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지?
너랑 만나고 나서 한 번은 내 상태에 대해 정리해서 말해주고픈 마음이 들었는데 오늘에서야 그렇게 하게 되네.
우선 너랑 만나고 나서 그 주 금요일에 예약해 둔 상담을 받았고, 상담쌤 앞에서 뻐큐까지 날리며 남편과의 일에 대해, 남편에 대한 내 마음에 대해 소리 높여 얘기했어ㅋㅋㅋ(진짜 상담 받고 나오면 내담자보다 더 내담자 같았던 내 모습이 어이없어서 헛웃음까지 나온다니까)
어쨌든, 막연히 알고는 있었지만 이젠 남편의 기준(확인되지도 않은)으로 나를 보는 일은 그만두고, 그 기대대로 움직이려는 나 자신도 잘 알아차려보는 연습을 하기로 했어. 누군가의 기대로부터 해방되려면 그 사람에 대한 애정도 끊고 멀어져야만 한다고, 그 방법 밖에 몰랐던 나라서 참 막막했는데 아직 충분히 믿어지진 않지만 그 방법이 아니어도 된다는 걸 알게 됐지. 나를 누군가의 기대와 인정이 아닌 그냥 나로 보는 연습을 해나가야 된다는 걸 알게 되긴 했지만, 여전히 어렵고 막막할 때가 있어.
너와 만나고 온 날, 남편에게 물었어. 내가 자기 말대로 유명해지거나 대단해지고 싶지 않으면 어떨 것 같냐고. 남편은 처음에 누구보다 내가 그걸 원하지 않냐고 하길래, 더 이상 내가 그러고 싶지 않다고 하면 어떨것 같냐고 다시 물었어. 그제야 알아들은 남편은 안아주며 말하더라고. 그렇게 되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유명해지지 않아도 내가 자신한테 소중한 사람이니까. 참 고마운 대답이었어.
물론 그 이후로도 남편이 나에게 무심하거나 차갑게 느껴져서 서운하고 외로운 순간들은 계속 있어. 동시에 알게 된 건, 남편이 나에 대한 기대 그 이상으로 내가 남편에게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는 거야. 심지어 남편은 그나마 대놓고 말이라도 하지, 나는 말도 하지 않은 채로 높은 기대를 품고 혼자 실망하고를 반복하고 있는거지. 상담을 하고 온 날도 남편과 밤에 긴 대화를 했어. 상담 내용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친구야, 너의 의도가 나에 대한 걱정과 애정을 표현하려는 걸 몰랐던게 아님에도 남편에 대한 너의 말에 내가 방어적으로 나온 마음은 역시 불안이었던 것 같아. 누군가 내 남편에 대해, 아니 남편 자체가 아니라 그 사람의 어떤 말이나 행동에 대한 이야기임에도 그게 부정적이라면 내가 그와 함께 있는게 틀렸다고 하는 말일까봐 두려웠나봐. 왜냐면, 문득문득 내가 그렇게 생각하곤 하거든. 내가 그와 함께 하는데도 외롭다면, 그의 말과 행동으로 인해 슬프고 상처받는다면, 역시 우리는 헤어져야 하는 것 아닐까 하고. 그게 정답인데 내가 자꾸 피하고 거부하면서 버티는건 아닐까. 사실 누가 정답을 정해놓은 것도 아닌데 말야.
진실은, 언젠가 정말 그래야만 할 것 같은 날이 오더라도 지금 당장은 내가 남편을 때론 슬플 정도로 많이 사랑하고 아끼고 남편 역시도 내 기대와 다른 표현을 할 뿐, 나를 많이 생각하고 사랑한다는거야. 서로가 아이들의 부모인 것과는 별개로. 그러니 이 상태가 유지되는 한은, 함께해도 되지 않을까 싶어. 내가 봐야할 지점은, 남편이 계속 나를 사랑하는가 내 기대대로 나를 대해주는가가 아니라 내가 나를 어떻게 봐주고 있는지, 나한테 뭐가 중요하고 뭘 원하는지, 이렇게 살아가는게 어떤지 살펴주는거라고 생각해. 지금까지는 너무 주의가 남편에게만 향했던 것 자체가 문제였던 것 같아. 그러는 이유가 있겠지만.
문득문득 너가 갑자기 내 얼굴에 가까이 다가오면서 '너 귀엽다' 했던 것과 헤어지면서 '잘 지내라고, 너는 내 친구니까' 하는 개연성 없는ㅋㅋㅋ 순간들을 생각해. 그러면서 웃게 되지. 누군가 내가 어떠해서, 뭔가를 해내서, 기대를 채워주고 채워줄 것만 같아서가 아니라 그냥 나 자체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그 순간이 당황스러울 정도로 벅차다는 걸, 그리고 그게 이 후로도 살아가는 힘이 된다는 걸 너 덕분에 알게 되네.
고마워, 오늘은 사실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그걸 되게 길게 쓰게 된 것 같아. 고마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