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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로지 Oct 30. 2021

엄마와 아빠는 다른 집에 산다.

같은 공간에 머물지만 우리가 그 공간에 담는 의미는 다를 수 있다.

아이가 태어나고 모든 초보 부부가 그렇듯 한동안 우리는 좌충우돌하며 초보 엄마 아빠 티를 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변명이라도 하자면)

어느 광고 카피처럼 '나도 엄마가 처음이니까'라고 말할 수 있겠지.


밤에 아이가 울면 우리 둘 다 뛰어가 돌아가며 너를 안아 재웠고

아이가 잠든 후에야 저녁식사를 시작해 식사 시간이 9시를 훌쩍 넘기곤 했다.

아이의 목욕은 아빠가 퇴근하고 나서 시작할 수 있었고

그렇게 모든 일이 끝난 것처럼 보일 때 젖병 설거지를 시작했다.



"퇴근했어? 아기 목욕해야 하는데..."



남편의 도움 없이는 나 혼자 

아이의 목욕도, 밤잠도, 우리의 저녁식사도 시작할 수 없어서

나는 그렇게 남편이 퇴근하기만을 기다렸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여러 날이 지나고 저녁 7시면 잠드는 아이와 

우리의 저녁시간이 생기기 시작한 무렵

남편은 이제 어느 정도 육아에 분담이 필요할 것 같다는 말을 어렵게 꺼냈다.


분담? 이미 분담하고 있지 않은가? 처음엔 서운한 마음이 앞섰다.

하루 종일 온통 처음 해보는 일 투성인 초보 엄마의 눈에 남편은

그저 나를 도와줄 든든한 지원군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일까?


오늘 하루 동안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한마디 하려다

식탁에 앉아 있는 남편의 얼굴을 찬찬히 보는데 그제야 피곤함과 안쓰러움이 보였다.


그래, 어쩌면 나는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는 걸' 잊고 있었던 건 아닐까?



아마 남편도 나를 보며 그런 안쓰러움을 느껴 

지금까지 묵묵히 뒤에서 힘든 내색 없이 도와주고 있었겠지.






그렇게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눴고 나는 그 대화 속에서 몇 가지 깨달은 게 있다.


엄마에게 집은 하루 종일 아이를 보살피고 밥을 먹이고 놀아주는 일터지만

아빠에게 집은 일을 끝마치고 돌아와 쉬는 휴식처라는 사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같은 경험을 해도 같은 곳을 바라보아도

우리 모두는 다른 의미를 담아가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엄마 아빠라는 낯선 무게감이 두려워 모든 걸 함께 하려 했던 걸까.

아니면 아이라는 소중한 존재를 혼자 감당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겠지.


그래도 이제는 능숙해지는 일이 하나 둘 늘어

남편 없이도 아이를 목욕시키고 

남편은 나 없이도 새벽에 아이를 안아 재운다.


퇴근이 늦는 남편에게 

'괜찮아 목욕시키고 밥 먹이고 재웠어!'라고 답장을 보내고


유독 아이가 힘들게 한 날엔 남편이 

'오늘은 일찍 육아 퇴근해. 젖병은 내가 설거지할게'라며 말을 건넨다.


엄마 아빠에게 집의 의미는 달라도 '우리 집'에 대한 애틋함 만큼은 같다는 걸 이제는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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