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인 구석이 있어서 그런 건지 유행하는 걸 일부러 안 하는 경향이 있었다. 예를 들어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돌풍을 일으키는 인기 드라마가 방영하면 일부러 다른 채널로 돌린다. 그리고 동시간대에 하는 시청률 1퍼센트 대 인기 없는 드라마를 본다. 재미없으면 그 마저도 보진 않았지만 남들이 다 보는 건 왠지 보기 싫었다. 첫 회에 주목받지 못해서 그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는데 입소문을 타 인기가 많아지면 뿌듯했다. ‘난 저거 인기 없을 때부터 보기 시작했잖아’라는 의미 없는 자부심 같은 걸 느꼈다. 스무 살 초반 때 주변 친구들이 한두 달씩 유럽 배낭여행을 가거나 워킹 홀리데이를 많이들 떠났다. 해외여행에 대한 막연한 로망이 나도 있었지만 남들이 다 가니까 나도 가는 건 싫었다. 교환학생으로 간다던지, 아니면 아예 대학을 새로 들어간다던지 무언가 확실한 이유가 있을 때 갈 거라고 버티다가 결국 못 갔다. SNS도 그랬다. 한참 인스타그램이 성행하기 시작했을 때에도 나는 일부러 계정을 만들지 않았다. 가끔 친구가 인스타그램을 하고 있을 때 ‘걔꺼 한 번 들어가 봐’ 하며 연락이 끊긴 동창의 근황을 염탐하곤 했지만 그게 다였다. 유명 연예인이 소개한 소떡소떡이란 음식이 인기를 끌며 등장했을 때에도 난 별로 관심 없다는 태도로 일관하다 한참이 지나 소떡소떡에 대한 열기가 식었을 즈음 한 번 먹어봤다.
그런데 지금은 얼마 전 성황리에 막을 내린 인기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고, 매일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친구들의 일상을 구경하고, 티브이에 나온 맛집에 같이 갈 친구들을 포섭한다. 그땐 왜 그랬고 지금은 왜 이럴까? 뒤돌아본다. 반항이나 저항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아마 ‘이유’와 ‘명분’에 꽂혔던 게 아닐까. 휩쓸려가는 게 싫어서 그랬나 보다 한다. 나는 분명한 내 생각과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허세가 있었던 거다. 모든 일에 그럴싸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냥’은 무책임하고 한심한 거라고 여겼다.
그러다 어느 날 내가 뒤집어졌다. 아무런 계기도 없었는데 갑자기 생각의 반대편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냥 재밌다니까 다들 본다니까 나도 한 번 봐 보는 거고, 그냥 맛있다니까 나도 한 번 먹어 보는 거고, 그냥 좋다니까 나도 한 번 써 보는 거다. 갑자기 그게 된다. 뜬금없이 ‘남들 다 하니까 나도 해보자’가 세팅되었고 ‘그냥’ 만큼 솔직하고 간단한 게 어딨냐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럴싸한 이유’라는 답답한 헬멧을 드디어 벗은 느낌이다. 벗고 나니 땀에 젖은 머리가 바람에 식어 시원하고 홀가분하다. 누가 씌워준 것도 아니고 벗지 말라고 한 것도 아닌데 집 안에서도 땀 흘리면서 헬멧을 계속 쓰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헬멧을 벗을 마음이 생긴 거다. 황당하긴 하다. 갑자기 왜 이런 걸까. 이런 갑작스러움에도 그럴싸한 이유는 없지만 이렇게 갑자기 찾아오는 변심의 순간들이 반갑다. 내가 아니었던 모습들이 내가 되는 이 뜬금없는 변덕이 나쁘지 않다. 받아들여지지 않던 게 갑자기 쉬워진다. 변화나 결심에 꼭 거창한 이유가 있어야 되는 건 아니니까. ‘그냥’이 잘 된다는 건 내 마음을 더 위해줄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도 갖는다. 답답하게 느꼈던 그럴싸한 명분 따위는 버리고 좀 더 자유롭게 나를 챙겨줄 수 있게 되었다. 그냥 그렇게 되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