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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로지 Jun 23. 2023

아이가 태어나고 감정기복이 아닌 남편기복이 생겼다.

누구도 들어본 적 없지만 누구나 걸려본 적 있는

아이가 태어나고 본격적인 육아가 시작되면서

남편이 내게 새로 붙여준 별명이 있다.


바로 ‘다중이’


남편 말로는 출산과 육아를 겪으며 내가 감정의 기복이 자주 왔다 갔다 하는 것 같다며 붙여준 별명이었다.

물론 지금까지도 말이다.


나는 동의할 수 없었다.

출산 직후 육아 초반이야 나도 호르몬의 영향을 받아

한동안은 그랬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이제 두 돌이 넘어섰고

나 역시도 엄마라는 존재로서 꽤 정착했기 때문이다.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가

오늘 아침 다시 남편이 말했다.

‘당신이 예전에 기분이 1에서 100이 됐다가

갑자기 100에서 1이 되는 그런 사람 대하기가 어렵다고 하지 않았어?’

‘응 맞아’

‘그런데 요즘 당신이 그런 사람이 된 것 만 같아’


남편이 이런 말을 꺼낸 그날 아침에

나는 내 감정의 아무런 변화를 느끼지 못한 상태였다.

남편에게 재차 물었다.


‘나는 똑같은데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아냐 당신 며칠 전엔 힘들다고 울고, 오늘은 또 나한테 이렇게 하니까 그렇지 ‘

‘내가 오늘은 어떻게 했는데?’




그때 나는 막 출근을 앞두고 남편을 한번 꽉 안아주고 있었다.


며칠 전 내가 운 건 맞다.

주말이면 푹 좀 쉬고 싶은데 워킹맘이 되니 주말도 평일도 쉬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치워도 치워도 집은 어지럽기만 하고

더구나 요즘 아이가 물건을 던지며 폭력적인 행동을 보여서 빨래를 개다 갑자기 감정이 욱 하고 올라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그때 내가 느낀 나의 감정과 오늘 내가 느끼는 나의 감정이 크게 차이 나진 않았다.

난 여전히 힘들고 지쳐있었고

출근을 앞두고 아이를 등원시켜 줄 남편이 짠하게 느껴져 한번 꽉 안아준 것뿐.


그렇게 의문점만 한가득 들고서 지하철을 탔다.

흔들리는 지하철에서 수많은 생각들이 통통 튀어 올랐다.


내가 산후 우울증인가 싶었다가도

그날쯤 되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호르몬의 단순 영향일까 싶다가도

마땅히 이거다 싶은 원인이 없었다.


그때 오늘 아침 남편의 말에서 힌트를 얻었다.




남편이 말하는 기분이 바뀌는 나의 어떤 행동이나 말은 항상 남편을 향해 있었다.

남편에게 하는 말, 남편에게 하는 행동, 남편을 대하는 태도.


그제야 나는 지난 2년간 그가 말해온 나의 감정기복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생각해 보니 그도 어리둥절했을 것 같다.

아이가 태어나고 내가 그를 대하는 태도가 차가워질 때마다 그는 혼자서 많은 고민을 했던 것 같다.


나는 나 나름대로 싸움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굳이 남편에게 서운한 점을 말하지 않았던 건데

말해주지 않으니 남편은 남편대로 이유를 모르고 그저 내가 기분이 왔다 갔다 한 걸로 느꼈던 거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나는 감정기복이 아니라

남편기복을 겪고 있던 것 같다.


남편의 배려나 육아참여도가 높아질 때면 이런 남편 또 없다 생각하면서 남편이 이뻐 보이면서도

잦은 회식과 주말의 약속들 그리고 우리 가족보다 회사 일이 먼저라고 느껴질 때면 남편이 그리 미워 보일 수가 없었다.








잘 지내보려고 꽁꽁 감춰두었던 서운함이 돌고 돌아 결국 상대에게 상처를 주게 된 것이다.

꽁꽁 감춰둘거면 겉으로도 티가 안나게 해야하는데

서운함이라는 녀석은 꼭 틈을 비집고 나와서 엄한데 가서 이렇게 티를 낸다.


남편기복이라는 내 증상에 대해 한참을 깊이 들여다봤다.

상대에게 이유도 말해주지 않은 채 그를 대하는 태도를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는 건

결국 배려도 아무것도 아니었다.


네가 내게 잘할 때만 나는 너를 이뻐해줄꺼야! 라는 태도는 

상대를 내 아래로 보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우리 관계에는 서로를 존중하는 예의라는 녀석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남편이

‘이제 당신 기분이 오락가락하지 않네’라고 할 때까지

남편에게 늘 따뜻한 말을 하기로 혼자 다짐했다.

행동은 어찌할지 아직 모르지만 말은 내가 컨트롤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이렇게 오늘도 평화의 타협점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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