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솔직한 편이다. 전하고 싶은 감정과 생각을 입 밖으로 표현하는데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그래서 말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도 내가 수영을 잘하지 못하는 것처럼 마음을 말로 표현하는 걸 잘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공감은 못하더라도 그럴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인정하려고 노력을 해본다. 마음을 말로 꺼내지 못하는 사람을 다그치거나 답답해하진 않으려고도 노력해본다. 그러나 잘 되진 않는다.
특히 말을 하지 않았으면서 자기 마음대로 해주길 기대하는 사람은 나의 모든 의욕을 증발시켜버린다. 속으로만 나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고 나에게 기대한 대로 하지 않아 실망이라고 한다. 그런 사람과는 긴 대화를 지속하는 것이 어렵다. 이미 마음의 문을 닫고 나에 대해 결론을 내려버린 상대방을 무슨 말로 이해시켜야 할지 깜깜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사람이 나와 좋은 관계를 맺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해석해버린다. 나와 인연을 오래가고 싶은 마음을 품고 있는 현명한 어른이라면 이다음에 불편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금 말로 표현하는 것의 어려움을 무릅쓸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비품 사용 후 제자리에 두지 않는 상대방에게 비품들을 제자리에 두셔야 한다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 현명한 어른이라는 것이다. 상대방은 깜빡 잊고 물품 정리를 하지 않았을 수 있는데 그걸 보고 지적하지 않고 저 사람은 뒷정리를 잘하지 않는 사람이구나 라고 홀로 판단해버리고 두고 보겠다는 식으로 입을 닫고 관찰만 한다면 상대방의 건망증을 고의로 만들어버려 뒷정리를 남한테 떠넘기는 게으른 직원으로 둔갑시킬 수 있는 것이다. 뒷정리해주세요 라는 일곱 글자가 칭찬도 호의의 메시지도 아니기 때문에 자칫 말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한 마디가 마음의 오해를 쌓지 않을 수 있는 시작이 됨을 인지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좋다. 상대를 오해하지 않으려면 어려워도 표현해야 한다. 말을 해야 알기 때문이다.
관계를 건강하게 이어나가려는 노력 없이 말하지 않고 자기 뜻대로 상대가 행동해주길 바라는 사람에게는 애쓰고 싶지 않다. 나는 말하지 않는 상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고 그는 나에게 ‘꼭 말로 해야 알아?’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나는 ‘말을 안 하는데 어떻게 알아? 말을 했으면 안 그랬을 텐데 말도 하지 않고 왜 이러는 거야?’ 묻지만 상대방은 나를 당연한 기본도 지킬 줄 모르는 한심한 사람으로 단정 짓는다. ‘그걸 말로 해야 알아?’라는 말속에는 나에 대한 실망과 무시, 어이없음이 모두 담겨있다. 나는 그것도 말 못 해서 하지 않아도 될 오해와 싸움을 만드는 상대방이 황당하다. 둘은 다르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서 함께 하는 게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연을 이어나가고 싶다는 애정이나 나와는 다른 너의 방식을 이해하려는 욕구가 없이는 지속되기 어렵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사항은 마음을 말로 꺼내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인지, 말로 꺼낼 ‘마음’조차 없는 것인지의 구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