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더이상 묻지 않는 그 질문
조리원에서 막 나와서 본격 육아를 시작하면서
나 혼자 하기 가장 힘들었던 게 아기 목욕이었다.
일단 아기는 너무 작고 물은 너무 위험해 보였다.
욕조에 물을 받아서 방 안에서 씻겨야 했는데 그 욕조를 옮기는 것도 힘에 부쳤다.
조리원에서도 아기 목욕 교육은 남편과 함께 받는다.
내게 아기 목욕은 혼자서는 넘을 수 없는 큰 산 같이 보였다.
그래서 나는 늘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여보 오늘은 몇 시에 퇴근해?
남편의 퇴근이 곧 아기의 목욕을 의미했다.
남편이 없으면 아기의 목욕도 나의 자유도 그 무엇도 시작할 수 없어서 늘 애타게 기다렸던 것 같다.
세상의 모든 남편들이 정확히 6시가 되면 칼같이 퇴근하면 베스트겠지만
우리 남편은 그렇지 못했고 나는 늘 재촉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아기 목욕을 사이에 두고 나와 남편은 늘 퇴근 문제로 예민해져 갔다.
7시쯤 도착할 것 같다던 남편이 조금만 늦어도
엄청 큰 일이라도 벌어진 듯 도대체 왜 늦었는지 이유를 캐묻곤 했다.
그러다가 나는 그런 내 모습이 싫어졌다.
나도 같은 업계에 있었기에 남편이 왜 바쁠 수밖에 없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런 남편에게 매일 언제 퇴근하는지 물어보며 닦달하는 내 모습에 나도 지쳐갔다.
그래서 나는 아이의 목욕을 잠시 내려두었다.
한 여름도 아닌데 왜 꼭 매일 목욕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어쩌면 나는 아이의 목욕을 핑계로 남편을 더 빨리 오게 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까짓 것 내가 씻기고 말지!'
아이는 2일에 한 번씩 목욕을 하다가 점점 육아에 익숙해지자 내가 혼자 아이를 씻겼다.
목욕은 고되긴 했지만 나는 아이를 더 빨리 재울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남편의 칼퇴날에는 함께!)
아이도 더 이상 남편의 퇴근을 기다리지 않고 6 -7시면 잠들었고
그 이후부터는 내 자유시간이 되었다.
남편의 퇴근이 늦어져도 나는 내 자유시간 동안 여유롭게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할 수 있었다.
몇 시에 퇴근하는지 묻지 않아도 우리는 여전히 아니 더 잘 지낼 수 있었다.
아이는 일찍 잠드는 대신 일찍 일어났고 남편은 출근 전에 한 시간 정도 아이를 봐주곤 출근했다.
내가 만약 계속 남편의 퇴근을 기다렸다면 우리의 저녁 시간은 즐겁지 못했을 것 같다.
시계만 보며 초조해하는 나를 보며 우리 아기도 행복하진 않았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타인의 어떤 행동에 내 시간의 주도권이 맞춰진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은 아닌 것 같다.
마치 남편의 퇴근 시간에 따라서 내 저녁일과가 결정되는 것처럼.
내 행동으로 내 시간을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는 건 멋진 일이다.
육아를 하면서도 그 자유를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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