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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로지 Aug 11. 2023

아이가 태어나고 처음으로 남편에게 소리를 질렀다

다 나가

아이가 첫 돌 즈음까지 새벽에 꼭 2~3번은 깨서 울곤 했다. 우리 아이는 쪽쪽이를 한참 좋아했는데 자다가 쪽쪽이가 빠지면 울었고 그 때문에 내가 쪽쪽이셔틀을 해주고 있었다.

아침이면 거의 좀비가 되어 나타나는 나를 위해서 주말 아침에는 남편이 아이를 봐주곤 했었다.


그날도 이제 막 일어난 아이를 남편에게 맡긴 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이제 막 침대에 누워 꿀 같은 단잠에 빠져드려는 순간,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침실로 들어왔다.


'아기가 엄마가 보고 싶다고 자꾸 울어~ 어떡하지?'

'뭘 어떻게 해. 오빠가 달래야지'

'봐봐 이렇게 계속 울잖아. 나랑 있으면 자꾸 울기만 하네'


한숨이 절로 크게 나왔다.


남편의 말도 맞다. 아이가 점점 엄마 껌딱지가 되어가긴 했다. 아직 뭘 모를 신생아 시절에는 엄마고 아빠고 누가 안아줘도 잘 놀던 아이가 점점 나를 더 찾기 시작한 것이다.


피곤한 엄마의 마음도 모른 채 남편은 아이를 침대 위 내 옆에 같이 눕히고 그 옆에 자기도 누웠다.


‘오빠 나 진짜 너무 졸려. 나 좀 자면 안 될까?’

‘나도 그렇게 하고 싶은데 애기가 자꾸 엄마를 찾잖아. 봐봐 엄마가 얼마나 좋은지 엄마한테만 가잖아’


아기는 내 속도 모르고 내 몸 위로 올라타서 같이 놀아달라고 칭얼댔다.


나는 긴 호흡으로 숨을 내쉰 뒤 소리를 질렀다.


'둘 다 나가!!!'


아기와 남편은 깜짝 놀랐지만 아기는 금방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하지만 남편은 꽤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그 뒤로 남편은 아기를 안고 방을 나갔고 나는 왠지 모를 평온함을 되찾았다.





잠에서 깨어난 뒤에야 밀려오는 민망함과 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이 화내는 데에도 유형을 나눌 수 있다면 나는 ‘소리 없이 삼킨다’와 ‘조곤조곤 팬다’에 가까운 유형이다.

그런 내가 큰소리로 화를 낸 게 나 조차도 낯설게 느껴졌다. 무엇이 날 이렇게 만든 건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우리 몸에 가장 중요한 잠이라는 친구를 가까이 두지 못한 걸로 짐작은 했다.


잠을 못 자면 감정을 처리하는데 어려움을 느낀다고 한다. 그렇지만 통잠을 못 자는 아이옆에 부모가 통잠을 잘 리가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한번 소리를 지르고 나니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는 해소가 된 것 같았다.

가끔씩 이렇게 소리를 크게 한번 지를 수 있으면 좋겠지만 어디 산에 들어가서 지를 수도 없고 해서

이 날 이후로는 잠에 대해서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이른 아침이 아니고서야 카페인은 먹지 않으려 노력했고 아이가 잠들면 같이 잠들고 새벽에 깨더라도 핸드폰을 하거나 티브이 보는 걸 최대한 안 하려고 했다.


아이가 이제 곧 세돌을 앞두고 있는데 소리를 지른 적은 그날이 유일한 것 같다. 





나는 잠에 관대한 편이 아니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새벽 2~3시까지 유튜브를 보다가 잠드는 일이 다반사였고 유혹을 못 이겨 오후 늦게 먹은 커피 한 잔 덕분에 꼴딱 밤을 새우고 아침에 힘들어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여행을 가서 놀러 가면 그 시간이 아까워 밤늦게까지 놀고는 아침에도 새벽에 벌떡 일어나 얼른 놀러 나가자고 하는 타입이었다.


그런 내가 아이가 생기고 나서 1년 정도 잠을 매일 불규칙하고 적게 자다 보니 습관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아이와 같이 9시면 잠이 들고 5시 반이면 일어나 출근준비를 한다. 새벽에 아이의 칭얼대는 소리에 눈을 떠도 핸드폰을 보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휴대폰을 들고 침대로 들어가지 않는다.


빨리 잠든다고 하면 다들 그 시간이 아깝지 않냐고 물어보는데 오히려 나는 아침에 5시 반이면 눈이 떠져서 출근 전까지 30분 정도 운동을 하기도 하고 못다 한 집안일을 하기도 해서 더 좋은 듯하다.


육아 때문에 너무 힘들다면 우리의 평생 친구, 잠을 아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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