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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nkDolphin Dec 28. 2017

내 마음을 읽는 귀신

가끔은 나보다 내 마음을 잘 아는 네가 싫다.

"무슨 일 있구나."

"what? 아무 일도 없어."

"Tell me what's going on."

"........"



기분이 안 좋은 날. 우울한 날. 아무 이유 없이 속상한 날. 웃는 얼굴로 전화를 받아도 그는 내 마음을 귀신 같이 알아차린다. 때로는 내가 이해한 내 마음보다 그는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하루 종일 붙어있는 것도 아닌데 내 마음을 그렇게 잘 읽는 거야?






그는 나를 관찰하기 좋아한다. 쓰고 나니 좀 변태스러운 느낌이 없지 않아 있는 문장이지만, 변태적인 의미가 아니라 순수한 관찰 말이다. 내가 화를 속으로 삭이는 모습이 어떤지, 우울한 마음을 숨기려고 어떤 미소를 짓는지, 토라진 마음을 숨길 때 어떤 말투를 쓰는지를 세세히 분석한다. 가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에게 "Stop analyzing me!"라고 소리칠 정도다. 그는 전도유망한 과학도임이 틀림없다.



나는 그가 나를 관찰해준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그가 내 작은 행동 하나하나를 재빨리 이해하고, 그에 반응해주기 때문이다. 때로 나는 다른 이들에게 '너는 다른 사람들한테 별로 신경을 안 쓰는 것 같아'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아프지만, 반박할 수 없는 말이다. 나는 완벽한 범생이 노릇을 해내느라 타인뿐만 아니라 내 마음에게도 소홀했다. 그가 나보다 내 마음을 더 잘 아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이가 나를 이해하려 노력해준다는 건, 진정한 축복이다. 아무리 강한 척 연기를 하다가도,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을 미리 알아채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무너지는 내 마음을 뒤에서 받아줄 준비를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이만큼 내게 힘이 되어주는 것은 없다.


 

Stephen Kelly Creative / 무너지는 내 마음을 알아채고 받아주는 그와, trust fall.


 

속내를 드러내고 싶지 않아하는 나와, 나의 속내를 관찰하고 분석하려는 그. 어찌 보면 최악의 조합이 아닐 수 없다. 서로 다른 우리의 성향 때문에 연애 초반엔 잡음도 많았다. 내 감정을 자신에게 털어놓으라는 그의 말이, 나는 그가 '넌 감정적으로 무능력해.'라고 다그치는 말처럼 들렸다. 나는 그를 밀어냈고, 적당한 감정의 거리를 유지하려 애썼다. 하지만, 내 마음은 시간이 갈수록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 깊은 나락으로 떨어져 갔고 결국, 나는 그에게로 달려갔다.


그가 자고 있는 새벽 3시 반, 내겐 적막한 오후 3시 반. 갑작스러운 스트레스와 불안감에 두 시간 째 눈물이 터져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홀로 있는 내 방 안에서 나는 그렇게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언제든 전화해'라고 말하던 그의 말을 따르기로 결심했다. 곤히 자고 있을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퉁퉁 부은 얼굴로 잠에 취한 그가 전화를 받았다. 엉망인 내 얼굴을 보더니 그의 눈이 커졌다.


"What happened? Are you okay?"

"......"


아무런 이유도 말하지 않은 채, 그의 얼굴을 보자 사그라들었던 눈물이 다시 왈칵 터져 나왔다. 그렇게 다시 30분을 울었다. 자고 있던 사람을 깨워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핸드폰을 붙잡고 다시 울었다. 다시 눈물이 잠잠해지자, 비로소 그의 얼굴이 보였다. 당황스러울 법도 한데, 그는 내 마음을 다 이해한다는 듯 다정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어떠한 질문도 묻지 않고, 그는 그저 나를 그렇게 바라만 보고 있었다. 실컷 울고 난 뒤 진정을 찾은 나는 그에게 깨워서 미안하다는 사과를 건넸다. 그가 말했다.


"You don't need to apologize for showing me your feelings."



정말로, 그는 귀신같은 사람이다.






가끔, 내 마음을 나보다 더 잘 아는 그가 밉다. 하지만 그보다 자주 나는 그가 고맙다. 외면하고 싶던 내 마음을 들여다보게 하고, 그 마음을 이해하도록 돕는 사람. 항상 곁에 있지 않아도, 멀리서 내 마음을 읽는 그가 존재함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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