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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민지 Nov 01. 2020

[알뜰한 배터리 사용]

 이런 말을 하기엔 한참 어리지만 해가 갈수록 내가 가진 에너지가 줄어든다는 걸 느낀다. 에너지는 줄어드는데 해야 할 일은 늘어나면서 시간적, 체력적 연료가 모자라다. 나라는 차의 기름이 줄어들면 조금 남은 나의 연료를 잘 배분해야 한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오지랖도 부리고 남의 집 일에도 발 뻗고 나설 만큼 체력이 남아돌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나 하나 건사하기도 벅차다는 말을 자주 쓰게 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주변에 무관심해지고 있다는 걸 느끼는데 이런 나의 변화가 생긴 데에는 남의 일에 신경 쓰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걸 알게 된 것도 한몫했고 내 에너지 절대량의 감소도 크게 한몫했다. 


 내 에너지양의 한계가 있음을 몸으로 느끼고 나니 그것을 좀 더 낭비 없이 사용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집착이 생겼다. 한정된 시간과 자원 안에서만 살림을 운용하다 보니 쓸데없는 에너지 소비를 막아야 한다는 전에 없던 집착이 생긴 것이다. 예민한 사람이 되었다고도 볼 수 있고 경제적인 사람이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회식을 포함해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는 항상 참석하려고 했다. 어차피 나가면 시시콜콜한 농담이나 주고받을 테지 기갈나게 재미난 자리는 아닐 거라는 걸 잘 알면서도 피곤함을 무릅쓰고 자리를 채웠다. 그런데 이제는 나의 체력과 시간의 잔여량을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정말 가고 싶은 자리가 아닌 경우에는 무난한 핑계를 만들어낸다. 나의 것을 소비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지를 따지게 된 것이다. 시간과 에너지의 가치에 집착하게 된 것은 한 편으론 피곤하기도 하다. 너무 야박하게 구는 건 아닌가 조심스럽기도 하지만 무리하지 않기 위해 나의 여력을 챙기게 되어 자랑스럽기도 하다. 


 작년까지만 해도 나의 일주일은 항상 빠듯했다. 무언가를 배우러 가고 누군가를 만날 약속들이 빼곡해서 주말에 집에서 쉬는 날이 많지 않았다. 똑똑한 내 친구는 주말에 하루 놀면 하루는 꼭 충전을 위해서 비워둬야 한다고 했는데 그 말에 공감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휴식만 취하기엔 주말이라는 시간이 아까운 거라고 생각했다. 어떻게든 활용해야 했다. 체력이 좋아서 그랬나 보다 한다. 이제는 나도 배터리 충전의 시간을 챙긴다. 일이 바쁘거나 피곤한 날에는 약속을 만들지 않으려고 거절을 한다. 친구들에게는 거짓 핑계를 만들지 않고 솔직하게 말한다. 피곤해서 좀 쉬어야겠다고, 할 일이 있어 바쁘다고. 나를 챙겨야 해서 약속에 못 나간다고 말할 때 작은 희열을 느끼기도 한다. 쿨하고 어른스러워 보인다. 이런 변화가 내 배터리의 성능 감소 때문이라는 게 살짝 서글프기도 하지만 전보다 빠르게 방전되는 나의 건전지 덕분에 나를 위할 줄 알게 되어 기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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