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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로지 Aug 08. 2023

우리의 집안일은 공평하지 않을 때 평화롭다.

우리 부부가 집안일로 싸우지 않는 이유 2

이제 모두 유부녀가 된 친구들과 결혼생활 이야기를 하다가 깜짝 놀랐다.

다들 집안일을 역할을 나눠서 하고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음식물 쓰레기, 설거지는 남편이 하고 요리와 빨래는 아내 이런 식이었다. 심지어 그중 몇몇은 엑셀표로 집안일을 정리해서 무슨 요일 언제 그 일을 누가 할지 역할을 나눠서 관리하는 부부도 있었다.


사실 친구들 앞에서는 말하지 못했지만 나는 그렇게 집안일을 정교하게(?) 구분하고 또 남편과 아내가 그 역할을 나눠서 하는 것에 찬성하지 않는다.


왜냐면 우리는 결혼 4년 차인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집안일을 아내/남편 담당으로 나누어서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한참 결혼을 준비하고 있을 무렵 나는 주위의 결혼 선배(?)들로부터 여러 조언을 들었다.


초반 기싸움에서 이겨야 편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다거나 집안일을 일부러 잘 못하는 척해서 더 이상시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등 어딘가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들이었다.


그런데 그중에서 정말 도움이 되었던 조언은 딱 하나, 그 하나 빼고는 다른 건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내게 조언을 해 준 분은 회사 내에서도 능력, 인성 모두 평판이 정말 좋은 분이었다.

그런 분과 가까이 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모두 나를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분은 내가 결혼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딱 하나의 조언을 해주셨다.


'집안일은 나누지 말아야 해. 내가 조금 더 한다 생각하고 하면 돼. 서로 역할과 할 일을 나누다 보면 결국 서로의 잘잘못만 따지게 되니까'


다른 건 다 잊었지만 그 조언만큼은 잊지 않고 결혼 4년 차인 현재까지도 집안일을 굳이 나누진 않는다.




집안일을 나누지 않기에 모든 집안일은 내 일임과 동시에 네 일이다.

결국 집안일이 쌓여있다면 우리 모두의 책임인 것이다.


설거지가 쌓여있어도 누굴 탓하지 않는다. 정해진 담당이 없기 때문이다.

빨래통에 빨래가 다 쌓여갈 때쯤 그때 먼저 본 사람이 세탁기를 돌린다.

요리를 잘하진 못해도 먼저 ‘난 요리 못해 네가 해’라고 빼지 않는다. 인터넷에 널린 레시피들을 보고 따라 해보고 배워본다.


이렇게 집안일을 나누지 않으면 어쩌다 한동안은 집에 더 오래 있거나 회사 일이 바쁘지 않은 사람 혹은 둘 중에 덜 피곤한 사람이 더 많은 집안일을 하게 되는 시간도 오지만 굳이 공평하게 나누려 하지 않는다.


어차피 공동의 일이니 여유가 되는 내가 조금 더 한다 생각하면 어느 순간 남편도 알아서 집안일을 하고 있다.




만약 집안일에 공평이라는 말이 더해지면 어떨까?


집안일을 리스트를 쭉 뽑고 칼로 자르듯 5:5로 나눠서 할 수 있을까? 어떤 집안일이 더 힘들고 덜 힘들고를 절대적인 기준으로 나눌 수 있을까? 모두들 하고 싶지 않은 집안일은 누가 가져가야 할까?


만약 그렇게 다 정해서 나름 공평하게 나눴다 하더라도 삶의 수많은 변수들이 잘 입력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분리수거 담당인 남편이 부쩍 야근이 늘었다면 아내는 분리수거 자체를 내 일이 아닌데 해야 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너무 피곤해서 설거지를 못하고 잠든 아내를 보며 남편은 피곤한 아내보다 할 일도 하지 않고 잠든 아내에 초점이 맞춰질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집안일에서 공평을 빼버렸다.

멋진 선배의 말처럼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기 보단 내가 조금 더 하고 말지 라는 마인드를 배우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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