀러 나갔다. 음악회 연습하신다던 그분은 코인 노래방과 피시방을 들러 돌아오신다고 했다. 잘 놀고 돌아오신 그분을 호출했다. “아들, 주말에 음악회 연습한다더니 결국 피시방 가셨네? 연습 때문에 피시방 못 갈 거라서 미리 앞당겨 다녀오신다고 하지 않았나? 말이 앞뒤가 안 맞네. 인정? 주중에는 ‘최대한’ 피시방 안 갔으면 좋겠네.” 나는 중2님의 동의를 받아냈고, 훈령과 부칙은 계속 유효하게 되었다. ‘고등학생이 되면 집에 있는 태블릿 PC는 팔아버리고, 전화기는 폴더폰으로 바꿔줘야지.’ 내 안에서 들려오는 이 목소리는 과연 누구의 소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