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함이 부르는 소리에 귀 기울여보기
929일 만에 다시 k-직장인
아무튼 백수가 되고 나서 나는 다시 k-직장인이 되었다.
다시 일하고 싶어질 만큼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퇴사했는데
결국 난 다시 일하고 싶어졌다. 929일 만의 일이다.
929일이 지나 다시 직장인이 되면서 주변에 소식을 알리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어떻게 929일 만에 다시 직장인이 되었는가였다.
나 역시도 그 과정이 너무 재밌고 신기했던 지라 내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첫 문장은 이렇게 쓰고 싶다.
책이 하드캐리한 내 인생.
당신의 취미는 무엇인가요?
우리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직장인이 된 지금 까지도 취미에 관련된 질문을 받는다.
그럴 때마다 제일 만만한 3 대장이 있다.
독서, 영화 감상, 여행.
이렇게 남들이 흔히들 말하는 취미가 독서라서
내가 특별히 이걸 내세울 만큼 뭔가 있다고 생각 못했는데
남들과 조금 다르게 책을 아끼고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된 건 결혼하고 나서였다.
퇴근하고 나서 서평을 쓰고 주말 아침이면 책을 읽고 매주 도서관을 찾아 책을 빌리고
좋아하는 책은 몇 번이고 읽고 또 읽고 아끼는 문장을 외워두기까지 하는
너무 당연했던 나의 일과를 남편은 특별하게 봐주었기 때문이다.
내가 책을 읽고 글 쓰는 걸 취미란에 당당히 적을 수 있을 만큼 좋아하는구나 싶었고
그 무렵부터 글 쓰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다.
하굣길에 책을 읽으며 하교하는 학생이 있다?
나의 책과의 인연은 아무래도 아빠가 만들어 준 게 틀림없다.
아빠는 주말이면 우리 남매를 데리고 도서관을 가셨고 시골에 살던 우리를 위해
시내 서점에 들러 책을 꼭 한 권씩 사주셨다.
(내게 그 책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나는 어릴 적 산 그 책들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책을 어느 정도로 좋아했는지 작은 내 키에 비해 꽤 컸던 가방엔 늘 책이 한가득이었고
하굣길이면 책을 읽으며 걷느라 초록불에도 건너지 않아서
주변에 언니 오빠들이 내가 앞을 못 보는 건지 걱정까지 해줬던 웃픈 일도 있었다.
언어영역이 공부하는 거였어?
아무튼 학창 시절부터 책은 내게 꽤 큰 도움을 주었는데
나는 학창 시절 언어영역은 공부하지 않아도 꽤 점수가 나왔다.
이런저런 말 대신 한마디로 풀어쓰면, 언어영역을 공부해 본 적이 거의 없다.
시험지문에서 문단들이 길어지며 긴 글을 빠른 속도로 읽어내리는 것 역시 책이 준 선물이었다.
친구들은 공부 때문에 억지로 읽어야 하는 수필, 소설, 시문학 이런 글들이
내겐 너무 재밌었고 덕분에 언어시간만큼은 공부라는 생각을 안 했던 것 같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덕분에 다른 과목을 공부할 시간을 아낄 수도 있었다. (아싸!)
이게 책이 내게 준 첫 번째 선물이다.
인생 선배들이 줄지어 내게 조언해 주는 곳
그러다 대학 입시와 맞물려 내 인생이 뒤흔들릴만한 혼돈의 시절이 왔었고
누구나 그렇듯 나도 그 해결책을 찾아보려 노력했다.
내가 남들과 달랐던 건 타인이나 혹은 나 자신 아니면 술, 게임, 쇼핑 이런 것에서 찾지 않고
책에서 찾았다는 것이다.
마음이 복잡하거나 뭔가 해결책이 보지 않고 답답할 때면 나는 늘 동네 도서관을 찾곤 했다.
도서관은 적막한 고요함 그 자체였지만
책장의 책들은 늘 요란한 소리를 뿜어냈다.
적막한 고요함 속에서 듣는 요란한 소리, 그 안에 내가 찾는 답은 늘 있었다.
도서관이나 서점을 찾아 심리와 정신분석 관련 책들을 읽고 또 읽었다.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그 해결책도 어딘가에 쓰여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 바닥에 앉아 수십 권을 책을 읽고 또 읽으니 책들이 하나 같이 내게 같은 말을 하고 있단 걸 알았다.
‘괜찮아. 다들 한 번쯤 그런 적이 있어’
우리가 빌 게이츠나 스티브잡스, 오프라 윈프리를 직접 만나서 고민을 물어볼 수 없지만
도서관에서는 다들 나를 기다리고 있다.
유명인사가 아니더라도 나보다 현명한 누구라도 만나
내 인생이 왜 그럴까요 묻고 싶을 땐 도서관을 찾아가 보면 그들이 먼저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책은 나를 또 구해주었다.
결국 모든 점들은 연결된다.
그렇게 무사히 졸업을 하고 우여곡절 끝에 IT 개발자로 살게 되었다.
코딩도 언어라면 언어라 나름 적응해 나가며 일을 했지만 기획 업무에 더 눈이 갔다.
기획자로 살고 싶어 졌는데 이직이 쉽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돌아오고 싶을 때까지 쉬어보겠다며 퇴사하게 되었다.
남편이 이왕 백수 된 거 좋아하는 글이나 실컷 써보라고 해서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고 두 번의 도전 끝에 작가로 선정되었다.
많은 글을 쓴 건 아니지만 틈날 때마다 글을 쓰고 글을 발행했다.
글을 쓰는 일도 재밌었지만, 난 다시 그 일터가 그리워졌다. 돌아간다면 제대로 다시 해보고 싶은 것들이 점점 많아졌고 사람은 일을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것도 느껴갔다.
다시 취업을 해보자! 마음먹고 이력서를 쓰기 시작했는데 벌써 진 느낌이다.
20년 9월 이후로 적을 이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울함에 빠져 종종 패배감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누가 2년을 넘게 쉰 사람을 뽑겠어? 하는 생각에.
그러다 문득, 내가 쉰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 인생의 한 페이지를 작가로 도전했고 열심히 글을 썼다.
결국 이런 나의 스토리텔링으로 관련 회사에 입사해 다시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관련 업계가 아니라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왜냐면 면접 때 다들 나의 이런 도전기에 대해 좋게 평가해 줬기 때문이다.
또 한 번 책에게 큰 선물을 받게 되었다.
되돌아보니 결국 나의 예민함은 글이었던 것.
누군가의 눈에는 모두 다 같은 글처럼 보이지만 내 눈엔 글자하나 달라져도 다른 글처럼 느껴지는 새로움.
노래를 들을 때면 가사 하나하나를 꼽씹어 보며 음미하는 버릇.
책을 읽고 좋아하는 문장을 쓰고 외우고 아껴주는 마음.
서점에 들어갈 때면 두근거리는 내 마음.
내가 글에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걸 다 큰 어른이 돼서야 알게 되었다.
어느 영상에서 그런 걸 본 것 같다.
무슨 음식이던 맛있게 잘 먹는 사람과 까탈스럽게 맛을 느끼고 음식 맛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
이 둘 중 누가 요리사가 되어야 하냐고
당연히 맛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결국 우리가 느끼는 어떤 예민함 속에 우리의 취향, 잠재력이 모두 담겨있는 것 같다.
좋아하는 일을 찾지 못해 고민이라면
자기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들에 귀 기울여보면 어떨까
영화던 음악이던 자동차던 커피던 와인이던 뭐든.
그 안에 답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