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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기억하는 어떤 한 방법

by 오션뷰

너무나 아름다워서 거짓말 같던 영화가 있다. 두 주인공은 배우로서 그들의 전성기를 맞은 것처럼 아름다움을 마구 뽐내고 있었고, 영화 속에서 두 주인공이 정점을 찍었던 시간은, 많은 이들의 뇌리에 박혔을 만큼 강렬한 아름다움이 잔뜩 칠해져 있었다. 보랏빛 석양 아래에서 두 주인공이 추던 춤은 석양보다도 빛났고, 그들이 서로를 그윽하게 바라보며 부르던 노랫말은 한 소절, 한 소절 적어놓고 싶을 만큼 고왔다.


애써 모른 척 두었던 ‘너’라는 기억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아니 사실은 옅게 빛나던 너의 잔상은 영화를 보는 동안 그 어느 때보다도 진실하게 빛났다. 더 이상 곱씹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약속들, 그러니까 우리가 서로에게 건넸던 몇 가지의 약속들은 무리를 잃어버린 몇 조각의 구름과 같이 정처 없이 맴돌고 있었다. 아니 사실 난 영화를 보는 동안 그들의 노랫말이 아닌 너와의 지난 약속들을 되새기고 있었다.


영화 속 화려하기만 한 색감에 묵묵히 젖어 들어가는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그곳엔 기억 속의 네가 있었고, 작은 한 상자로 포장해 놓은 지난 추억이 서려 있었다. 보랏빛 석양 아래 영화 속 두 주인공처럼 춤을 추는 대신, 우리는 보랏빛이 꽤나 검붉어져 완벽한 어둠이 드리워질 때까지 그렇게 서로를 마주하고 있었다. 네가 기억으로 남겨지기 시작했던 그 날부터 지금까지 매일 밤 상상했던 ‘지금의 너’를 그렇게 마주하고 있었다. 내가 상상해 온 ‘지금의 너’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를 마주했고, 내가 그렇게도 좋아하던 네 묵직하고 숱이 많은 눈썹을 계속해서 쓰다듬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일몰의 시간들. 눈이 부신 일몰을 볼 때마다 그리워했던 너와 함께, 지나간 일몰의 시간 속으로 다시 헤엄쳐 들어갔다. 그곳이 영화 속인지, 잊으려 했던 기억들을 가두느라 만들어 낸 환영인지 구분 짓고 싶진 않았다. 우린 그저 우리가 담긴 배경을 최대한 밝고 맑은 색으로 칠하고 있었고, 햇빛에 따사로 이 녹아 내려지고 있었다.


보고 싶다는 말을 꺼내기가 너무도 쑥스러울 만큼 너무 멀리 와버렸다고 생각했다. 지지리도 불평하며 적응해낸 이 시간에 더 이상은 너를 그리워할 여지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네가 다시 나타나 준다면 그간의 모든 적응을 다 물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다시 위태로운 날 위에 서게 되더라도 그럴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이 든 건, 그 아름다운 영화를 본 직후였다. 그건 너와 내가 나누었던 배경, 음악, 여러 가지의 맛과 냄새, 공기가 기억에 묻혀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영화만큼 아름답지 못해 나 홀로 우리의 마무리를 새로이 지어내려 했던 내 작은 욕심 때문일 수도 있다.


영화는 끝이 났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고 있었다. 가장 선율이 따뜻한 곡이 마지막으로 나의 온몸을, 너와의 기억을 휘감았다. 그 선율에 따라 흘러온 넌 더 이상 기억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 실재하는 너였다. 엔딩크레딧의 글자들은 다 사라지고 까만 스크린은 보랏빛 석양으로 변했다. 우리 둘도 보랏빛에 물들어 서로에게 시선을 떼지 못하고, 서로를 잡은 손의 틈새를 최대한 줄인 채로 보랏빛 춤을 추었다. 우리의 동작은 부드럽게 퍼져나갔고, 음악이 끝나는 순간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다시없을 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우리는 서로의 손을 더욱 움켜쥐었다. 가장 짙은 기억으로 남겨질 순간을 위해 최선을 다해, 우린 함께 우리를 감싼 모든 것에 취했다. 밤새도록 이 음악이 끝나지 않을 것처럼, 그렇게. 아침이란 것은 이내 오지 않을 것처럼,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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