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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로지 Jul 03. 2023

언니네 부부는 어떻게 안 싸울 수가 있어?

들어는 봤나 소리 없는 싸움이라는 걸

코로나 시대에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며 외로움이 점점 더 깊어져갈 무렵 같은 아파트에서 육아동지를 만났다.


아이의 나이도 똑같고 그 동생과 나도 한 살밖에 차이가 안 난다는 점, 바로 옆 라인에 살아서 맘만 먹으면 바로 볼 수 있다는 점, 무엇보다 같은 계열의 직업을 가지고 있어서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돌아가면서 한 번씩 각자의 집에서 만나 육아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배달비도 아낄 겸 밥도 같이 시켜 먹고 소소한 일상을 보내곤 하고 외부와 단절된 세상에서 시시콜콜한 대화로 외로움을 날려버리곤 했다. 그 이야기의 주제는 우주의 그 어떤 것도 될 수 있었으나 (아줌마가 된 이상) 빠질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남편.


어느 날은 그 동생이 어제 남편하고 소리 지르면서 싸웠다며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소리를 너무 크게 내서 혹여나 층간소음으로 연락이 오는 건 아닐지 걱정했다는 귀여운 고민과 함께.


그런데 우리 부부와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 바로 ‘소리 지르며’다.


나는 동생에게 물었다.

“소리 지르면서 싸운다고?”

“응 언니네는 안 싸워??”

“우리는 소리 지르면서 싸운 적은 없는데”

“언니네 부부는 어떻게 안 싸울 수가 있어?”




나는 그때 잠시 착각을 했다.

‘우리 부부는 안 싸운다는 착각’


그날 이후로 한동안 나는 우리 부부는 육아를 하면서도 싸우지 않고 잘 지낸다고 생각했다.

싸움의 기준이 상대방에게 소리를 질러대며 둘 중 하나가 그 자리를 뜰 때까지 계속되는 거면 말이다.


그 동생 말고도 주변의 육아하는 친구들을 만날 때면 나는 우리는 안 싸워라고 말해주곤 했다. 마치 우리 부부가 꽤 모범적인 사례라도 되는 듯이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서로 서운한 일이 생겨 남편과 잠시 냉전이 있었는데 그때 난 알게 되었다.

우리 부부는 싸우지 않는 게 아니라 소리 없는 싸움을 한다는 것을.


부부들을 보면 싸울 때 크게 2가지 유형이 있는 것 같다.

첫 번째는 싸우는 주제에 대해서 끝까지 이야기하는 것. 그 자리에서 결론 내고 싶어 하고 그렇게 해야 속편 하다. 계속 이야기하다 보면 목소리가 커지는 건 당연하다. 그렇지만 그 자리에서 거의 다 풀리고 뒤끝이 없는 것 같다.

두 번째는 생각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거나 그 자리에서 당장 결론 내고 싶지 않은 유형이다. 나중에 다시 말하고 싶다거나 그런 갈등 자체를 피하고 싶은 유형.


나랑 남편은 둘 다 두 번째 유형이다.

우리는 갈등의 티카티카가 채 5마디를 넘지 않는 것 같다. 싸움을 시작도 못해보고 끝내는 모양새다.

남편의 입장은 정확히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갈등이 피어날 것 같으면 일단 대화를 멈춘다. 그리고 나중에 다시 이야기해보자고 한다.


일단 나는 생각 정리가 필요하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말이 나가서 후회한 적이 많기 때문이다. 종종 서운해라는 감정은 자고 일어나면 또 이해해 볼까 로 바뀌기도 하고.

남편도 갈등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 웬만한 건 그냥 넘기려는 듯하다.






그런데 아이가 있다면, 소리를 크게 지르며 그 자리에서 해결하려는 것 보다

일단 갈등은 갈등대로 잠시 옆에 비켜두고 소리없이 싸우는게 더 도움이 된다.


먼저 아이앞에서 큰 소리를 내며 싸운다면 아이에게 정서적인 불안감을 안겨줄 뿐만 아니라

큰 트라우마를 남겨줄 수도 있다.

차라리 겉모습은 데면데면 할지언정 갈등은 잠시 옆에 비켜두는 것이 좋다.


또 소리없는 싸움은 때때로 그냥 혼자서 쓱 꺼져버리는 불꽃이 되기도 한다.

어젯밤에는 나를 집어삼킬 듯 큰 문제처럼 보였던 것도

푹 자고 일어나면 또 이해할 수 있는 범위로 쑥 들어오기도 한다.


소리없는 싸움의 가장 좋은 점은


우리 부부는 그래도 꽤 잘 지내는 편이야


라며 자기 암시(?)를 할 수 있다.

내가 그랬던 것 처럼 말이다.


이 암시는 굉장히 좋은 효과가 있다. 

우리 부부가 이 어려운 난관을 잘 헤쳐나가고 있다는 자신감, 그리고 앞으로도 크게 싸우지 않아야 겠다는 다짐까지 안겨준다.


이제 나는 누가 물어보면 우리 부부도 싸운다고 말한다. 

대신 소리 없는 싸움을 한다고 한다. 

겉으로 들리는 소리는 고요하지만 마음 안에선 어느 집보다 시끄러운 그런 싸움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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