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아, 맏언니의 스펠링이 뭐였더라?”
“뭐? 맡? 너 심각하다.”
친한 언니의 결혼식, 몇 년 간 우리의 큰 언니 노릇을 해준 언니에게 고맙다고 카드를 쓰는 자리에서 나는 잠깐 펜을 멈추고 말았다.
‘잠깐, 맡언니는 아니잖아. 그렇다고 맞은 아닐 거고. 또 무슨 ‘맡’ 이 있더라?'
별일 아니라 생각하고 옆 친구에게 말을 띄우는 순간 기본 맞춤법에서 막힌 나 자신에게 당혹감이 들었고 철자, 맞춤법도 아니고 스펠링이 무엇이냐고 두 배의 국어능력 상실 대잔치까지 하고 난 뒤 더 큰 창피함이 몰려왔다.
“아니, 맏언니라는 말을 너무 오랜만에 써서…”
‘맏’ 이라니! 생각도 못했다. 그 순간엔.
결혼식 내내 나는 ‘맏’의 충격에 다른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 후 일상에서도 그 여파는 옅어졌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평소에 책 좀 읽고 글쓰기도 좋아한다고 뻐겨왔던 사람이라면 이런 실수로 자존감이 깎이는 일을 겪을 수 있다.
안 그래도 요즘 인스타그램 없이 돈을 벌 수 있는 법은 무엇인지 고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만나는 사람마다 하나같이 인스타를 좀 끊고 싶다고 난리인데 왜 인스타에는 그렇게 쉽고 간편하게 올린듯한 열렬한 모습들이 가득한 거야? 인스타그램 끊기 챌린지는 인스타그램에 인증을 할 수 없으니까 아무도 참여하지 않을 것인가. 아무래도 수단적으로 정말 필요하긴 한데 이게 내 삶을 대변할 수는 없고 내가 진정 원하는 것도 아닌 거 같아. 하지만 아직은 끊을 수 없어. 적어도 경제적 자유를 이루기 전까진. 이것보다 더 좋은 마케팅 수단은 아직 없으니까...'
나는 세 자매 중 장녀이기 때문에.
맏이이자 장녀인 나는 스스로의 실수에 관대하지 못한 경향이 있다. 이것도 장녀 콤플렉스인가? 장녀인 나는 내가 부끄럽고 무식하고 남들 보기에 서투른 행동을 한 것에 대해 관대하지 못하다. 그것이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성향이자 맏이에게 잠재된 의식이다. 당신이 맏이가 아닌 둘째나 막내였다면 이런 실수쯤은 진작에 털어버렸을 것이며 결국 이것은 맏이가 감당해야 할 세계관인 것이다.
수치심에서 벗어나기 전까지는 이런 저런 억지가 통할 수 있다. 맏이의 상념은 동생에게는 공유하지 않은 인스타그램의 어떤 어린 시절 게시물을 떠올림과 동시에 속마음을 쉽게 오픈하지 않는 가족 관계에 대한 고찰까지 자연스러운 가지를 치며 뻗어나간다. 여러모로 ‘맏’의 충격은 대략 2개월 정도 맛먹는 시간이 지나야 만 벋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