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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로지 Jun 04. 2022

도대체 엄마는 그 많은 요리를 어디서 배웠을까?

우리 엄마처럼 멋진 엄마가 되어간다, 나도.


아이가 생기고 '유아식'을 시작하면서 느낀 게 2가지 있다.

요리를 못하는 편에 속한다는 것엄마가 차려주는 밥상의 대단함이었다.


젖병에 물과 분유를 넣고 흔들어 주면 끝이었던 신생아 시절과

찜기에 다 때려 넣고 쪄서 갈아주면 끝인 이유식이 편했다는 걸 새삼 실감하는 요즘.

난 대망의 유아식 시절을 지나고 있다.


아이에게 밥과 국 그리고 반찬들을 꺼내 주어 어른처럼 먹는 연습을 하는 유아식.

유아식을 시작하면서 나는 여러 번 냄비를 태워먹었다.

아이가 밥을 거부하는 날도 여러 날이었고

아이를 재우고 늦은 밤까지 꼴딱 아이반찬을 만들다 잠드는 날이 많았다.


"레시피 보고 따라 하면 되는데 왜 안되지?"


인터넷에 좋은 유아식 레시피들이 많은데 따라 해도 난 그 모양새가 나오지 않았다.

이런 걸 바로 요 똥이라고 하는 건가 싶었다.


어느 날 남편이 옆에서 보더니 레시피대로 전혀 하고 있지 않은데?라고 말했다.

무슨 소리냐고 지금 한 손에 든 핸드폰을 보며 똑같이 하고 있다고 변명을 하려는데

다시 보니 아주 사소하게 빗나간 레시피들이 눈에 보였다.


데치는 것과 찌는 것의 차이를 몰랐고

레시피의 요리시간 5분이 10분이 15분이 되는 것이 문제인지 몰랐다.

단호박 대신 애호박을 넣어도 똑같다고 생각했고

냄비에 하던 프라이팬에 하던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요리란 정말 세심한 거였구나.'


마치 숙달된 누군가에겐 대충이 허용되지만 

초짜에겐 칼같이 정확해야 하는, 어려운 미션 같은.


아이가 밥을 안 먹는 날이 늘어가자 엄마에게 sos를 보냈다.

엄마 집으로 달려가 재료만 쭉 늘어놓고는 반찬을 만들어달라 했다.


"엄마는 눈감고도 만들지 얘야"


내가 만들 땐 한 시간이 훌쩍 넘던 조리시간이 반으로 줄어들고

아이도 할머니표 반찬은 너무 잘 먹어줬다.


갸우뚱하는 날 옆에 두고 엄마는 하나하나 알려주었다.

스마트폰 사용법이나 인터넷 주문법을 내가 엄마에게 알려준 적은 많았어도

반대로 엄마에게 배우는 요리는 신기하고 재밌었다.

그러다 문득 30년이 넘어서야 처음으로 내 머릿속을 스치는 의문


"엄마, 엄마는 어디서 이렇게 요리를 배웠어?"


그 시절 인터넷도 없었을 테고 알 수 있는 곳이라야 요리책이 다일 것 같았다.

사랑도 글로 배우면 잘 안되듯이 요리도 책으로는 무리가 있지 않았을까


그러고 보니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한 장면이 있었는데

생방송 요리 티비 프로그램을 보다가 엄마가 급하게 포스트잇을 몇 장 가져와서는

엄마가 적다가 놓칠 수도 있으니 요리법이 자막으로 나오면 같이 적자고 하는 그 장면.


그러고 보니 우리 집 냉장고에 붙어있던 수많은 포스트잇들도 함께 떠올랐다.


난 왜 엄마는 늘 처음부터 잘했다고 생각했을까

아이가 크고 점점 다양해질 수밖에 없는 반찬들을 만드느라 

나처럼 우리 엄마도 여러 번 다시 또다시 시도했을 요리.


"너도 애 키워봐. 자연스럽게 다 하게 된다"


무심코 엄마는 한마디 던지고 최강 고수의 뒷모습처럼 위풍당당하게 방으로 들어갔다.

엄마도 처음부터 요리에 소질이 있던 게 아니라

우리를 키우며 하나둘 시행착오가 만들어낸 결과물이었겠지.


엄마가 만들어준 반찬을 남기고 투정하며 

엄마를 속상하게 했던 나의 지난날들이 스쳐 지나가며 나를 괴롭혔다.


좋아하지 않는 나물반찬, 야채들 건강하려면 먹어야 한다고 자꾸 주던 엄마.

어느덧 내가 내 아이에게 그러고 있다.

나는 한 번도 먹어보지도 않은 콜리플라워를 사들고

당근이라면 치를 떠는 내가 모든 요리에 당근을 필수처럼 넣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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