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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로지 Aug 27. 2023

그 집 며느리는 정말 이상해

서로에게 휴가를 선물하는 며느리와 시어머니

나의 시댁은 우리 집과 차로 4-5시간 걸리는 곳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시부모님이 워낙 두 분이서 잘 놀러 다니시기도 하고

먼 거리도 한 몫해서 시댁 어르신들은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진 신혼집에 단 한 번도 오지 않으셨다.


그러다 아이가 태어나고 2주 뒤 남편이 대상포진에 걸리는 바람에 우리의 발등에 불이 떨어지게 되었다.

양가 어르신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그때 시부모님이 처음으로 손주도 볼겸 겸사겸사 올라오시게 되었다.


인생의 첫 손주를 만나게 된 시댁 어르신은 2주 동안 우리 집에 머물면서 아이를 정말 예뻐해 주셨고

아픈 남편의 빈자리를 대신해 정말 많이 도와주셨다.




그때부터였다.

시댁 어르신들이 한 달에 한 번씩 우리 집에 올라오시게 된 게.


육아 때문에 늘 잠이 부족했던 나와 이직한 지 얼마 안 된 회사에 적응하느라 힘든 남편,

거기다 둘 다 건강에 문제가 생기다 보니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도움의 손길을 계속 구하게 됐다.


한 달에 한 번은 친정에서 일주일을 보내고 한 번은 시댁 어르신들이 올라오셔서 육아를 도와주셨다.


그렇게 아이가 커갈수록 점점 빈도는 줄어들긴 했지만

곧 세돌을 앞두고 있는 지금도 두 달에 한 번은 주말에 올라오셔서

아이도 봐주시고 우리 부부의 데이트 시간도 챙겨주신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님이 다니는 수영장 친구들에게 서울 아들네 집에 간다 했더니

다들 입을 모야 한소리를 했다고 한다.


그 집 며느리 참 이상하네


서울 아들네 집에 가서 금토일 자고 오는 어머님도

오라고 하는 그 집 며느리도 이상하다고 했다는 것이다.


‘보통’ 아이를 데리고 부부 내외가 시댁에 가는 게 일반적이긴 하고

‘보통’ 며느리들은 집에 시부모님이 오는 걸 원하지 않기도 하고

‘보통’ 시댁 어르신들도 아들네 집에 가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내 주변에 결혼한 친구들만 봐도 시부모님이 집에 와서 며칠씩 있다가 간다고 한 건 들어본 적 없는 것 같긴 하다.


어머님이 그런 이야기를 하시면서 내게 참 고맙다고 하셨다.

시부모님이 집에 와서 며칠 지내는 것에 대해서 전혀 불편하거나 싫은 기색 없이 대해줘서 고맙다고 말이다.

난 오히려 어머님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우리 어머님 같은 분 또 없을 거라고 말이다.

시부모님은 우리 집에 오시면 요리, 설거지, 빨래, 청소 모든 집안일을 해주신다. 거기다 육아는 덤으로.

내가 아무리 하겠다고 해도 어머님은 주말 동안이라도 잠깐 쉬라며 배려해 주신다.

대신 어머님은 예쁜 손주를 맘껏 보시고 가신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가 윈-윈 하는 휴가를 보낼 수 있다.

내가 시부모님과 이런 적절한(?)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를 생각해 보면 남편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조리원에서 막 퇴소 후 남편이 대상포진에 걸려서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만 있었을 때

급하게 시부모님이 올라오시긴 했지만 처음엔 육아를 적극적으로 하신 건 아니었다.


그런데 남편이 기저귀 가는 것부터 수유, 목욕, 재우는 것까지 시부모님이 직접 해볼 수 있게 했다.

손주의 이쁜 모습만 보고 가지 말고 육아의 여러면을 느낄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래서 시부모님은 손주 이쁜 모습과 동시에 우리의 육아 힘듬까지 동시에 느낄 수 있으셨던 것 같다.


지금도 전화를 하시면 꼭 마지막에 내 안부를 챙겨주신다.

아이의 신생아 시절부터 거의 모든 육아의 순간들을 함께 해오다 보니 육아가 얼마나 힘든지 아시기 때문이다.


삼 남매를 키운 우리 엄마는 육아 때문에 힘들다는 내게

'우리 때는 3명도 다 혼자 키웠어'라고 말했지만

막상 같이 육아를 하니 이젠 애 한 명도 못 키우겠다는 말을 하신다.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난 할아버지는 유모차를 끌고 낑낑대는 내게

옛날에는 밭매러 갈래 애기 볼래 하면 열이면 열이 다 밭매러 간다고 이야기했다면서

생전 처음 보는 아기 엄마에게 고생이 많다고 말한 적도 있다.


이런걸 보면 나이와 시대의 문제를 떠나서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투명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던 건 아니었을까?


우리 고부간의 이런 모습이 어느 누군가에겐 정말 이상해 보일지 모르지만

미지근한 온도로 오래도록 함께 행복하게 지내고 싶은 우리의 암묵적인 약속이 있기에

우리는 오늘도 서로에게 근사한 휴가를 선물한다고 생각한다.


내겐 잠깐 육아에서 벗어나 쉼 뜰을 가질 수 있는 여유를

시부모님에겐 일상에서 벗어나 예쁜 손주와 맘껏 놀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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