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 작가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건 내가 가입한 독서모임의 발제 도서 안내에서였다. [바깥은 여름]이라는 책이었다. 요즘 독서모임의 발제 도서들을 주로 빌려 읽고 있었기에 지역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검색해보니 없는 것이었다. 나중에 도서관에 방문해서 보니 지역 도서관 홈페이지에 '바깥의 여름'으로 저장되어 있었던 탓에 없는 목록이라고 나왔던 것이었다. 그때의 난감함이란. 어찌 됐든 그때쯤 결국 다른 책들을 빌려 읽던 중 우연히 신형철의 [몰락의 에티카]에서 그 이름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 우연한 발견이 어찌나 반가웠던지.
그러나 반가움도 잠시 [몰락의 에티카] 속 '김애란'작가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한국문학에 최소한의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라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책 꽤나 읽었다는 나 자신이 무척이나 부끄러워졌다.. 물론 각자 좋아하는 장르가 있고 책이라는 것 또한 재미있고 즐겁고 행복하기 위해 읽는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해 보았지만 헛된 짓에 불과했다.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앞에 썼던 몇 편의 독후감 속에서 신형철이 거론한 작품은 모두 읽어보고 싶어 진다고 했는데 그중에서도 이 작가의 작품은 특히나 더 구미가 당겼다. 그래서 그중에 나의 첫 도전작으로 고른 '달려라, 아비'!
첫 표지를 펼치고 순식간에 읽어가는데 갑자기 '어 이상하다' 싶었다. 왜냐하면 [몰락의 에티카]를 읽을 당시에 난 이 책(달려라 아비)이 하나의 장편소설인 줄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언가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쭉 이어지겠지 하다가 덜컥 끝이 나버리고 만 것이다. 하지만 이미 뒤의 단편들을 읽고 싶어 못 견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에 그 황당함은 그리 오래 가진 않았다.
'달려라, 아비'의 아비는 누구누구 애비 또는 아비 할 때 그 아비이다. 첫 단편의 '계속 달리는 아비'부터해서 '복어국으로 자식을 놀리는 아비'까지 다양한 모습의 아비가 등장한다. 그 아비들은 그리 대단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지만 각 단편 속 화자의 이야기 속에서 그들은 그들 자신에 비해 좀 더 소박하고 따뜻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들이 옳은 판단을 하거나 정말로 따뜻한 아버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냥 그 관계가 실제 자식과 아버지 사이의 서먹한 모습을 보여주는데도 어색하지 않은 느낌이랄까. 그냥 아버지가 있으니 아버지 다랄까.
물론 '아비'들이 등장하지 않는 단편들도 있는데, 그 단편들 속에서의 단상들도 위와 마찬가지다. '생활한다는 건 생활한다는 거'. 김애란이 보여주는 일상은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과 다르지 않지만 더 극적으로 느껴진다. 그것이 김애란의 힘 아닌가라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보면 다음 작품을 곧 만나볼 생각이다.
여러 단편들을 쉼 없이 다 읽고 나면 김동식(작가인지 평론가인지 교수인지 아직 정확히 모름..)님이 쓴 해설이 있다. 그 해설을 읽지 않고 서평을 썼다면 더 좋았을 텐데. 너무나 좋은 글을 읽고 그럴 듯~한 독후감을 써보겠다는 의욕이 그 해설을 읽는 순간 사라졌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훌륭한 작품에 훌륭한 해설까지 완벽한 조합이긴 하지만 말이다.
신형철의 글들을 읽으며 문학에 대한 사랑이 더 커졌음은 좋은 일이나 그가 거론한 작품들을 '그가 말한 방식'대로만 읽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염려가 있었는데 우려한 것보다는 양호했지만 영향이 아예 없지만은 않은 첫 작품과의 만남이었다. 각 단편을 읽는 동안 그 안의 인물들이 삶의 고단한 일상을 담담히 받아들이는(이러한 받아들임을 '긍정한다'라고 표현하는 많은 의견에는 쉽게 동조하지 못하겠지만) 모습에서 신형철이 표현했던 '애잔한 씩씩함'(정확한 표현은 아님)을 가장 많이 발견한 게 그 이유일 것이다.
나의 의욕을 꺾었던 해설에 이어 '작가의 말'이 이어지는데, 그 글이 간결하고 힘차다. '작가의 말'을 읽고 우연히 책 앞표지의 뒷면에 있는 작가의 사진을 보았다. 사진 속 작가도 역시 씩씩하고 힘차 보인다.
이 '작가의 말'이 너무나 맘에 들어 이것을 인용하는 걸로 서평을 마칠까 한다.
작가의 말
2003년부터 쓴 단편들을 모았습니다.
작가라서, 무슨 이야기를 썼는지는 알고 있지만
그것이 당신에게 어떤 이야기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기쁘고, 다행입니다.
나는 문학이 나의 신앙이 되길 바라지 않습니다.
소설을 쓰는 데 배움이나 경험이 반드시 중요하다고 생각하
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소설 안의 어떤 정직. 그런 것이 나에게 있었으면 좋
겠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당신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은 제가 당신에게 매우 딱딱한 얼굴로 보내는 첫 미소
입니다.
언제고 곧, 다시 봅시다.
2005년 차고 깊은 가을
김애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