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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로지 Aug 21. 2023

아이를 키우며 가장 상처받은 말

주 양육자에게 이런말은 절대 하지 마세요

태어나면서부터 먹는 걸 정말 좋아하는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과자나 음료 거의 오픈하지 않았다.

단맛이 전혀 없는 과자도 간을 거의 하지 않은 반찬도 너무 잘 먹는 아이였기에

속세의 맛(?)을 알게 하고 싶지 않았던 거다.


그런데 나의 복직과 함께 할아버지가 주양육자가 되면서 거의 모든 과자에 오픈되었다.


그날도 그렇게 시작된 거였다.


아이는 밥시간이 되자 과자를 달라며 울기 시작했다.

우리 아빠는 아직 아이의 울음에 익숙하지 않았다. 아이가 울면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꽉 잡혀있었다.

부랴부랴 과자더미를 가져오는 아빠에게 절대 해서는 안될 말을 했다.


아빠 때문에 자꾸 밥 안 먹고 과자만 먹는 거야. 아빠가 이렇게 만들었어


그 말 이후 싸한 공기와 함께 아빠는 집을 나가고 한동안 연락을 받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내 잘못을 깨닫고 미안하다고 보낸 내 문자에도 답장이 없었다.


불현듯 몇 달 전 일이 떠올랐다.






올해 초였다.


갑작스러운 고열이 시작된 아이는 아플수록 더욱 보채고 울기 시작했다.

아직 말문이 트지 못했던 아이라고 생각하면 당연한 상황이었다.


열이 떨어지지 않아 며칠 밤을 거의 뜬눈으로 지새웠다.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깊은 잠을 못 들고 그렇게 밥을 잘 먹던 아이가 밥을 먹지 않고 하루종일 울며 보챘다.


3일이 지나가니 나에게도 점점 한계가 찾아왔다.

아무리 아픈 아이지만 며칠 내내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아이의 온갖 투정을 다 받아주니 나 역시 지쳤다.

그래도 아이가 안쓰러워 꾹꾹 나도 모르게 솟아오르는 화를 누르며 아이를 다독이고 있었는데

그런 내게 남편이 이런 말을 건넸다.


네가 너무 다 받아줘서 아이가 더 짜증을 부리는 거야



엄마는 아이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아이가 떼를 쓰고 투정 부려도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 순간은 미울지언정 말이다.

더욱이나 아픈 아기였다.


말도 잘 못하는 아픈 아기를 두고 어느 엄마가 매정하게 할 수 있을까

적어도 나는 그렇다.


나는 남편의 그 말이 몹시도 쓰리고 아팠다.






그랬던 내가 불과 몇 개월 뒤 우리 아빠에게 똑같은 말을 하고 상처를 주다니 스스로에게 너무 실망스러웠다.


아이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나나 우리 아빠나 같을 것이다.

그 표현과 방식의 차이가 있었을 뿐, 우리는 각자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사실 30년이 넘어서 다시 시작된 육아에 서툴면서도

세 남매를 키워본 경험자답게 능숙하게 아이를 케어하는 아빠를 보며 늘 감사하면서도 ‘내방식’대로 아이를 케어해주길 바랬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 나는 더 이상 아빠의 육아에 뭐라 할 자격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오히려 내게 필요한 건 아빠의 육아방식 영역을 인정하는 것과 적절한 타협이었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일은 쉽다.

모든 일이 당신 때문이라고 말하며 잘못된 점만 쏙쏙 골라 찾아 말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책임을 전가하는 말 속엔 어떤 대책도 없다.


아이를 키우는데 비단 주양육자의 몫만 있는 건 아닐 것이다.

아침 출근시간에 1시간 잠깐 아이를 보고 가는 아이의 아빠도

등하원을 도와주는 도우미 이모님도

그게 아니라도 몇달에 한번씩 만나는 할머니 할아버지도 모두 영향을 준다.


그 뿐만 아니라 육아는 아이의 기질과도 깊은 연관이 있어서 아이의 행동에 대한 어떤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책임을 전가하기 전에 책임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가족이 되어 줄 수 있다면 우리의 육아는 조금 더 편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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