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가 집안일로 싸우지 않는 이유 1
아이를 커가면서 거실에 있는 장난감 정리를 거의 손을 놓게 되었다.
아무리 정리해도 우리 집 꼬맹이 덕분에 5분을 채 못가 다시 엉망이 되기 때문이다.
아이가 잠든 후에 정리해 놓으면 다음날 아침까진 무사하긴 하지만
아이가 점점 커가면서 나도 아이와 같이 잠들어버리게 되면서 이마저도 할 수 없게 되었다.
키즈카페 못지않은 우리 집 거실은 미끄럼틀, 각종 블록, 기차 레일, 트램펄린이 점령하고 있는데
내가 전업맘일 때나 워킹맘인 지금도 우리 집 거실은 늘 정리되지 못한 채 퇴근한 남편을 맞이하곤 한다.
어디 거실뿐이랴
미처 다 씻지 못한 아이의 어린이집 식판, 출근길에 버려야지 하고 깜빡한 음식물쓰레기, 아직 개지 못한 빨래들이 소파에서 널브러져 있기도 한다.
하지만 퇴근 후 이렇게 어질러진 거실을 보고 남편은 내게 단 한 번도 잔소리를 하거나 뭐라 한 적이 없다.
‘집 좀 치워놓지 그랬어’ 단 한 마디 할 법도 한데 심지어 내가 일하지 않았을 때도 남편은 아무 말이 없다.
그런데 남편의 이런 마인드는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교훈을(?) 얻은 것이다.
결혼 전에 남편이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결혼하고 나서 같이 살게 되었을 때 만약 집이 엉망이라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게.
왜냐면 분명 그렇게 된 이유가 있을 테니까'
왜 그런 생각을 갑자기 하게 됐냐고 물으니 어제 본 예능 프로그램 때문이란다.
상황은 이렇다.
그 프로그램에 나오는 부부는 남편이 주로 집에서 아이를 보고 아내를 밖에서 일을 하는 부부였는데
어느 날 아내의 퇴근시간 무렵 아이가 사고를 쳐서 집안이 엉망이 되었고
이를 미처 수습하지 못한 남편 앞에 이제 막 일을 마친 아내가 집으로 들어온다.
밖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한 아내는 엉망이 된 집을 보고는 화를 내기 시작한다.
남편도 이 상황이 너무 억울하지만 왜 인지 이유도 묻지 않고 무작정 화만 내는 아내를 보며 같이 화가 난다.
그렇게 두 부부는 싸우게 되었다고 한다.
남편은 이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모두에게는 미처 알리지 못한 각자의 사정이 있으니
감정을 드러내기 보단 일단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대상이 가족이라면 조금 더 감싸안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이 이야기의 아내, 남편의 입장 모두 공감은 간다.
하지만 만약 아내가 이 모든 과정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었다면 절대 화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 앞에서 전전긍긍하며 뒷수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남편에게 말이다.
우리의 일상은 연예인들의 예능 프로처럼 누군가가 계속 카메라로 찍고 있고 그걸 지켜볼 수 있지 않는 이상 그 사정을 제대로 알 수 없다.
아침이면 뿔뿔이 흩어져 어린이집에서 또는 학교에서 회사에서 아니면 집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우리는 저녁이 되면 다시 집으로 모인다.
미처 알지 못한 서로의 사정은 ‘그럴만한 일이 있었나보다’로 정의해두고
쉴 곳을 찾아 온 집이라는 휴식처에서 쉬는 것에 목적을 둔 우리 부부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될 일‘ 과 ’꼭 해야 할 일‘을 암묵적으로 구분했다.
어질러진 거실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될 일이지만 내일 아침 먹을 밥을 짓는 일은 꼭 해야 하는 일이다.
건조된 옷더미를 개는 일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될 일이지만 아기 젖병을 씻는 일은 꼭 해야 하는 일인 것이다.
우리는 깔끔하지 못한 부족한 집에 살지만 우리에겐 쉴틈을 주는 완벽한 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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